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염소는 4만 원에 팝니다.
음메에 에... 하는 그 검은색 염소 말이에요. 염가이긴 하지만 좀 비싸긴 하죠? 제가 살 거냐고 묻는다면 혹시 사실 건가요? 뭐, 그러실 필요까진 없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염소 한 마리 사다가 어디다 쓸라고요. 카톡 이모티콘으로 쓸 수도 없는 일이고. 고개를 갸우뚱할 필요도 없어요. 고리타분한 분석은 잠시 휴지통에 처박아두고 직관으로 느낌 가득, 충만, 뭐~그런 거 말이에요. 그냥 유통기한 한 달 정도인 개당 칠천 원짜리 중국산 이어폰 하나 왼쪽 귀에 꽂고서 가로등 아래 넓은 운동장을 한가롭게 거닐며 '옥상달빛'을 불러는 거죠.
'옥상달빛'이 좋아요.
홍대 근처에 있는 '오아시스 세탁소'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거든요. 진짜 '옥상'에서 보는 달빛도 좋고 '옥상달빛'의 노래도 잔잔한 게 좋더라고요. 진짜 옥상은 새로 이사를 온 뒤로는 달의 뒷면만큼이나 요원한 곳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뭐~아쉬운 대로 지금 여기 운동장 가로등 빛도 좋네요. 옥상달빛의 노래가 좋아요. 과하지 않은 리듬과 멜로디가 옥상 아래의 지친 나의, 우리들의, 거리의 강아지 길냥이까지도, 그들의 삶을 잔잔히 보듬어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거든요.
왼손잡이.
이라는 곡도 좋아요. 그렇지만. 제가 아는 그 4만 원짜리 염소는 에스칼레이터가 7층까지 연결된 백화점에서 정찰제로 사고파는 게 아니에요. 동물원에서 박제된 염소가 아닌, 아래는 개천이 흐르는 경사진 풀밭에서 싱싱한 풀을 뜯어먹는 살아있으면서 자유로운 염소를 말하는 거예요. 염소는 사고파는 게 아니에요. 동물원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백화점 식품코너에 있지도 않아요. 마치 왼손잡이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러고 보니
왼손잡이는 불편한 게 참 많아요. 전 왼손잡이거든요. 밥을 먹을 때도, 글씨를 쓸 때도, 기타를 칠 때도, 심지어 비보호 좌회전 앞에서 신호를 받아야 할 때도 왼손잡이는 좌우가 헷갈리거든요.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왼손잡이를 위한 기타를 구할 수 있었다면 전 아마도 락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린 '지미 핸드릭스'나 백두산의 '김도균'처럼 꽤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건 정말 우연이예요.
지금 mbc에선 기타가 또 하나의 주인공인 '비긴 어게인'을 방영하고 있거든요. 무한도전 멤버들이 더빙을 했네요. 왼손잡이. 제 삶은 아직은 오른손잡이가 되지 못한 왼손잡이 같거든요. 왼손잡이를 위한 글러브를 찾기가 쉽지 않듯이,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면 멀리 날아가지 않듯이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오른손잡이가 정답이라는 확신으로 사니까요. 굳이 오른손잡이가 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네요. 불편하고 부당할지라도 앞으로도 모를 가능성이 높죠. 그래도 이번 한가위는 좀 여유 넘치고 좋았어요.
예전처럼 꽉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아등바등하지도 않았어요. 미필적 고의의 '행복함'까지는 아니었지만.
임페리얼 12년 산.
무엇보다 4만 원짜리 염소를 살 필요도 없었고, 왼손잡이여서 불편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보름달이 한풀 꺾인 오늘 밤 제 마음은 유례없이 찬란하고 제 나무의 밝은 그림자는 다섯 개네요. 저기 저 나무의 사람들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운동장의 가로등은 여섯 개인데 말이죠. 아마 잉여의 그림자 한 개는 추석 내내 제 할 일을 끝내 놓고 부끄럽다며 구름 뒤에 숨어버린 옥상 위의 보름달빛이겠죠. 잠시 후 집에 들어가면 절반쯤 남은 임페리얼 12년 산을 소주잔에 따라 마시고 잠을 청할까 봐요.
2015년 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