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에서 흐느끼던 여인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오랜만에 평일 오후에 사무실을 벗어났다. 오후의 행선지는 지하철 3호선 녹번역 근처의 '트래블러스맵'이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진행하는 공모사업 '길 위의 희망 찾기' 지원신청서를 접수하러 가는 길이다. 공모 마감은 오후 6시까지다. 지난번 '따복 공동체' 공모 마감 시한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다. 하루 종일 동동거렸다. 일하는 방식과 스타일이 다른 데서 오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시간이 약이다. 과정에서 생기는 과잉된 감정은 효율의 극대화로 승화시키면 된다.
오후여서일까.
지하철 3호선은 비교적 한산하다. 지하철을 들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가 넘친다. 나처럼 조바심을 내거나 일상을 서두르는 기색은 없다. 정류장을 두 개 정도 지났을까. 지하철 안으로 들어오는 한 여자의 얼굴이 발그스레하다. 브라운 계열의 가방을 어깨에 걸친 그녀는 키가 상당히 컸다. 흰 운동화, 감청색 청바지, 대문자 영문이 박힌 반팔 티셔츠. 그녀의 볼은 발그레함을 넘어서 얼굴 전체에 홍조를 뗬다. 두 눈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사진출처-pixabay
그녀는 내가 앉은자리에서 대각선으로 좀 떨어진 곳에서 섰다. 여자가 조용히 흐느낀다.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살면서 그런 울음을 접할 때가 있다. 버스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리 나지 않는 울음은 머리가 아닌 두 발 아래부터 스며든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녀를 흘깃거린다. 왁자하게 떠들던 학생들도, 노년의 부부도, 파란 시선의 외국인도. 그녀가 내게로 온다. 그녀는 사람들에게도 간다. 그녀는 가장 무표정해야 할 공간에서 가장 슬픈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내고 있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이 떠오른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후략...
시인의 시구처럼 사람들 속에서 찰나로 스치는 인연일지라도 때로는 전부가 된다. 그녀는 오늘 집을 나서기 전, 혹은 지하철을 타기 전에 어떤 슬픈 소식을 들었던 것일까? 그녀의 소리 없는 울음은 연인과의 이별보다는, 가까운 가족 중 한 명과의 영원한 이별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내가 녹번역을 내릴 때까지도 소리죽여 흐느꼈다.
은평구 사회적 경제 허브센터. 트래블러스맵에 도착했다. 마감 한 시간을 남기고 신청서를 접수했다. 은평구의 첫인상은, 낯선 것을 대할 때의 새로움이다. 많은 아이들의 염원이 담긴 이야기 하나가 끝났다. 길 위에서 희망을 찾는다. 작년과는 다르게 이번엔 아이들의 이야기가 백두산을 타고 돌아서 [시즌 2]로 이어질 수 있을까? 공정여행. 트래블러스맵. 자세히 보니 실내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상상력이 풍부해질 것 같은 구조다. 계단을 내려가다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오후 5시다. 긴장이 풀어진다. 허기 가진다.
이것은 안도의 허위나 공허의 폐허가 아닌 진짜 배고픔이다. 녹번역 4번 출구 앞에 카페테리아 하나가 보인다. 여기도 실내가 예쁘다. 댄디보이나, 차가운 도시남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아메리카노와 햄버거 한 개를 주문했다. 라깡의 일갈처럼 나는 한 끼를 때우는 순간에도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럼에도 근래에 먹었던 식사 중 가장 맛있는 한 끼다. 다시 지하철 3호선에 올랐다. 목적지는 도곡을 경유해서 태평역 3번 출구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정류장을 하나 둘 지날수록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만 나의 행선지는 저들처럼 삶이 아닌 일터로 향한다. 여전히 저녁이 없는 삶의 아이러니. 이제 그 여인의 울음은 멈췄을까?
2016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