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말하는 '실존주의'
사르트르를 읽는다. 내게 사르트는 언제나 '현재형'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문장을 이해해야 한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를 그가 쓴 소설'구토'의 주인공인 로캉탱을 통해서 설명한다. 그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의식하고 무언가를 주절 거린다. 그렇지만 로캉탱은 본질에 우선하는 자신의 실존을 제대로 인식했을까? 그는 의식하고 주절 거릴 뿐 본질에 앞서는 실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그의 실존은 구토로 나타날 뿐이다. 그는 구토의 이유를 알고 싶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식한다. 그의 독백은 실존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18세기 인물인 룰르봉의 전기를 집필하거나 애니와 독학자를 만나는 과정에도 그는 실존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 결과로 별것 아닌 일에도 그는 구토를 한다. 햇빛의 강렬함이 살인의 이유였던 '이방인'의 뫼르소가 그랬듯이. 사건의 원인과 결말은 다르다.
로캉탱은 소설 속에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묘사한다. 누군가가 그의 기록대로 얼굴을 재현한다면 이 세상에는 또 하나의 로캉탱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말하듯 그것은 만들어진 것이기에 실존이 아닌 본질이다. 실존은 선택이자 불안이다. 본질은 의자나 볼펜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앉거나 무언가를 쓰기 위한 것이다. 목적과 방향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인간은 실존과 본질 두 가지를 공유한다. 그리고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트가 말하듯 인간은 세상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존재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 즉 실존이다. 실존은 존재가 아닌 무. 무란 없음이 아니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무엇이다. 자유란 선택이며 선택은 불안을 동반한다. 선택은 책임을 진다. 볼펜이나 의자는 선택하거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사르트르는 인간과 사물의 다른 점을 그렇게 설명한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아무렇게나 던져졌지만 삶을 향한 목적이 없기에 실존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직 인간만이 실존적이란 말인가.
실존은 자유를, 자유는 선택을, 선택은 불안을 동반한다. 지금 나는 불안하다. 지난 것들에 대한 불안, 다가올 것들에 대한 불안, 그리고 현재의 총체적 삶에 대한 불안. 그렇다면 나는 실존으로서 자유로운가. 최근에 몇 개의 크고 작은 선택을 했다. 그리고 어떤 선택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불안은 나의 실존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나의 자유는 보다 거대한 본질 속에 갇혀 버린 자유다. 내 실존은 거대한 본질 속에서 희미하다. 하지만 나는 실존을 위하여 로캉탱이나 뫼르소처럼 유의미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
나는 실존 앞에 마비를 추가할 뿐이다. 마비 앞에서 실존은 무의미하다. 뫼르소와 로캉탱의 시대는 물질은 폭발하고 정신은 분열하는 시대였지만 마비에서는 자유로웠다.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준 마비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사람들은 수백억의 연봉을 부러워할 뿐 그 부조리함에 분노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느냐?라는 친구의 물음에 '값비싼 자동차'로 답했다는 텔레비전 광고에 현혹된다. 막장 드라마에 익숙해진 우리가 현실의 패륜이 둔감해지듯이 우리의 의식은 자신도 모르게 마비된다. 빨간약, 혹은 파란 약?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마비에서 깨어날 수 있는 선택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거대한 본질은 우리가 영원히 그 체제에 순응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서지만 마비의 뒤에 있다. 실존으로서 자유는 마비라는 족쇄를 벗어야 가능하다. 나의 제한적 자유도 마비에서 비롯된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마비되어 있다. 나의 신체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신은. 사고는. 거대한 시스템에 조그만 나사처럼. 실체는 없으나 존재하는 것. 그것도 하나가 아닌. 나를 넘어선, 인간은 자유로운가. 그렇다고 느끼는 것일까. 조그만 나사가 풀리면 전체가 무너지고. 마침내 마비에서 풀려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마비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사르트르가 말하는 나의 실존은 비로소 의미를 가질 것이기에. 그 후의 삶에 아무런 목적이나 방향이 없을지라도. 그것이 완전한 내 의지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