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토요일 저녁이었다. 내게 전화를 건 J는 몇 차례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J가 그 시간에 전화를 했다는 사실이 더 이상했다. 나는 J를 잘 몰랐다. J도 나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J는 중등부 졸업생이었다. 그가 중등부를 다닐 때 나는 초등부 교사였다. 그는 2월에 중등부를 졸업했고 나는 7월에 중등부를 맡았다. 우리는 생일파티 때나 한 두 번씩 볼 뿐이었다. 그런 J가 평일도 아닌 토요일 저녁, 그것도 아홉시가 훌쩍 넘은 시간 내게 전화를 했다.
“쌤, 지금 어디세요?”
“집에 가는 길이야. 왜?”
“죄송한데, 잠깐 나와 주실 수 있어요?”
“왜? 무슨 일 있어?”
“그냥...아니 저...”
J는 몇 차례 말끝을 얼버무렸다. 게다가 횡단보도 앞이라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임마 차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려. 크게 말해!”
“동생이 오늘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뭐? 누가 뭘 못 먹어?”
“밥 좀 사 주세요."
"밥?"
"반찬이라도.”
나는 여전히 J의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밥? 반찬? 그리고 쌀이 뭐 어쨌다고? 그러니까, J랑 동생이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그러니까 다시 정리하면 이 두 남매는 오늘 꼬박 세끼를 굶었다는 말인가?
“어디야?”
“집이요.”
“어디로 가면 돼?”
“종합시장 근처에요.”
“바로 갈 테니까. 그쪽으로 와!”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J는 그 사이에 한 번 더 확인 전화를 했다. 택시 안에서 생각이 복잡했다. 지금 J에게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이 녀석이 나한테 장난치나. 설마 토요일,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차라리 장난이면, 그래 혼을 내줄테다. 택시에서 내리자 J가 저만치서 멋쩍은 듯 손을 흔들었다.
“뭐야?”
"죄송해요.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어찌 된 거야?"
J는 거푸 머리를 긁적이더니 상황을 설명했다. 표정은 담담했다.
“어제 친구네 집에서 자고 집에 들어왔는데 동생이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은 것 같아요. 쌀은 있는데 반찬이 없어서요. 동생이 굶고 있는데 오빠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정말 죄송한데 반찬만 좀 사주세요. 17일 날 엄마 만나면 용돈 좀 주실 거예요.”
“아빠는?”
“몰라요. 아까 어디로 나가셨어요. 근데 오늘 아빠 생일이에요.”
“생일? 근데 너희들 두고 나가셨다고?”
“뭐 하루 이틀도 아닌데요."
"아빠랑 사이 안좋냐?"
"사실... 아빠랑은 말을 잘 안 해요.”
J를 잘 모르기는 했지만 그의 상황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그는 올해 초 고등학교도 등록금을 구하지 못해서 자칫하면 입학을 못할 뻔 했었다.
“동생은?”
“집에 있어요.”
“데리고 나와.”
“에이, 그냥 반찬만 좀 사주시면 되는데.”
“잔말 말고 앞장 서.”
“우리 집 작아요.”
“지금 내가 너네 집 평수 보러 가냐?”
동생을 데리러 집으로 가는데 J가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사내를 보더니 잠시 멈칫했다.
"아는 사람이야?"
"아빠요."
"......."
“잠깐만요. 아빠한테 말하고 올게요.”
나는 계단 입구에서 J를 기다렸다. J는 아빠한테 뭘 말하고 온다는 것일까? 공부방 선생님이 자기한테 밥을 사준다는 말, 아니면 반찬을 사주실거라는 말. 그 말을 지금 아빠한테 한다고. 그럼 아빠는 알았어? 하고 그냥 자기 갈 길을 가면 되는 건가? 종일 굶은 아이들을 두고 어디를 가는 거지? 나는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옷 갈아입고 나올 거예요.”
J의 여동생인 Y는 초등부 시절 특별활동으로 운동 반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Y는 처음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우선 뭐라도 먹자!"
"네."
"아는데 있냐?"
"없어요."
골목을 몇 번 돈후 처음 보았던 삼겹살집을 찾아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한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삼겹살 삼 인분 하고 공기 밥 두 개 주세요.”
J는 허기가 심했는지 단숨에 공기 밥을 비웠다. 고기도 구워지는 족족 판을 비웠다. J의 동생은 이 상황이 낯설었는지 말없이 텔레비전을 응시하며 천천히 밥그릇을 비워갔다.
“반찬은 뭐 필요해?”
“마른 반찬 몇 개만 있으면 되요”
“김치는?”
“냉장고 없어요.”
“언제부터?”
“이쪽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언제 왔는데?”
“8개월 정도.”
“그럼 여름 내내?”
“네.”
들을수록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J는 일상인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런 일 자주 있었어?”
“네.”
“어쨌어?”
“굶거나 여자 친구네 집에서 반찬 좀 얻어 오거나.”
“아빠는?”
“별로 말... 안 해요.”
“고기 조금 더 시킬까?”
“더 시켜주시면 고맙죠.”
삼겹살 2인분을 더 시켰다. J는 또 남김없이 판을 다 비웠다. 허기를 떠나서 고등학생이면 한 창 먹을 나이였다. Y를 먼저 집으로 보내고 J와 함께 마트에 들렀다. 김, 달걀, 음료수, 라면을 바구니에 담았다.
“이거면 돼?”
“네.”
“월요일, 신흥동 푸른 학교로 와. 쌀이랑 반찬 좀 챙겨 놓을 테니까?”
“알았어요.”
“언제든 전화 해.”
“네.”
“간다.”
“감사합니다.”
버스 정류장에 섰다. 7-2번이 정차해 있다. 오른쪽 창가에 앉았다. 기사가 시동을 걸었다. 창밖으로 모자로 보이는 두 사람이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부르릉. 부르릉. 마을버스가 출발한다. 화목해 보이던 모자는 뒤로 사라진다. 골목으로 사라지던 J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계단으로 사라지던 사내의 뒷모습도 어른거린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눈물은 어설픈 동정이나 감상이다. 그러니까 참아야 한다. 울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속절없이 눈물이 흐른다. 여자 하나가 나를 힐끔 쳐다본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엄지손가락으로 찍 눌러 눈물이 흐른 흔적을 없앤다. 빌어먹을 또. 하품을 한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린다. 아이, 씨팔, 버스 타지 말걸. 속에서 욕지거리가 튀어 나온다. 버스 안에서 대책 없이 훌쩍거리는 거 동생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 듣고 딱, 오년만이다.
2009년 1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