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평가제,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지역아동센터 평가제


달콤한 휴가가 끝났다. 모처럼 기분을 낸 휴가 때문인지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사라졌다. 휴가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꼭 죽을 것만 같았다. 피곤은 항상 입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내 입안에 염증을 달고 살았다. 거의 석 달을 그렇게 보냈다. 때로는 다 포기하고 한 일주일 병원에 입원을 해버릴까? 싶을 정도로 나는 심신이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몇 배로 일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방 교사가 되기 전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적어도 일 년에 두세 번은 아프다는 이유로 결근을 했다. 돌이켜 보니 지난 4년간 개인적으로 휴가를 써 본 적이 없다.


그런 가운데 이번 여름휴가는 짧지만 적어도 내게 육체적 평온은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런 평안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평가제를 준비하려면 심신이 모두 평안해야 할 텐데 걱정이다. 게다가 휴가 이후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구러 미뤄둔 서류들이 책상 한편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9월에 있을 평가제다. 그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숨이 턱턱 막혔다. 온 세상이 (시커먼) 평가제의 얼굴을 하고 똘똘 뭉쳐서 나를 벼랑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지역아동센터 평가제. 필요하긴 하다. 아동을 보호하는 공부방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서류와 문서들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평가제일까. 혹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시작은 그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평가제여.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심히 피곤하리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기껏 월 운영비 백여 만 원 더 올려준다는 명목으로 매 순간 아이들을 고민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거의 두 달 가까이 한두 번 밖에 안 볼 서류(?)에만 매달려야 한다. 아이들을 수급권자, 차상위, 다문화 가정 등등으로 구분한 채 점수를 매기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수천 개의 공부방을 일렬로 죽 세워서 평가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역아동센터 담당 공무원들은 자기 관할 구역 공부방의 평가 점수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부방은 공부방대로 또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경쟁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평가 기준이나 이유야 그럴듯하지만 과연 실무자들의 생각도 그럴까? 긴말 필요 없다. 평가제를 확실히 하려면 먼저 운영비 지원을 제대로 해야 한다. 최소 육백만 원이다. 그러면 평가제 아니라 평가제 할아버지라도, 최소한 나는, 군말 안 한다. 하지만 [예결위]의 고매하신 윗분들은 작년 연말에 지역아동센터에 증액된 예산을 전액 삭감해 버림으로써, 최소한 나만이라도, 군말 없이 평가제를 따를 기회를 잃어버렸다. 공부방 교사는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한 지자체 공무원의 말은 또 어떤가? 그의 생각이 모든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생각이 아니길 예수님, 부처님, 마호메트, 그리고 중동의 사막 어딘가에 꿋꿋이 숨어 있을 [오사마 빈 라덴]에게 빌 뿐이다.


평가지표를 연다. 아이들 숫자를 세고 점수를 매겨본다.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방을 학원이라고 하지 공부방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하지만 이해가 간다. 이렇듯 공부방을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일일 텐데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 의해서 1점, 혹은 0.5점 하는 식으로 점수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규정대로라면 앞으로 차상위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은 공부방을 다닐 수 없다. 다니려면 부모님들이 우리가 차상위에 들어간다는 증빙자료를 일일이 동사무소 직원이나 학교 기관장을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거나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 와야 한다. 이건 평가제 이전에 학부모와 아이들 [인권]의 문제다.


며칠 전 평가제 때문에 급히 학부모 회의를 진행했는데 차상위 기준(건강보험료)을 말씀드렸더니 한 아이의 어머님 안색이 파랗게 질린다. 이 얼마나 코미디 같으면서도 비극적인 일인가? 영국의 오만함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도 이런 상황은 등장하지 않는다.


평가 이후의 상황은 또 어떨까? 상위 10퍼센트는 인센티브를 주고 하위 10퍼센트는 지원금을 깎거나 아예 중단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론 확인 안 된 소문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이 하달한 평가제 준비를 해야 하는 선생님들은 지금 이 순간 모든 것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지난주 수원에서 열린 평가제 교육을 할 때 담당 공무원은 평가제는 올해가 처음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도 또 나중엔 자기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말을 바꾼다. 평가제 교육은 공청회나 설명회가 아니라 거의 지침 하달 수준이다.


교육이 끝나고 나니 여기저기서 질문이 쇄도한다. 질문자들의 표정은 다들 아연실색이다. 담당 공무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몇몇 질문에 난색을 표하더니 시간이 없다며 궁금한 사항은 입구에 준비된 서면 용지로 물으란다. 이미 자기들끼리 평가 지표, 방법, 기준 다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따르라는 분위기다. 더구나 9월 4일이던 서면 평가서 제출일이 8월 25일로 당겨져 버렸다. 대충 헤아린다 해도 준비할 서류가 오십 가지가 넘는다. 나도 아연실색이다. 우리만 몰랐던가? 시군구 보고를 먼저 해야 하니 거기에서 또 며칠을 당겨서 제출해야 함은 안 봐도 비디오다. 제출한 서면 평가서를 기준으로 현장실사는 9월 중에 나온단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담당 공무원에게서 메일이 왔다. 20일까지 제출이란다. 비록 서면이지만 준비 기간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나는 지금 주말인데도 사무실에 있다. 때로 나는 일벌레(?)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카뮈의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은 무료하기라도 하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무실에 나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만 마음만 급할 뿐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당연히 진척은 없다. 그냥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가 하염없이 이런 넋두리를 해대고 있다.


때로 산다는 것에 의문(?)을 갖기는 하지만 요즘엔 공부방 교사를 한다는 것에 의문 부호를 많이 붙인다. 아니 늘 그랬다. 나날이 강도만 더 세졌을 뿐이다. 무엇 때문에 사는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가? 처우나 급여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공부방 아이들을 위한 교사들의 헌신을 그저 짓거리(?)라는 표현으로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당분간은) 이 짓을 해야 한다.


9월 11일, 오후 두 시부터 평가를 받았다. 평가는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두 명의 평가위원들은 평가에 들어가기 전에 평가제의 취지가 공부방 운영을 잘하게 도와주기 위함이지 힘들거나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은 서류를 하나하나 검토하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질문을 했다. 평가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였다. 그들은 평가 내내 고압적이거나 권위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겸손했다. 하지만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실무자들의 고충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서류를 준비하는 내내 잠 못 이루며 긴장했던 시간들에 비해 한 시간 만에 끝나버린 평가는 허탈했다. 그들은 평가가 끝날 무렵 내게 평가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평가 이후의 결과가 궁금했다.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단다. 하지만 평가 점수가 나쁘게 나왔다고 해서 지원금을 깎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일단은 안심이다. 그리고 후련하다. 확실하게 결정된 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2009년 8월 16일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


"선생님, 저 더 이상 못하겠어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불안 불안하더니 드디어 P선생님이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냈다. 아직 두 달이 지나지 않았다. 어제 몸이 아파서 출근 못할 때부터 짐작은 했었다. 아니 훨씬 전부터 다시 초등부로 가고 싶다는 말을 할 때부터 짐작은 했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진짜 이유는 뭘까? 예전의 트라우마가 다시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되었는데.


P선생님만이 아니다. 나도 다시 초등부로 가고 싶다. 오전에 일이 있어서 수진동에 들렀는데 참 아늑하고 편안했다. 보는 사람들마다 걱정 가득하니 살이 빠졌단다. 내가 봐도 요즘 몰골이 영 아니다. 그나저나 어쩌냐? 난 설득은 젬병인데. 있어야 할 이유를 하나도 못 찾겠다는 선생님한테 조금만 더 견디면 이유가 생길 테니 참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퇴근시간도 너무 늦고, 아이들도 적응 안 되고, 또. 또. 차마 말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도 같은데.


이유를 못 찾겠는 것은 결국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금은 그냥 이 모든 상황들을 버티는 것일 뿐이니까. 목적도 의지도 보람도 당최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그렇다고 선생님 맘 잘 알았어요, 내일부터 그만 나오세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오늘 아침 공은 지부장님 손으로 넘겼다. 튀기든지 굴리던지 지부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만 그래도 그렇다. 이제는 담담해질 때도 되었는데 다리가 몹시 후들거린다. 함께 시작했던 동기들도 다 떠나 버리고 없다. 녀석들보다는 센 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한 번도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 이번만큼은 나도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이곳을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다.


2009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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