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드디어 중간고사가 끝났다. 시험 스트레스도 해소시켜줄 겸 아이들과 영화를 봤다. 정승필 실종사건, 조금 시시하다. 영화 찍으면서 이범수 무지 고생했겠다. 한데 조연 중에 눈에 익은 여배우가 있다. 어라, 저 여자, 누구지? 그녀는 장자연. 몇 달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인 여배우. 화면 속의 그녀는 생기가 넘쳤다. 세상에 없는 존재를 개봉 영화에서 보는 느낌이 묘했다. 간간이 웃음을 피우는 아이들 유독, m의 웃음소리가 크다. 푸하하. 주위를 살핀다. 객석엔 우리들 뿐이기에 크게 상관없다. 영화를 보고 포스터 앞에서 찰칵 사진을 찍고 롯데리아에서 예약해둔 불고기 버거 세트 스무 개를 주문했다.
"선생님 비 와요. 많이."
사과 미소가 별명인 m이다. 참 예쁜 별명이다.
"그래?"
"아! 우산이 없어요."
"어쩌냐?"
"그러게요."
"엄마한테 전화할래요."
아이들이 거의 다 가고 없는데 학교에서 나머지를 한다던 j가 오지 않았다.
"어디냐?"
"지금 가고 있어요."
"롯데리아로 와!"
"네."
버거를 다 먹은 아이들 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간다.
"선생님, 잘 가세요."
계단을 오르고 밖을 보니 제법 빗발이 굵다. 비 많이 안 올 거라고 했는데.
"우산 없어. 아우, 어떡해!"
h와 y가 찰싹 달라붙은 채 수심 가득하다.
"선생님."
"왜?"
"오천 원만 빌려주세요."
오백 원도 아니고, 꽤 거금이다.
"왜?"
"우산 사게요."
빌려줄까? 하지만 그건 좀 그렇다. 차라리 하나 사줘. 고민하는 사이 그녀들 사라진다. s선생님은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셨다.
"선생님, 오늘 고생하셨어요."
j는 아직이다.
"왜 안 와!"
"도착했는데 어딘지 몰라서 다시 집으로 가고 있어요."
"너 줄려고 햄버거 포장해놓았는데, 동생 거랑, 가지고 가!"
"어디로요?"
"세이브 존 정문으로."
"네."
j를 만나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정문으로 가려는데 h와 y가 지하에서 박스를 만지작거린다.
"여기서 뭐해?"
"이거라도 쓰고 갈려고요."
"정말?"
사람들이 백화점 정문에서 우중충하니 서 있다. 무리 중에 아까 간다던 3학년 u도 서 있다.
"뭐 해?"
"동생 기다려요. 지금 우산 가지고 온데요."
조금 있자니, 동생이 왔다. 우산 두 개다.
"하나 빌려줄래?"
"왜요?"
"h와 y가 지금 지하에서 박스를 뒤집어쓰려고 하거든."
"여기요."
"고마워. 내일 돌려줄게."
"네."
동생의 우산을 함께 쓴 u가 비와 함께 간다. h에게 전화를 했다.
"박스 뒤집어썼냐?"
"아직요."
"우산 구했어. 이쪽으로 와!"
"네."
빌린 우산을 들려줬더니 비속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그녀들, 비와 함께 간다.
"어디냐?"
"거의 다 왔어요."
정류장 쪽에서 비속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포장된 버거를 건네주고 다시 비속으로 사라진다. 그도 햄버거를 든 채 비와 함께 간다. 이제 나만 남았군. 빗발은 더 굵다. 근데 나는 어쩌지? 나? 나도 비와 함께 간다. 연습실로.
2009년 10월 14일
얘들아, 나 드디어 덧니 뺐어.
두 달쯤 전이었다.
“선생님 지난번에 신청하신 연지(가명) 치과치료를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치료받기가 힘들 것 같아요.”
역시 안 되는 거였구나.
“그래요. 이유가?”
“병원에 책정된 예산이 있기는 한데 보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지는 아예 수술을 하다시피 해야 해서 그 정도까지는 지원하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할 수 없죠 뭐.”
KT&G복지센터에 연지의 덧니 치료를 지원해줄 수 있는지 문의를 했었는데 복지센터와 연계하고 있는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한 모양이다. 혹시나 싶어서 신청을 했지만 그래도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 맥이 탁 풀렸다. 소식을 전하는 복지센터의 팀장님도 안타까워하기는 마찬가지다.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보건소에서 소개해준 치과를 갔었는데 연지가 아직 어리고 또 비용도 어림잡아 육백만 원 가까이 들어갈 거라고 하고 아직 뼈가 다 자라지 않아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도 하고... 그러니까 문제는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치료비가 있냐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연지 아버님도 수차례 알아봤지만 육백만 원이 넘는 비용 때문에 매번 낙담만 하셨던 모양이다. 치료비를 대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는 심정이 탁하게 떨리는 음성과 굳은 표정에서 여실히 묻어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일이니 그 맘 오죽할까? 아버님은 영세한 의류 공장에서 옷 만드는 일을 하신다고 했다.
아직 미혼인 나로서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가 짊어져야 할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딸의 선생이지만 그 딸이 받는 고통으로 언제나 맘이 편치 않았을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또한 나의 스승이다. 딸이 받는 고통으로 인해 어둡던 그의 표정은 이제껏 내가 만나온 다른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의 표정과 섞인 채 오랫동안 나의 뇌리에서 기억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 스스로가 그러한 우울한 기억들을 견딜 수 없었으므로 나는 가능하다면 연지를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주고 싶었다.
한창 외모에 민감할 나이다. 연지의 덧니는 앞으로도 계속 도드라질 것이다. 연지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마다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학교에서도 늘 놀림을 받는 모양이었고 공부방에서도 이따금씩 놀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연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도 놀랐었다. 하지만 그때는 중등부를 맡기 전이었기에 연지를 볼 때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고는 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들 연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섯 달 전, 중등부를 맡으면서 연지의 고통은 이제 내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복지센터를 비롯하여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매번 허사였다. 항상 육백만 원 가까이 드는 치료비용이 문제였다. '어쩌면 희망은 절망과 가장 닮은 형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매번 기대하던 일들이 어그러질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것 없으세요.”
‘나누미’ 샘이었다. 나누미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서른이 되던 해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면서 모인 봉사 단체다. 회원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중등부 생일 파티를 열어주고 있었다. 벌써 육 년이 넘었다. 나누미 샘 표현대로라면 자신을 거쳐 간 중등부 선생님이 벌써 네 번째다. 나누미 샘은 비단 생일파티만이 아니라 바자회나 어린이날 같은 큰 행사가 있으면 열 일 제치고 달려와서 도와주셨다. 이것저것 공부방 운영에 필요한 것들을 말하며 혹시나 싶어서 연지의 덧니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나누미 샘도 연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 연지요. 그러게요. 저도 연지 볼 때마다 그게 늘 안타까웠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돈이 많이 들어간다면 얼마라도 모아봐야죠.”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매일 공부방에서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해서 연지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 무렵 나누미 샘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가 잘 아는 친척 형님이 인천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데 연지 덧니 이야기를 했더니 한 번 데려와 보라고 하시네요. 치료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검사라도 한번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부모님과 통화하셔서 검사 일정 잡아보세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별 기대 없이 말한 탓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나누미 샘은 연지 일을 알아보셨던 모양이다. 당장 아버님과 통화를 해서 (10월 24일) 오전 10시로 진료 일정을 잡았다. 아버님께도 일단은 검사만 받아보는 걸로 말했다. 출발 전날 마지막으로 약속 장소를 확인했다.
“내일 8시 30분에 공부방 앞에서 만나서 출발하기로 했어요.”
“그럼 8시 30분까지 차 가지고 갈게요.”
그날 아침 일찍 나누미 샘이 차를 가지고 왔다. 연지와 연지 아버님은 새벽같이 지하철을 타고 오는 중이었다. 우리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는 인천에 있는 ‘000 치과’였다.
“형님 하시는 말이 만약 치료를 하게 되면 꽤 시일이 걸릴 텐데 성남에서 인천까지 오가기 힘드니까 검사해 보고 심하지 않다 싶으면 성남에 아는 치과 소개해 줄 테니까 그쪽에서 치료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네요.”
“그렇게라도 해서 치료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잠시 후 연지와 아버님이 오셨다. 아버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다. 연지는 그렇게도 소원하던 덧니를 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척 들떠 있는 표정이었다. 어젯밤엔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덧니를 찍었다며 핸드폰에 있던 사진을 보여준다. 이렇게나 기대를 하고 있는데 막상 치료가 안된다고 하면 어쩌나 나누미 샘도 나도 은근 걱정이 되었다.
목적지는 9시 30분쯤 도착했다. 예정보다 30분 일찍 이었다. 치과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차에서 30분 정도 기다리는데 나누미 샘이 골목을 다니며 뭔가를 찾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잠시 후 나타났는데 한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형님이 치료비는 받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바쁜 시간 내서 해주시는데 감사 인사라도 해야죠. 이건 연지 아버님이 드리는 걸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사 가지고 온 음료수를 아버님께서 드리라고 하셨다. 아차! 연지 아버님도 나도 미처 그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10시가 조금 넘어서 치과로 올라갔다. 치과는 이제 막 진료를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마스크를 쓴 원장 선생님이 우리와 인사도 마치기 전에 연지를 진료실로 데리고 가셨다. 간호사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우리를 멀뚱히 쳐다봤다.
잠시 후, 연지의 치아를 살피던 선생님이 나누미 샘과 연지 아버님을 번갈아 부르셨다. 뭔가 심각한 표정이다. 돌아오는 나누미 샘의 표정도 굳어 있다.
“연지 치아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하네요. 덧니만 빼면 되는 게 아니라 치아 전체를 다 교정하다시피 해야 한대요. 가능하면 성남에 있는 치과와 연계해서 치료받게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그쪽에도 부담이 될 것 같고 치료비도 육백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네? 천... 천만 원이라고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그래서 형님이 좀 멀더라도 여기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대요.”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인천이 아니라 부산이라도 못 갈까? 아버님도 회사를 그만두는, 사실 오늘도 사장님이 안 된다는 것을 억지로 휴가를 내고 오셨단다, 한이 있더라도 치료만 해달라고 하신다.
“내 딸이 중요하지, 그깟 회사 일이 중요하겠어요?”
치과 선생님은 바로 치료를 시작하셨다. 간간이 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연지의 비명소리가 환자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영문을 모르는 환자들은 벽에 걸린 시계만 응시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환자들의 숫자가 늘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속으로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치료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 사이 환자는 더욱 늘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다음 주 토요일에 오라고 하시더니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밀린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연지는 파란 마스크를 하고 있었는데 입 안에는 한가득 솜뭉치를 물고 있었다. 솜뭉치 사이로 붉은 피가 스며 나왔다. 이따금씩 마스크를 벗고서는 헤죽 웃으며 덧니를 뺀 자국을 보여주는데 위쪽 잇몸 양쪽으로 커다란 구멍 두 개가 보였다.
“아빠, 덧니가 없으니까 느낌이 이상해.”
그동안 잠을 잘 때도 뭘 먹을 때도 늘 자기를 괴롭히던 덧니가 없어지자 굉장히 허전한 듯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며칠 지나면 익숙해질 거니까. 괜찮아.”
“응, 이제는 더 이상 입 안 벌리고 자도 될 것 같아.”
점심을 먹어야 해서 식당에 들렀는데 연지는 뺀 덧니 때문에 밥을 먹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연신 벙글거렸다. 오후 3시에 공부방 아이들 몇 명과 뮤지컬 <남한산성>을 보기로 했는데 연지는 곧 만날 거면서도 연신 문자를 주고받으며 덧니를 뺀 이야기를 전했다.
일단 검사만 받아보자고 하고 온 건데 바로 치료를 받고 있다니 게다가 비용이 천만 원이나 들어가는 거였다니 갑자기 벌어진 아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우리는 그래!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치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사실 그 형님이 오래전부터 토요일 오후에는 일찍 병원 문을 닫고 독거노인들 치과 치료를 해주고 있어요."
나는 그제야 오늘 같은 기적이 가능한 이유를 알았다. 그 뒤로도 연지는 토요일마다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다녀오면 연지의 웃음소리는 더욱 밝아지고 미소는 활짝 피어났다. 웃을 때마다 입으로 손을 가리던 버릇도 사라졌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한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지만 오늘 비로소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서 가장 높은 정신 하나를 보았다. 또한 우리는 그 옆에서 가장 높은 정신을 발휘하거나 가장 추운 곳을 향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따뜻한 정신을 향했다.
"선생님 저 내일 또 치과 가야 해요."
"아버지도 같이 가시니?"
"아니요. 이젠 저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연지의 치료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 같다. 가장 높은 정신을 보여준 그 치과 선생님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 드려야 할까? 그것이 지금 나의 고민이다.
-오마이뉴스, 2009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