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얘들아 이번 주 토요일에 남한산성 보러 가지 않을래?"

"에이 날씨도 추운데 거긴 왜 가요?"

"뮤지컬, 남한산성 말이야."

종례시간이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부방 아이들의 눈빛은 두 갈래로 갈렸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를 선생님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종종 관람하는 영화가 아닌, 거금 7만 원짜리 뮤지컬을 보러 간다는 기대에 찬 시선이었다. 가능하면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후원받은 티켓이 한정되어 있어서 보고 싶은 아이들만 함께 가기로 했다. 게다가 다음 주 일요일엔 임진각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토요일 오후 2시 30분까지 아트센터로 오면 돼 그리고 가능하면 가장 예쁘게 차려입고 오세요."

"그건 왜요?"

"공연을 볼 때는 그게 예의니까."

"나 구두 없는데..."

"치마 좀 빌려줘."

공연을 보러 갈 여학생들은 구두를 빌린다느니 입을 치마가 없다느니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데 남학생들은 뮤지컬 끝나고 뭐 먹을 거냐고 묻는다.


뮤지컬은 김훈의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것이다. 우선 뮤지컬 <남한산성>은 원작에서는 단지 주변부에 머물렀던 오달재라는 인물과 그의 연인 매향, 남 씨를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등장시킨다. 조국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복수로 치유하려는 정명수, 극한의 역경을 웃음과 해악으로 이끄는 훈남, 순금 부부 등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보는 탓에 160분(쉬는 시간 15분 포함)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이들은 예상외로 공연에 집중했다. 인간에게 가장 혹독한 환경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고 싶었다는 회전식 무대는 무대가 바뀔 때마다 산성의 안과 밖을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혼신을 다하는 연기자들의 호연 또한 인상적이었지만 반면에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정명수 역의 예성은 노력은 많이 한 것 같으나 기존의 아이돌 이미지 때문에 극에 온전히 몰입할 수가 없었다. 시종일관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상쇄시키려는 훈남, 순금 부부의 풍자극은 해학적이거나 크게 웃기지 않았다. 주화파인 최명길과 주전파인 김상헌, 오달재의 내면을 고조되는 테마음악과 더불어 섬세하고 긴장되게 표현했지만 설전을 주고받는 원작의 치열함에 비해 혼자 내뱉는 듯한 독백은 다소 밋밋했다.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눈 구경 간다. 평소 같으면 임금이 들로 꽃놀이를 가건 산으로 사냥을 가건 상관이 없겠지만 전시에, 그것도 온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는데 임금은 산성으로 눈 구경을 간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 여러분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지금 용맹한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의 도발을 철저히 막아내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라는 방송을 하며 사람들을 안심시켜 놓고 한강을 폭파해 버린 이승만과 그 주변의 위정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남한산성에 임금이 있다. 남한산성에 임금이 있다. 막이 바뀔 때마다 같은 내레이션이 반복된다. 암전 된 무대 어딘가에서 묵직하게 퍼지는 이 짧은 한마디는 장중하고도 암울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산성 바깥에서 청나라 병사들에게 유린당하는 민초들을 향하는 소리였고 산성 안쪽에서 화친을 하자는 주화파와 죽을 때까지 맞서 싸우자는 척화 파간의 끝없는 혀와 혀의 난전 속에서 궁극의 결정을 해야 하는 임금을 향한 소리이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라고 자조하는 최명길의 고뇌 또한 관객에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이 질문은 그와 대척점에 있는 김상헌과 오달재에게도 마찬가지다. 또한 최명길이 말하듯이 당면한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의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은 남한산성에 갇혀 있고 산성 바깥에는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가 당장 항복을 하지 않으면 홍이포를 쏴서 성벽을 단번에 부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당면한 일을 당면한다는 것, 그것은 최명길에게는 오직 청과의 화친만이 위기에 봉착한 나라를 구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김상헌과 오달재에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청과 싸우는 것이 최선이듯이.


원작에서는 주전파, 주화파 같은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당시 그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항복이든 맞서 싸우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왕과 위정자들의 고뇌와, 그리고 그들의 결정에 좌지우지되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 내고 있다. 뮤지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왕은 나라의 자존심과 백성의 삶 사이에서 고뇌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질서란 그런 것이다. 위정자란 그런 것이다. 그들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사실. 그래서 위정자의 언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해야 한다. 홀로 고뇌하는 최명길의 모습을 보면서 구한말 그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소위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위정자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고 일본과의 합방에 앞장을 섰다는 의미에서 이들의 존재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전자는 자신을 버리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그랬고 후자는 자신을 살리고 나라를 죽이기 위해서 내린 결단이었다.


결국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은 살아서 죽었으며 청나라 장수가 그의 기개를 높이 샀듯이 오달재는 죽어서 사는 길을 택했다. 임금 또한 청나라 장수 앞에서 바닥에 이마를 아홉 번이나 찍는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며 왕이 당면한 일을 당면했다. 만약 인조가 화친을 하지 않고 끝까지 성문을 열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의 역사는 또 어떻게 변했을까? 하지만 우리는 함부로 그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돌을 던져서도 안 된다.

역사에 가정을 두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지만. 그래도 나는 남한산성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궁금했다. 뮤지컬을 보고 난 후,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네가 왕이었다면, 김상헌이었다면, 최명길이었다면..."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무겁고 진중한 나의 물음에 슈퍼주니어의 예성과 배우 이필모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현란한 무대장치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테마 음악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정명수(예성)의 대사 중 '조선 놈들은 다 밟아 주겠다'를 들었을 때 정말 화가 났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화가 났다. 그리고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절을 할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인형이 부러질 때까지 절을 할 때 속으로 '그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인조가 칸에게 아홉 번이나 절을 하는 <삼전도의 치욕>의 순간을 인형을 등장시켜 마무리를 한 것은 나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남한산성이라는 뮤지컬을 봤다. 솔직히 나한테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열심 봤지만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한 그것은 죽어 버린 역사다. 우리는 역사라는 단어 앞에 항상 물음표를 두고 역사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들이 이 뮤지컬을 보고서 물음표를 하나 두었다면 나에게도 소중했을 주말 하루를 아이들과 함께 보낸 보람이 있지 않을까?


2009년 10월 28일, 오마이뉴스


11월은 모두가 그만두는 달


다다다. 다다다. 주방 선생님이 심기가 불편한지 고기를 다지는 도마 소리가 다른 때보다 요란하다. 신입교사 선생님과의 신경전이 갈수록 신경 쓰인다. 천진난만한 신입 선생님은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눈치다. 본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스트레스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추쌈에 쌈장이 들어가는 것은 기본인데. 상추만 시킨다.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런 식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

"선생님, 오징어 국에 무 들어가나요?"

"콩나물 국에 김치도 들어가요. 처음 알았어요."

"......."

쉰이 넘은 주부가 서른다섯의 총각한테 오징어 뭇국에 무가 들어가는지를 묻는 상황은 뭘까? 급식 선생님은 11월까지 하겠다고 통보를 해서 그런지 요즘 출근시간도 삼십 분 정도 늦는다. 오늘도 네 시가 다 돼서 출근했다. 다른 때 보다 준비할게 많은 메뉴를 보고서는 짜증이 났는지 언성이 높았다. 신입 선생님은 주방과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매번 엉뚱한 식재료가 와서 불편한 마음 이해는 하지만 좀 심한 것 같다. 가능하면 12월까지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내일도 이런 식이면 달리 생각해야겠다.

이틀 전엔 수학 지도를 해주시던 학습도우미 선생님도 이번 달 까지만 하고 그만두겠단다. 지난달에도 1학년 아이들이 감당이 안 되는지 그만두겠다기에 분반을 시켰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학교생활이 바빠질 것 같아서란다. h와 j도 요즘 지각이나 결석이 잦다. j가 갑자기 공부방을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와도 통화를 했다. 태권도 학원을 보내겠단다. 어머니에게 공부방을 정리할 건지 물었더니 정리하고 싶지 않단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다시 보내겠단다. 하지만 j는 그 뒤로도 일주일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3학년, 몇 달 후면 졸업인데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아이를 보내지 않는 이유가 뭘까? 확실히 정리를 하던가? 계속 다니게 하던가. 어린이집 선생님이 j는 초등부 때도 갑자기 그만두었단다. 설마 이번에도. 내가 모르는 뭐가 있을까, 싶지만 이유를 떠나 배려가 부족한 사람들을 대할 때 면 섭섭함이 먼저 든다.

h는 참 쉽지 않은 아이다. 그가 공부방에 오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육두문자에 어안이 벙벙. 그렇다고 화를 내자니 튀어 나갈 버릴 것 같은, 실제로 몇 번 그런 적도 있었다. 긴장하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들으라는 듯이 아이들에게 오늘 마지막이야,를 외치고 다닌다. 나한테는 죽어도 말하지 않는다.

"마지막이라니?"

"이제 여기 그만 다니려고요?"

" 왜?"

"재미없어요. 수업도 재미없고 선생님도 별로 마음에 안 들고."

"그만 두면 할 거 있어?"

"그냥 집에 있을래요."

"선생님이 왜 싫은데."

"그냥 싫어요. 이유 없어요."

어떤 식으로든 내가 상처를 받게 하려는 말들이 저 예쁜 입속에서 조용조용 흘러나온다. 초등부 고학년을 맡으면서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날 소주 서너 병을 비우고 옥상에서 대성통곡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제 j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업 시작 직전이었다. 수업 끝날 때쯤 찾아오시겠단다. 하지만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오늘은 안된다고 했다. 불편한 목소리로 j를 어떻게 하실 건지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전 계속 보내고 싶은데 아이 아빠가...."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혹시 우리 아이 명단에서 빼셨나요?"

"아니요! 아직."

"그럼 주중에 한 번 찾아뵙고 말씀드릴게요."

월요일. 수업을 마치고 h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h의 동생이다.

"엄마는?"

"집에 안 계시는데요."

"핸드폰은?"

핸드폰 번호가 잘못되어 있었다.

"h어머니시죠? 푸른 학교예요."

"아. 네."

"h가 푸른 학교를 그만 다닌다고 해서요. 몇 번 전화드렸었는데 번호를 잘못 알고 있었어요. “

계속 다녔으면 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렸다고 하니 어머니는 한숨부터 내 쉬었다. 얼굴은 못 봤지만 몸이 안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h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를 병적으로 싫어했어요. 상담도 받았었죠. 선생님 탓이 아니에요. 다시 이야기해보고 전화드릴게요."

11월은 모두가 그만두는 달일까? 아직 11월이 끝나지 않았으니 모두가 그만두지는 않는 달을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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