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회복지사의 죽음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며칠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사회복지사 한분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가족 모임중 심장마비를 일으켰단다.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볼 때 마다 환한 웃음이 보기 좋았고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분이셨다.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시던 분이셨는데 그를 보내야 하는 시간 마음이 끝없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시청 광장에서 그를 아는, 그와 함께 일했던 사회복지사들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했다.
시청광장 한쪽에 남매 둘이 보였다. 아빠를 멀리 떠나보내는 자리. 그러나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 못할 나이다. 어린 두 남매의 모습을 보니 저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참으려고 했지만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민원과 격무에 시달리던 사회복지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같은 사회복지사로서 슬프다. 나 역시도 일을 하다보면 클라이언트에게 크고 작은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협박이나 폭언도 당한다. 그럴때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그럼에도 생의 의지는 누구보다 강하다.
산다는 건... 참... 뭘까? 소중한 인연들이 한순간 이 세상에서 그 존재가 사라진다는 건 말이야. 우리는 이 세상에 과연 어떤 의미로 오는 걸까? 존재는 사라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을 것이다. 죽음은 살아 있음과 동일하다. 나 또한 망각을 거부한 채 그분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주어진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은 숱한 고민과 선택, 도전을 요구한다. 결심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용기는 언제나 문 바깥에 서 있고 나는 그 손잡이를 잡지 못한다. 누군가 밀어주지 않는 한 후회는 늘 나의 몫이다.
신흥동 푸른 학교에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들이 오랜만에 나누미 샘 집에서 다시 모였다. 시간이 지나 이제 서로가 서있는 자리는 달라졌지만 충분히 고민하고 최선을 다했기에 서 있을 수 있는 당당한 자리다. 세상을 좀 더 밝게 만들기 위해 서로가 함께 노력했던 시간들이 화사한 웃음과 밝은 미소로 돌아온다. 우리가 노력하던 시간 이후의 세상은 좀 더 밝아졌을까?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니 정말 좋았다. 옥상달빛을 받으며 함께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기울이는 술 몇 잔에 별로 취하지도 않았다. 마치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놀이기구들도 신기했다.
집 안에 탬버린과 스탠드 마이크라니...
타인을 위하는 아름다운 삶만큼 자신들의 삶도 재미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 부럽고 대단하다. 함께여서 더욱 아름다운 사람들의 자리에 나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힘들었던 시간들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2015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