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스며든 흰구름처럼

by 김인철

반바지가 어색하지 않은 오후다. 바람 햇빛 온도 습도. 날이 너무 맑아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무례해 보일 정도다. 요 며칠 비가 계속 내렸는데 오늘은 하늘과 주변이 투명하다. 하늘은 거대한 도화지 위에다 물을 가득 머금은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 흰 구름은 하늘에 떠 있다기보다는 수채화 물감처럼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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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거리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하고 있다. 우연히 비껴가는 시선에도 그의 전체를 상상할 수 있다. 그가 살아온 인생까지도. 겉으론 바뀐 게 없지만 각자의 마음속엔 불안이 하나씩 새겨졌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저 푸른 하늘엔 코로나19는 없겠지? 인간의 높이에서 조금만 높아지면 세상은 건강하고 평온해지는 걸까? 허리춤에서 살랑거리다 초록의 잎들 사이에서 코로나19는 사멸되기를.


차르르, 차르르


일요일이 지나는 시간이 소년의 자전거 바퀴 속으로 흘러간다. 초당 30 프레임은 넘을 소년의 두 바큇살 소리가 바람을 타고 시원하게 들린다. 운동장을 달리는 사내의 거친 숨소리는 덤이다. 칠이 벗겨진 골대 근처엔 바람이 빠진 축구공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누군가 와서 골대를 향해 뻥 차주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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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왈왈.


집에 가면 현관에서 발바닥이 닦여질, 제 스스로는 견생 동안 하지 못할, 푸들은 혓바닥을 길게 내민 채 빗물이 스며드는 축축한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헤헤거리는 갈색 푸들의 시선은 이십 미터 남짓 거리에 있던 제 주인의 발꿈치다. 맞은편의 여자는 멀어져 가는 푸들을 뒤로한 채 시선은 오늘 밤 달이 차오를 산으로 향해있다.


나의 시력은 1.0에서 1.2 사이를 오간다. 사물과 사람, 사랑과 때로는 그 이상의 것들을 좁은 시선에 가두려는 욕망에 사로 잡힌다. 삐걱거리던 내 관절의 일부가 아무도 앉지 않았던 계단에서 멈출 때 저들은 나의 풍경이 되지만 내가 다시 움직일 때 나는 또 계단에 앉을 누군가의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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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운동장에 주사위 두 개가 던져져 있다. 헤진 모양새로 보아 수천번은 하늘 위로 던져졌을 저 주사위는 무슨 용도였을까? 저 주사위를 들어서 운동장 위로 힘껏 던지면 6개가 나왔으면 좋겠다. 6개는 한 번에 6칸을 건너뛰는 완결이니까. 나는 지금 1칸이나 2칸이 아닌 6칸을 살고 있으니까. 주사위를 통해서 확인받고 싶다.


어떤 날의 나는 사람들 속에 퍼진 물감처럼 스며 있다가, 또 어느 날의 나는 그들 사이에서 구름처럼 붕 떠 있기를 반복한다. 대개는 풍경이 나를 지난다. 하지만 가끔은 풍경이 멈춘채 나를 응시할 때가 있다. 나를 응시하는 시선이 없어도, 스스로 풍경이 되는 그런 순간이 좋다. 오늘처럼. 어제처럼. 주사위처럼, 바람이 빠진 공처럼. 운동장을 나오면서 골대 근처에 있던 바람 빠진 축구공을 힘껏 찼다. 공은 골대를 턱없이 빗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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