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중등부 와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다. 열린 교실에는 교회, 복지단체에서 후원받은 물품들이 풍성하니 박스 채 쌓여있다. 오늘 저녁이면 온전히 풀어져서 저마다 주인들에게 들려질 것이다. 그렇지만 걱정이다. 오늘 즐거울까? 행복할 수 있을까? 까닭은, 꼭 초를 치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그래도 행복한 게 좋잖아. 나도 아이들도. 나의 유년에는 크리스마스에 행복한 기억들이 별로 없었으니까.
m과 e가 일찍 왔다. 둘은 상기된 표정이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오늘을 만드는 주인공이라는 설렘 일터. 일주일 전부터 장기자랑 준비를 맡겼다. 사회도 멋지게 보라고 했다.
"너희들이 직접 판을 만들어 봐."
"아, 떨려 어떡해."
m은 대본을 짜고 e는 전화를 돌린다. 아이들 반응이 별로라고 시큰둥이다.
"저도 장기자랑해야 해요?"
e는 10분마다 한 번씩 달려와선 자기는 사회만 보겠단다. 그러다가 또 장기자랑하겠단다. 또 못하겠단다. 도대체 뭐가 진심일까?
“선생님들 인기투표해도 되죠?”
"안 돼, 하지 마."
군기 반장을 맡고 있는 내가 꼴찌일 게 뻔하다. 굳이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는다.
"할래요?"
먼지 낀 창문 너머로 버둥거리던 해. 한바탕 신경질을 부리더니 저쪽으로 넘어졌다. 파티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후원인들에게 보낼 문화제 초청장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또 만들어야 하냐며 입이 삐죽 나오지만 만들 때는 열심이다. 예쁘다 싶으면 본인이 가지겠다고 아득바득 우긴다.
일곱 시쯤 나누미 L샘에게 전화가 왔다. 차가 막혀서 여덟 시쯤 도착 예정이란다. 몇 놈이 카드를 내팽개치고 땡땡이를 친다. 풍선으로 장식을 시켰다. 아이들 신났다. 사방에서 뻥.뻥. 터뜨리는 사람 청소라고 해도, 여전히 뻥이다.
대본을 짜던 m과 e의 표정이 심상찮다. 장기자랑 참가할 사람이 없단다. 하고 싶지 않단다. 대본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볼멘소리로 지워버렸단다.
"나누미 선생님들이 장기자랑 상품을 준비할 텐데. 어쩌냐?"
"한 번 더 해볼게요."
그래도 하겠다는 아이들이 없다. m과 e 완전 의욕 상실이다. 나름 멋진 장기자랑을 기대했었는데 나도 조금은 지친다.
"그럼 하지 마."
스스로 판을 짜서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즐기는 것조차 선생님이 나서는 건 옳지 않다. 되든 안 되든 끝까지 맡겨 보자. 초청장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나누미 선생님들이 오셨다. 쿠키, 케이크, 모자 등등 선물 한아름이다. 참가자가 없어서 장기자랑은 결국 취소했다. 나누미 선생님 약간 실망한 기색이다. 졸업생도 멋쩍은 표정으로 들어선다. 며칠 전 밥 사달라고 전화했던 J도 함께다.
S샘과 상의를 했다. 개근상 몇 명을 뽑아서 주기로 했다. 나누미 샘들이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시간이 조금 남았다. 장기자랑을 안 하니 빈 시간이 뻘쭘하다. 혹시나 싶어서 장기자랑 준비한 사람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다들 눈치만 본다. 초등부 아이들은 서로 하려고 난리였는데. 설문 조사를 했다. 그런데 뒤쪽에 앉은 b와 u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오 분 후 결국 둘은 파바박 불꽃을 튀겼다. 2학년 교실에서 아이들 우르르 달려간다.
"선생님 남자 얘들 싸워요."
종례시간에 신신당부를 했건만. 며칠 전부터 쌓인 일들이 겹쳐서 힘들다. 둘의 다툼에 이마와 뒤통수에서 열이 오른다. 하지 말라고 해도 서로를 노려본다. b가 u를 칠 기세다. 다툰 이유도 유치 찬란이다. 안 되겠다 싶어서 언성을 높이고 엄하게 혼냈다. b가 나가버린다. 전화는 끊어 버린다. 열이 점점 더 오른다. 호흡이 거칠어지다 잦아든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계속된다. 오늘은 뷔페식이다. 잡채, 쿠키, 피자. 치킨. 아이들 신났다. 선물을 나눠준다. 1년 개근상을 받은 L의 입이 귀에 걸린다. 은색 현미경이다. 장난감이 아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는 눈빛들. B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오빠 집에 갔대요. 저보고 대신 선물 가져오래요"
아홉 시, 파티가 거의 끝나간다. 이번엔 s와 e의 표정이 심상찮다. 3학년 여학생이다. 입이 대자로 나와 있다. 물어도 답이 없다. 물을수록 입이 나온다. S샘이 장기자랑을 하지 않아서란다.
"어제 새벽까지 연습했는데."
"전 한숨도 못 잤단 말이에요."
볼멘소리로 답한다. 하고 싶지 않다고 할 때는 언제고. 강제로 시킨다고 할 때는 언제고. 사춘기 여학생들의 갈대 같은 맘에 또 한 번 내 심장과 다리가 후덜 거린다. 나누미 샘들이 준비한 케이크와 모자를 하나씩 건네며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누미 샘들과 간단히 맥주 한잔씩 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작년에는 어땠는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오늘은 나누미 샘들에게서 배운다.
이야기 중간 J의 일화가 나왔다. 감정을 뱉어버린 지극히 건조한 에피소드. 내가 모르던 사실 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무수한 딜레마에 빠진다. 요즘 J는 나의 딜레마다.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간다. 나는 그의 아버지를 모른다. 하지만 그가 밉다. 자신의 궁상과 지리멸렬함을 정확하게 닮게 만드는 그가 정말로 밉다. 그의 아버지를 닮아가는 J에게서 또 누군가를 발견한다.
아직은 불량하다. 또한 서툴다. 녀석들을 이해하기엔 나의 마음 심보가. 취소된 장기자랑도.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바라보는 어그러진 눈빛도. 스스로 판을 짜 보게 하는 것을 실패한 것도. 그래서 오늘 나는 기쁘거나 즐겁기보다는 내내 마음이 상했고 화가 났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냈다. 집에 오니 11시다. 천장과 벽에 걸려있던 풍선들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진다. 중등부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전날의 풍경이 이렇게 끝나간다.
2009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