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브루나이 국왕에게'를 통해 그동안 제가 문예지와 수상집에 발표했던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단편이지만 한번에 읽기엔 분량이 많아서 나누어서 올릴까도 했지만 연속성을 위해서 전제 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6년 사이버 문학광장 소설부문 7월의 우수작 선정.
*2008년 제17회 전태일 문학상 작품집 수록
1.
폐하, 이번엔 완전 똥 밟았어요. 번역 말이에요. 역사와 사회 문화적 배경이 다른 두 개의 언어를 가능한 한 등가의 원칙을 적용해서 일대일로 치환하는 정신 집약적 노동 말이에요. 오전 내내 작업한 분량이라곤 고작 A4용지 한 장이 전부라니까요. 못해도 하루에 다섯 장씩은 해야 마감 일자를 제대로 맞출 수 있을 텐데 정말이지 한숨만 푹푹 나오는군요. 지금까지 동화 책 두 권, 대학원생 원서 두 권 번역한 것이 제 경력의 전부에요. 대기업 사보나 월간지에 실린 잡문을 포함시킨다 해도 겨우 다섯 권이나 될까요. 정말 일천하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한 출판사로부터 꽤 유명한 작가의 소설 번역 의뢰를 받았지 뭐예요. 전에 동화책 한권을 같이 작업 한 적이 있었는데 독자들 반응이 꽤나 좋았나 봐요. 그래봤자 매절로 계약하는 바람에 출판사 사장만 좋은 일 시켰었죠. 그 사장이 잔뜩 교태 섞인 음성으로 이번엔 인세로 계약을 하자고 하네요.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맡겠다고 했지요. 사실 예전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후회막급이에요. 무슨 놈의 영어소설에 불어나 독일어가 더 많이 들어가 있다니까요. 심지어 후반부에는 일어랑 한문까지 집어넣었더라고요. 작가가 오리엔탈리즘에 심취했었다니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결초보은’이나 ‘토사구팽’같은 사자성어들을 의미나 제대로 알고서 썼을까 싶어요. 어쨌거나 책임감이 개구리 왕눈이만큼이나 투철한 저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일을 지킬 거예요. 책을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지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국적불명의 단어들이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환영에 사로잡히곤 해요. 동공과 흰자위가 흐릿해져서 그런지 창밖을 보면 까만 하늘에 오롯이 붙박여 있어야 할 별들도 나사가 풀린 것처럼 흐물흐물 거리다가 지상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이렇게 심신이 공감각적으로 피곤해지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요. 납기가 촉박하지만 다음날이면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어요. 편지를 쓰고 싶어요.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요. 섬광처럼 번득였어요.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다정하게 포옹을 하던 폐하의 모습 말이에요. 아마도 ‘세계의 부자들이 사는 법’이었을 거예요. 사파이어가 촘촘히 박힌 금빛 왕관과 팔과 목에 두른 화려한 장신구들이 삶의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폐하의 황금빛 미소와 정말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더군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노블레스 오블리제. 폐하 미소 속에서 못가진자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를 앙양시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폐하. 도대체 오블리제는 노블레스의 어디다 숨겨 놓으셨나요? 하나둘셋, 무궁화를 셀까요. 몇 개나 세면 찾을 수 있을까요? 흔히들 사람들은 폐하의 나라를 브루나이라고 부르더군요. ‘평화의 거처’라는 뜻이라지요. 그곳에서 폐하의 공식 명칭은 술탄, 우리식으로 하면 국왕이나 대통령이지요. 동남아시아의 보르네오 북쪽 해안에 둘러싸인 두 개의 해안과 정글로 구성된 작은 나라, 막대하게 매장된 석유와 가스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면서도 가장 부유한 나라중의 하나라지요. 폐하의 나라는 정말 지상 낙원인가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런 곳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멕시코를 갈일이 있으면 유카탄 반도를 거쳐서 가보고 싶어요. 사람들은 태국을 거쳐서 말레이 반도로 들어가라더군요. 직선과 곡선의 차이를 모르고서 하는 말들이에요. 직선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단순해서 싫어요.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하는 운전자처럼 말이에요. 구불구불한 곡선을 타고 돌다 보면 어지럼증이 일고 속이 울렁거리지만 심심하지는 않잖아요. 허락만 하신다면 아주 오래 오래 머물고 싶기도 해요. 살아봐서 좋으면 이민을 신청할지도 모르겠어요. 폐하, 넋두리는 집어치우고 다시 번역이나 할까요? 아니에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17인치 모니터에 ‘양재튼튼B’체로 장문의 편지를 쓰고 말거예요. 벌써 두 장이나 썼는걸요. 부르릉, 부르릉. 환경 미화원들의 청소차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새벽 두시가 가까웠군요. 청소차 옆에는 눈빛이 게슴츠레한 가로등 하나가 비스듬히 서 있어요. 피사의 사탑 같은 저 가로등은 언제부턴가 취객과 떠돌이 강아지들의 화장실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어요. 시차가 별로 나지 않는 폐하의 남쪽 나라도 밤이겠지요. 검은 머리를 풀어헤친 쓸쓸함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공사판의 십장과 주먹다짐을 하는지 컴컴한 뒷골목이 무척 시끄러워요. 그놈은 술에 취해 무기력해진 사내를 가볍게 넘어뜨리고 나서는 조만간 제 방의 창문을 두드리겠죠. 직감으로 알 수 있어요. 폐하께서 방이 이천 여개나 되는 궁전에 저를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았듯이 저도 놈을 결코 초대한 적이 없지만 매일 밤 지긋지긋하게 찾아와서 괴롭히곤 했거든요. 그럴 때면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었어요. 그러다 보면 제풀에 지쳐서 떨어져 나갔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놈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어요. 할 수 없이 창문을 열고 놈을 안으로 불러들였어요. 하지만 저도 그렇게 쉽게 굴복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처절히 외로워 하다가 그냥 돌아가도록 검은 외투를 바짝 여민 채 칼바람이 활개 치는 밖으로 나왔어요. 어둠에 잠긴 동네는 횡횡 거리는 바람소리만 빼면 고양이 죽은 듯이 고요했어요. 희미한 불빛들이 새 나오는 저마다의 창문에는 한껏 독기 오른 쓸쓸함이 흡사 문어다리의 흡반처럼 감옥 같은 창살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채 한번만 열어달라고 두들겨 대더군요. 검은 도포를 입히고 갓만 씌우면 영락없는 저승사자의 모습이에요. 바투 여며 쥔 외투 속으로 파고든 칼바람이 속살까지 파고드는데 어깨 죽지가 몹시도 시리더군요. 마지막 단추까지 잘 여민 다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용식이, 넙죽이, 봉순이, 칠봉이 등등 적어도 제가 아는 녀석들은 아직 잠을 잘 시간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채 십분도 지나지 않아서 풀이 죽고 말았어요. 모두들 따뜻한 방구들 속으로 기어 들어갔는지 전화를 안 받더라고요. 그래도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다행히 한 친구가 멀쩡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어요. 그 녀석과 한참을 웃으며 떠들었는데 통화를 끝낼 때 쯤 이 인간이 저보고 누구냐고 묻는 거예요. 삼십분도 넘게 수다를 떨었는데 말이에요. 끝자리 번호 하나가 틀렸지 뭐예요. 근데 어쩌면 그렇게 넙죽이와 목소리가 똑같 던지요. 수화기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겨 나오는 것만 같았어요. 그치는 술이 취해서 그렇다 쳐도 맨 정신이었던 저는 졸지에 바보가 되었다니까요. 담장 밑에 숨어 있던 허무함이 와락 달려들더군요. 뒤돌아볼 새도 없이 냅다 집으로 달렸어요. 절반쯤 달렸을까요. 헉헉헉.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더 이상 뛸 수 가 없었어요. 내장이 끊어지는 것처럼 배도 땅겼고요. 폐 속으로 찬바람이 들어가자 갑자기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어요. 세상에 오직 저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폐하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나요? 겨우 쓸쓸함을 몰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제 안에는 지랄 맞은 궁상이 들어와 코알라처럼 쑤욱 목을 내밀고 있었네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길바닥에서 대자로 뻗은 청개구리의 복수일지도 몰라요. 심심하다고 뒷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지 말았어야 했어요. 잠자리의 날개와 다리를 함부로 꺾지 말았어야 했어요. 회식자리에서 상사 앞에서 소주잔을 엎어 놓는 것이 아니었어요. 가학적인 기질에다가 사회성은 영 제로라니, 여하간 저의 부실한 인간성은 항상 결정적인 상황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니까요. 더구나 최신형 핸드폰을 성능 좋은 전자시계쯤으로 여기는 기계치를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요. 내일부터라도 엄지손가락 꾹꾹 눌러가며 그동안 무심했던 친구들에게 문자 메시지와 멋진 음악도 선물하고 종종 시끌벅적한 호프집이나 노래방에서 광란의 밤도 보내야겠어요. 물론 친구들의 애경사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겠어요. 하지만 폐하는 그러실 필요가 없겠죠. 엄지손가락 꾹꾹 눌러가며 메시지를 보내지 않아도 몸부림을 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세계 각국의 국왕이나 대통령, 혹은 그에 준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사귈 수 있잖아요. 설사 지금은 그들을 잘 모를지라도 폐하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친해 질 수 있잖아요. 슈마허를 좋아하시나 봐요. 폐하의 취미가 자동차 수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레이싱도 즐긴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았어요.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에서 시속 300km로 달리는 폐하의 모습이 선뜻 상상이 되질 않는군요. 전 레이싱은 고사하고 운전면허도 없거든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로 취소를 당했거든요. 음주운전이라면 억울하지나 않지요. 바보 같이 적성검사 기간을 놓치는 바람에....흑흑흑.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젠장, 아무리 핸드폰 버튼을 눌러대도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없잖아요. 게다가 지금쯤이면 빈방에 홀로 구겨져 있을 쓸쓸함도 훌쩍 거리다가 돌아갔을 테니까요.
2.
다시 집 앞에 섰어요.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파란 대문은 녹이 슬어서 시커멓게 탔어요. 저 아래 어두운 골목에선 잿빛 바바리코트를 걸친 사내 하나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터벅터벅 걸어 올라오고 있네요. 지금 시각이면 막차도 끊겼을 텐데 아마도 할증료가 붙은 모범택시를 타고 왔겠죠. 어깨가 축 쳐진 사내의 강파른 등짝엔 몇 년을 힘들게 이고 살았을 고단한 삶의 더께가 겹겹이 쌓여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허리가 굽는 이유는 차곡차곡 쌓인 고단한 삶의 더께가 말랑말랑 해진 뼈와 척수 속으로 무겁게 녹아내리기 때문이에요. 작년에 돌아가신 저의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산과 벼랑을 깎아서 만든 이곳은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와야 해요. 겨울엔 운전경력 이십년의 베테랑 기사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면서 승차 거부를 하는 막강한 동네거든요. 언덕을 하나 넘으면 시멘트로 닦여진 조악한 계단이 나오는데 그곳을 오를 때면 다섯 살 먹은 유치원생도 만감이 교차하게 마련이에요. 골목길 중간 중간 걸려있는 각종 플래카드엔 막강한 동네의 재개발 관련 문구가 쓰여 있어요. “고도제한 완화 확정.” “축, 2030년 재개발 확정.” 같은 것들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적색 플래카드에 듣기만 해도 살벌한 문구들이 쓰여 있었거든요. “달동네 강제 철거 무조건 철회하라!” “시립 병원 설립 백지화 시킨 OO시장 자폭하라!” 일요일 오후 두시만 되면 동사무소 앞에서 붉은 확성기를 든 남자가 소리질러대는 통에 시끄러워서 낮잠을 잘 수가 없었지요. 세 번째 고개를 절반쯤 올라갈 때쯤이면 아무리 체격이 건장하고 폐활량이 좋은 남자라도 숨을 켁켁 거리며 버석거리는 시멘트 계단이 에스컬레이터로 변하는 상상을 하게 되죠. 어쩌면 폐하가 살고 계신 화려한 궁전보다도 막강한 달동네의 시멘트 계단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세상에나,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요. 산을 깎아서 만든 동네는 장마철이 되어도 끄떡없어요. 이십년을 넘게 비가 내려도 물에 잠길 염려가 없거든요. 불도저와 포크레인 서너 대면 단 며칠 만에 폐허가 되어 버리는 막강한 동네지요. 비가 조금만 내려도 검은 실타래처럼 꼬인 전신주에서 지지직거리는 화려한 불꽃 쇼를 감상 할 수 있는 천하무적 달동네지요. 그렇지만 듬성듬성 허물어진 담벼락과 엿가락처럼 사방으로 길게 늘어진 검은 전선줄, 그리고 바닥에 뿌려진 연탄재와 교회 첨탑의 붉은 십자가가 기기묘묘한 조화를 이루는 비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하루 종일 타인의 시공간에 결박당했던 육체와 영혼이 달동네의 정겹고 살가운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요. 지금 제가 칠년 째 살고 있는 파란 대문이 있는 집도 그런 풍경 중에 하나이지요.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진 전형적인 벽돌식 다세대 주택이에요. 외벽 전체를 붉은 벽돌이 둘러싸고 있어서 새로 지어지는 세련된 건축양식의 다세대 주택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지요. 게다가 폐하의 화려한 궁전에 비하면 ‘조족지혈’ 정도가 아니라 ‘삼백 발의 피’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이곳을 비둘기 집이라고 불러요.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 아웅다웅 모여 사는 곳이라서 비둘기 집일까요? 그러고 보면 막강한 달동네엔 비둘기집이 참 많기도 해요. 달동네의 표준 규격인 이 집은 어림잡아 스무 가구 정도 될까요? 일층엔 한국말이 서투른 사십대 중반의 조선족이 운영하는 중국집이 있어요. 휴일에 밥을 해먹기가 귀찮을 때면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켜 먹곤 하죠. 자장면 곱배기를 주문한 다음 밥상을 펴면 철가방을 들고 저벅저벅 계단을 오르는 배달부의 신경질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웬만하면 내려와서 먹으라는 소리지요. 세입자의 대부분은 전세지만 지하 단칸방의 최씨 할머니는 보증금 이백에 십삼만 원짜리 월세를 살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엿한 두 칸짜리 전세 세입자였는데 정신지체와 소아마비를 동시에 앓고 있는 명구형이 작년에 뺑소니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월세로 돌렸다더군요. 허리가 구십 도로 꺾인 할머니는 매일 작은 지팡이를 짚고서 작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집집마다 내놓은 신문지나 상자를 주우러 다녀요. 그렇게 해서 하루 동안 버는 돈이라야 고작 이삼천 원이지만 그것도 쏠쏠한 돈벌이라고 동네 노인들 사이에선 고시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해요. 정부에서 생활보조금으로 나오는 돈으로는 명구형 반찬값 대기도 힘들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막강 달동네 주민들을 통틀어서 단연 최고지요. 비둘기집 사람들은 솜씨를 발휘한 할머니의 음식을 한 번씩은 먹어봤을 거예요. 가장 최근의 수혜자는 바로 저였어요. 지난번 고갯길에서 리어카 밀어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땅에서 꽁꽁 얼은 배추김치를 두 포기나 주시지 뭐에요. 제가 사는 곳은 이층이고 이층엔 주인집을 포함해서 다섯 가구가 살아요. 바로 옆방엔 몇 달 전에 이사 온 이십대 후반의 여자가 살아요.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본의 아니게 제 방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지요. 갸름한 계란형 얼굴에 키도 제법 크고 눈매가 서글서글하니 선해 보이는 것이 그만하면 밉상은 아니에요. 근데 문제는 이 여자가 종종 친구들을 불러다가 밤 이 늦도록 술을 퍼마시는 바람에 통 번역에 집중을 할 수가 있어야지요. 폐하도 알다시피 번역이라는 일은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에 더욱 효율성이 극대화 되는 정신 집약적 노동이거든요. 게다가 더욱 저를 분노케 하는 것은 그녀가 키우는 강아지 때문에 새벽에 잠을 제대로 자질 못한다는 거예요. 이곳에 이사 온 이후로, 물론 전에 살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밤만 되면 컹컹 짖어대거든요. 항의를 해도 그때뿐이고 다음날이 되면 더 크게 짖어댄다니까요. 한동안 잠잠 하는가 싶더니 어제도 어디가 아픈지 밤새 끙끙대는 소리 때문에 동이 틀 때쯤에야 잠이 들었어요. 막강 달동네를 지키는 황갈색 부랑견들이 킁킁거리며 이곳을 얼쩡거리는 걸 봐서는 발정이 난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신경이 좀 예민한데다가 후각도 섬세하게 발달한 편이거든요. 사십대 중반의 주인아주머니는 지하상가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는데, 항상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다녀서 아직 제대로 된 얼굴을 본적은 한 번도 없어요. 주말이면 방과 후 공부방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급식 자원봉사를 하시죠. 저도 주인아주머니 따라서 몇 번 급식을 거들어 준 적이 있어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주인아저씨는 주택 설비 기사에요. 워낙에 꼼꼼하게 일처리를 잘하셔서 달동네의 집수리는 거의 도맡아서 하시는 편이죠. 지난겨울, 아마 그날이 가장 추웠을 거예요.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와 보니 수도가 얼어버렸지 뭐예요. 주인아저씨 왈, 수도가 동파되기 전에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 방바닥을 뜯어서 파이프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이에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죠. 가끔씩 술에 취한 채 해병대에서의 무용담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전기 요금 고지서를 들고 와서 도시가스 요금을 달라고 하는 것만 빼면 정말 좋은 분이지요. 녹이 슬어 손잡이가 녹아내리고 헐거워진 철제 계단이 나있는 옥상으로 올라가면 얼마 전에 결혼한 신혼부부가 살고 있어요. 저랑 동갑내기인 신랑은 공단의 조그만 전자회사에 다니고 신부는 실내 골프장에서 카운터를 봐요. 그곳엔 작은 텃밭도 가꾸어져 있어요. 상추며 오이, 고추 심지어 주렁주렁 매달린 애호박까지 이건 완전히 작은 식물원이라니까요. 저녁에 빨래를 걷으러 옥상으로 올라가면 달달달 깨소금 볶는 냄새가 진동을 해 미칠 지경이에요. 허브향이 물씬 풍기는 신혼부부의 방 한쪽엔 클럽 고객이 선물한 중고 골프채가 있어요. 명품이라서 지금 팔아도 백만 원은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치지도 않을 골프채는 왜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 같으면 팔아 버리고 최신형 노트북이나 카메라 폰을 샀을 텐데 말이에요. 슬슬 하품이 나오는 것이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넘었군요. 파란 대문이 잠겼으니 아무래도 담을 넘어야 할 것 같아요.
3.
담을 넘기 전에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편의점을 찾았어요. 왜냐고 물으신다면? 면구스럽지만, 폐하. 일전에 주인을 쏙 닮은 똥개한테 포실 포실한 제 엉덩이를 물렸었거든요. 귀여워서 한번 만져주려고 다가서는데 갑자기 미친개처럼 컹컹 짖어대더니 제가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달려드는 거예요. 그 똥개 앞에 커다란 고기 덩어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걸 보지 못했던 거죠. 마침 그날은 통장 아주머니의 둘째 아들 결혼식이었어요. 초등학교 동창이라 안갈 수가 없었죠. 삼십만 원짜리 양복바지가 아작 났지 뭐예요. 할부는 아직 육 개월이나 남았는데 말이에요. 수선도 못하고 이월상품이라 재고도 없다는 거예요. 정말 미치겠더군요. 다음날 다시 편의점을 찾아갔지요. 이마가 훌러덩 벗겨진 주인이 와락 짜증을 내면서 얼마면 되겠냐고 묻더군요. 사람값을 요구했는데 개 값을 주는 거예요. 폐하 같으면 환장하지 않겠어요.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워 버렸죠. 주인은 똥개를 때려눕히더군요. 다행히 그 똥강아지, 주인이란 작자는 진돗개라고 우기던, 파상풍 주사는 맞혔더군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병원을 찾았어요. 엉덩이에 난 이빨자국을 보던 간호사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피식 웃는 거예요. 의사란 작자는 웃음보가 터지기 일보직전이고 말이에요. 얼마나 민망했는지 폐하는 모르실 거예요. 개한테 물린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개 같아요. 삼십만 원짜리 양복을 단돈 오만 원으로 해결 하려니 속이 무진장 쓰리더군요. 지하상가에서 평소 눈여겨봤던 청바지를 사고 남은 돈으로 싸구려 포장마차에서 넙데데한 주인낯짝 같은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쓰디쓴 소주를 들이켰어요. 그리고선 여태 이 모양이에요. 덕분에 한밤중에 궁기가 생겨도 멀리 돌아가거나 쫄쫄 굶어야 했지요. 오늘은 다행히 넓적부리 구두쇠 영감 대신 빨간 에이프런을 허리에 곱게 두른 예쁜 아르바이트생이 있었죠. 캔 맥주 세 개와 오징어 땅콩 한 봉지를 사가지고 제 방으로 들어왔어요. 맥주를 마실 때는 항상 오징어 땅콩을 먹어요. 양이 좀 적긴 하지만 적당히 짭짤하고 게다가 아삭 아삭 씹히는 소리가 제법 상큼해요. 폐하는 주로 무슨 술을 마시나요? 한 병에 백만 원을 호가하는 샤토 오브리옹이나 라투르 혹은 제가 모르는 아주 값비싼 꼬냑을 즐겨 드시겠지요. 전 맥주를 마셔요. 날씨가 몹시 추운 날은 맥주가 싫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 날은 소주를 마시지요. 목으로 한입 털어 낼 때의 쐐함과 내장을 타고 내릴 때의 알싸함은 맥주와는 또 다른 깊은 맛이 느껴지거든요. 뜨끈하면서도 얼큰한 국물과 함께라면 그것은 황홀한 죽음이에요. 얼큰한 감자탕이나 국물이 말간 홍합탕과 어우러진 소주는 손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진 지구를 빙빙 돌려놓으며 쾌락과 환희의 한 순간을 허락하지요. 하지만 쓸쓸함이 울고 간 제 방에서 오늘밤은 맥주를 마시고 싶어요. 냉장고 위에 있는 소주가 째려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오늘은 맥주를 마시고 싶은 날이에요. 투기 하는 소주는 가라. 파전과 바람난 막걸리도 가라. 나폴레옹은 차렷 자세로 꼼짝 마라. 폐하, 그렇다고 저를 심각한 알콜 중독자나 우울증 환자로 생각하지는 마세요. 고작해야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거든요. 라디오 DJ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으며 캔 맥주 두 개를 비우고 나니 위장이 쌔큰하니 노곤해지면서 부르르 취기가 도는군요. 갑자기 예전에 즐겨듣던 팝송이 듣고 싶어져요. 먼지가 풀풀 쌓인 상자를 뒤졌더니 오래전에 즐겨 듣던 ‘메탈리카’의 테입이 있더군요. 카세트에 넣고 재생 버턴을 누르자 비트 빠른 드럼과 전자 기타와 중저음의 베이스 소리가 저의 얇은 달팽이관을 정신없이 두들겨대는군요. 마치 록커라도 된 것처럼 앞뒤로 헤드뱅잉까지 하면서 목이 찢어져라 따라 부르고 있는데 이번엔 누군가가 현관문을 쿵쿵쿵 두드리는 거예요. 반투명 창에 비친 형상을 보니 몇 달 전에 이사 온 옆집 여자였어요.
"아저씨 시끄러워요."
“허걱.”
저보고 아저씨래요. 게다가 시끄럽다니요. 편의점의 똥개처럼 콱 물어 버릴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거든요. 폐하도 아시잖아요. 저는 일주일도 넘게 참았다는 사실을. 근데 이 여자는 볼륨을 높인지 채 십분도 안돼서 시끄럽다니요. 적어도 하루나 이틀정도는 참아 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요. 최소한 한 시간 만이라도 말이에요. 한쪽 구석에 얌전히 찌그러져 있는 야구 방망이가 생각났어요. 꼬박 일 년을 모은 돼지 저금통을 털린 적이 있어서 비상용으로 준비해 놓았었지요. 그런데 이거야 원, 하필이면 그때 새벽 세시를 알리는 종이 울릴게 뭐예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한밤중에 오두방정을 떨긴 했어요. 재빨리 라디오의 파워버튼을 눌렀지요.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없지 싶었어요. 그녀도 버럭 소리 지른 것이 미안했던지 ‘볼륨만 죽이세요.’ 라고 하더군요.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살며시 볼륨을 죽였어요. 다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땐 제 두 눈은 동그래지고 그녀는 혼비백산 한 채 집으로 날아갔어요. 그녀가 속옷차림이었거든요. 실루엣 속으로 드러난 볼륨이 정말 죽이더군요. 너무 흥분해서 자기도 미처 몰랐나 봐요. 아니면 오늘 누구랑 한잔 했던지. 그러고 보니 얼굴이 창백한 것이 틀림없어요. 아무리 술이 취해도 그렇지 남의 집에 속옷 바람으로 문을 두드리다니 망측한 일 아닌가요? 하지만 저도 제법 야한 속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피장파장이죠. 혹시 모르죠, 이사 오는 날 저의 야성미 넘치는 쇄골 뼈와 울퉁불퉁한 이두박근을 본 후로 밤마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을지도 말이에요. 아귀가 맞지 않는 열쇠를 저희 집 현관문 열쇠 구멍에 마구 들이밀거나, 오늘처럼 한밤중에 쾅쾅쾅 문을 두들기는 거 말이에요. 한번은, 그날 깜빡하고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는데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방문을 여는데 묵직한 것이 걸린 채 도대체가 방문이 열리지 않는 거예요. 낑낑대며 가까스로 문을 열고 보니 거실 바닥에 낯선 여인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거실에 쓰러져 있더라고요. 한쪽구석엔 건더기가 둥둥 떠 있는 노란 국물이 한강을 이루고 있더군요. 피아노 치는 여자였어요. 요걸 그냥 콱, 가까스로 진정하고 깨워서 일으켰더니 대뜸 저를 보자마자 앞가슴을 여미며 하는 소리가...
“당신 누구야.”
이러지 않겠어요. 우라질, 벌써 두 번째라니까요. 가끔씩 화장실이 막히거나 형광등을 갈 일이 생기면 설비 기사인 아저씨를 놔두고 저를 찾던 것도 수상했어요. 물론 저도 어쩌다가 된장찌개나 청국장 같은 음식을 할 때면 예의바른 차림을 하고서 미원이나 양념간장을 빌린 적이 있었죠. 한 번에 하나씩, 그러니까 어설픈 된장찌개가 완성 되려면 적어도 세 번은 들락 거려야 했어요. 하지만 거기까지예요. 그녀가 세 번째로 제 방을 침투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야구 방망이가 더 이상 찌그러지는 불상사는 없어야 하지 않겠어요. 어쨌든 모처럼 뜨겁게 타오르던 토요일 밤의 열정을 차갑게 식혀 버린 불청객은 사라졌고 평화는 다시 찾아왔죠. 남아있는 맥주가 식어버리기 전에 콜록거리며 목구멍 속으로 들이부었어요. 하지만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는 통에 김이 빠져버려서 밍밍하고 맛이 없었죠. 결국 반절도 더 남은 맥주를 부엌의 개수대에 부어 버리고 말았어요. 제 기분을 알았는지 라디오에서 정신없던 헤비메탈 대신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말이에요. 폐하는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어릴 때 무척 좋아 했던 노래였어요. 목소리랑 가사가 참 애절하거든요. 브루나이 말로는 뭐라고 할까요? 이히리베디히, 당신을 사랑해요, 그건 유달리 거센 발음이 강한 독일식 발음이죠. 이히리베디히, 울컥. 헤어진 여자친구가 불쑥 떠오르잖아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이히리베디히, 그렇게 말했었거든요. 제가요.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어져요. 지나간 사랑도 김빠진 맥주 같은 거면 좋겠어요. 김빠진 맥주처럼 쿨럭 쿨럭 개수대에 버리면 다시는 보고 싶거나 그리워 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이히리베디히 하면서 그리워하는 거죠.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이히리베디히 할 수 있을까요. 닫힌 창문을 툭툭 건드리는 소리가 바람소리인지 쓸쓸함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소리는 폐쇄된 방안을 여지없이 뚫고 들어와 제 가슴을 흥건히 적시는군요. 하지만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푹 잘 수 있을 거예요. 폐하, 이제 그만 주무세요. 저도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어요.
4.
“쿵쿵쿵”
일요일 아침부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군요. 이른 아침부터 잡상인이 찾아 올리는 없을 테고 아무래도 주인아저씨가 몇 달째 밀린 전기세를 받으러 오셨나 봐요. 부스스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더니 주인아저씨가 아니라 3층에 사는 덕구형이더군요. 제 방의 천장이 그 형의 방바닥인 셈이지요. 저보다 일곱 살이 많으니까 서른셋이에요. 덕구형은 저랑 같은 프리랜서에요. 엄밀히 말하자면 하는 일은 저와 많이 다르지요. 그 형은 시내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일을 해요.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프리랜서라.... 게다가 문제는 그 형의 주 활동 무대가 백화점 안이 아니라 밖이라는 거지요. 사람들이 출근할 시각이 되기 전 위아래로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마찬가지로 검은색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서 튼튼한 두 다리로 겅중겅중 백화점을 향해서 걸어가는 거예요. 그런 다음 작은 빨간 소쿠리를 앞으로 내민 채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백화점의 알록달록한 보도블록에 납작 엎드리는 거예요. 그리고선 한 사나흘 굶은 표정을 지으며 “한 푼만 주십쇼.” 하면서 하루 종일 그렇게 엎드려있죠. 비가 내리거나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만 빼면 그 형의 업무는 사시사철 변함이 없어요. 처음 그 형을 보았을 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생각이 들었거든요. 알고 보니 그곳을 지날 때마다 소쿠리에 몇 백 원씩 넣어주면 걸걸거리는 음성으로 고맙다며 벙긋 미소를 지어보이던 사람이더라고요. 사지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몰라요. 하지만 본인은 더 놀랬다고 하더군요. 4대 보험과 세금만 내지 않을 뿐 빌어먹는 것도 엄연한 직업이라고 우기는 형의 당당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어요. 헌데 그 형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로 저를 찾을까요? 어쩌면 알 것 같기도 해요. 틀림없이 그게 떨어졌을 거예요.
“어이, 커피 좀 있는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맥심 밖에 없는데.... .”
“몇 개만 빌려줄랑가?.”
“그러죠.”
“히히, 고맙구먼.”
커피믹스 몇 개를 건네주면서 한편으론 무척 망설였어요. 몇 푼 안 되는 커피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형은 커피를 마시면 안 되는 당뇨병 환자거든요. 그런데도 커피를 하루에 열 잔도 넘게 마셔요. 당뇨병을 아시나요? 몸속의 혈액에 포도당이 과하게 들어 있는 병,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당혈병이라고도 하지요. 혈액 속에 과하게 배부된 포도당이 조금씩 폐를 갉아 먹는 담배 연기의 니코틴처럼 야금야금 환자의 생명을 갉아먹어서 침묵의 살인자라지요. 부자들이 많이 사는 나라에서 많이 생기는 병이라서 선진국병이라고도 하지요. 폐하와 폐하의 나라도 부자니까,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군요. 하지만 당뇨병에 걸린 형은 돈이 많지 않아요. 요즘은 벌이도 그저 그래요. 당뇨병에 걸린 사람들은 식이 요법을 잘 해야 해요. 기름에 튀기거나 콜레스레톨이 높은 음식은 거의 쥐약이죠. 상추나 오이 같은 녹황색 채소류나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로 식단을 꾸며야 해요. 식전 100이하, 식후 170이하, 최소한 수치가 200이하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거든요.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거나 콩팥이 피폐해 지거나 시력을 잃지 않거든요. 당뇨병에 걸리면 수치에 민감해지나 봐요. 식후 혈당 수치가 200이 넘었다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매일 저녁이면 집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스무 바퀴씩 돌곤 하거든요. 어렸을 때 어머니도 저녁이면 아버지와 함께 꼭 동네를 서너 바퀴 걸으셨어요. 아버지가 늦는 날은 저를 데리고 다니셨는데 다리를 저는 어머니와 함께 걷는 것이 창피해서 앙탈도 많이 부렸지요. 가족력이 있는 저로서는 정기검진을 받는 날이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요. 군대를 제대하고 한동안 배낭여행을 다녔다는, 특히 남미의 밀림과 아프리카의 오지를 자기 집 안방 드나들듯이 돌아다녔다던 형은 요즘 통 어디를 다니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당뇨병에 걸린 후로 장거리 여행 버스를 타면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서 겁이 난데요. 저녁밥을 먹고 난 후에는 높아진 혈당을 낮추기 위해서 인슐린을 투여하는데 주사를 맞기에는 신경세포가 없는 복부가 그만이라네요. 전직이 양식 주방장이었던 형은 가끔씩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 음식이나 향이 독특한 태국 음식을 차려놓고 저를 초대하곤 해요. 자기는 많이 못 먹는다고 기름기 좔좔 흐르는 음식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벌려 놓으면 마치 피죽도 못 먹은 망아지처럼 저는 그것들을 우걱우걱 먹어대는 거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낭창낭창 읊어 대는 형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사뭇 토속적인데다가 제법 국제적이에요. 대낮에 동경의 신주쿠 거리에서 벌인 야쿠자와의 대결은 한편의 액션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현란하고 흥미진진했어요. 젓가락에 돌돌말린 이탈리안 스파게티를 먹으며 서너 시간으로 압축된 형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째로 살아내는 거죠.
5.
폐하, 기회가 되면 저희 동네에 한번 와보시지 않겠어요. 오늘 아침에 지하에서 셋방 사는 최씨 할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귤을 담은 김치 통을 들고서 할머니 방문을 두드렸는데 주무시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더라고요. 조금 이상했어요. 매일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셔서 밤사이 동네 사람들이 내놓은 박스나 폐신문지를 수거 하셨거든요. 오후에 다시 문을 두드렸는데 역시나 조용하더군요. 그날 저녁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에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나 조용했어요. 분명히 외출을 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죠. 갑자기 머리가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날씨가 추워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경찰관에게 사인을 물어보니 급성 심근 경색증, 즉 심장마비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놀랬던지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 버린 것만 같아요. 고등학생 때 수의를 입은 외할머니의 앙상한 발목을 본 후로는 한 번도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숨이 끊어진지 삼사 일이 넘은 것 같대요. 방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이 기름도 바닥을 보인지가 일주일이 넘었다나요.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것은 심장마비일까요? 아니면 방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붉은 독촉장일까요? 텔레비전 위에는 보험 증서 한 장이 놓여 있었어요. 보험 증서에는 ‘가입자 사망시 OOO에게 일금 삼천 만원을 지급함.’이라고 쓰여 있어요. 근데 어찌된 일인지 수령인이 명구형이 아니네요. 이름이 비슷한 걸로 봐서는 첫째 아들인가 봐요. 어려서 폐렴으로 죽었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었군요. 게다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우리은행의 해외 지점장이네요. 며느리와 손자가 살고 있는 곳으로 전화를 했는데 결번으로 나오네요. 국제전화였는데 말이에요. 전화번호를 바꿔야만 할 사정이 있었겠지요. 아들 말고는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는지 빈소가 차려진 영안실엔 열두시가 넘도록 힘겹게 앉아있는 명구형과 막강 달동네의 비둘기 집 사람들밖에 보이질 않네요. 가끔씩 찾아오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할머니가 일요일마다 나가시던 교회의 교인들과 복지관 사람들이었어요. 주인아주머니에게는 덕구형이 알렸어요. 아주머니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가게를 정리하시고 빈소가 마련된 장례식장으로 오셨어요.
“불쌍한 양반.”
“자가 더 걱정이지라.”
“하긴.”
“첫째 아들이 있었담서?”
“그렇답디다.”
“그런데, 왜 아직....”
“아, 연락이 되야지라?”
덕구형도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더군요.
“오늘이 어무이 생신인디.”
“내일은 명구 생일인디.... .”
“.......”
어눌하게 말하는 명구형의 모호한 표정은 슬프다는 건지 괴롭다는 건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어요. 모호한 표정과 모호한 독백, 평상시에는 자연스럽던 형의 불편한 몸짓이 오늘은 정말 슬프도록 낯설어요. 항상 제멋대로인 안면 근육들, 고사리처럼 휘어진 팔목과 구부정한 손가락, 오자로 굽어진 안짱다리가 오늘만은 온전한 신체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만이라도 씨팔, 나 슬프다고 정말 더럽게 힘들다고 온 몸으로 땅바닥을 뒹굴며 맘껏 울부짖는 형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제가 다 속이 타는데 본인은 오죽 답답하겠어요. 운다기보다는 차라리 괴성에 가까운 그의 절규를 사람들은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나 봐요. 볼 사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서러움 가득한 눈물만이 지금 형이 겪고 있을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주는군요. 그의 여리고 순수한 표정의 이면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이 촉수 다발처럼 다닥다닥 늘어져 있어요. 쪽진 머리위로 곱다니 하얀 서리가 내린 할머니 한분이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군요. 폐업하는 가게의 빳빳한 박스를 차지하려고 서로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사투를 벌이시던 복지관 할머니셨어요. 눈물을 훔칠 수도 없이 뒤틀린 몸으로 할머니와 맞절을 하는 형의 모습이 무척 힘들어 보이는군요.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해도, 굳이 맞절을 하겠다고 해야 한다고 아까부터 저러고 있어요. 주인아주머니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 토막잠을 자는 틈틈이 음식을 차렸고 덕구형은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러가며 조의금을 받았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우울함을 덮어쓰고 있던 사람들이 술이 좀 들어가자 호들갑스럽게 떠들고 한쪽에서는 고스톱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복도에서 거칠게 뛰어 오는 여자의 하이힐 소리가 들렸어요. 황급히 열리는 문, 거친 숨소리, 익숙한 체취, 피아노 치는 여자였어요. 한시가 넘은 시각이었지요. 뒤늦게 소식을 접한 그녀도 저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나 봐요. 택시 안에서 펑펑 울었었는지 눈가의 화장이 눅지근하게 번지고 두 눈은 퉁퉁 부었어요. 그녀는 할머니 앞에서 향을 피우기도 전에 조금씩 울먹거리더니 급기야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조용하던 빈소를 울음바다를 만들고 마네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곱고, 게다가 피아노도 잘 치는 처자라고 볼 때마다 손수 담근 김치며 오이 소박이며 마른 반찬을 뭉툭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으로 꾹꾹 눌러서 담아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통곡을 하네요.
6.
할머니의 빈소 맞은편에는 또 다른 빈소가 마련되고 있어요. 한산한 이곳과는 달리 맞은편 빈소에는 대형 화환이 하나 두울 세엣... 불과 십여 분만에 열 개가 넘게 들어왔어요. 화려한 화환에는 막강 달동네의 3선 시의원, 변호사, 의사, 그리고 각종 회사대표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어요. 빈소가 채 마련되기도 전에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오는 군요. 그새 앉을 자리가 모자라는지 아예 옆자리의 빈소를 하나 더 빌리네요. 아무래도 돌아가신 분이 막강 달동네에서 꽤나 유명한 인사였나 봐요. 망자의 사진을 보니 서른이 좀 넘었을까 꽤 젊은 사람이에요. 제 나이 또래 같기도 해요. 세상에나 한창 일할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다니 정말 안됐어요. 그런데 폐하, 이상하죠. 저는 저 영정 사진 속의 주인공을 잘 모르겠어요. 막강 달동네의 토박이인 제가 모르는 사람이 유명할 리가 없거든요. 게다가 저보다 더 오래 터를 잡고 계신 주인아주머니도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가수도 아니고 영화배우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데 유명인 대접을 받는 저 사람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요?
“박사장님, 요즘 잘 나가신다면서요?”
“허허허, 별 말씀을요.”
“이 근처 학교 급식은 도맡아서 하신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그거야, 김의원님이 힘써 주신 덕분이죠.”
“이번에 신설되는 학교는.... .”
“거기도 수의 계약으로 할 겁니다.”
“그... 그렇군요.”
“그나저나 죽은 사람이 시장이랑 무슨 사이래요?”
“글쎄요?”
“조카라고 하더군요.”
아하! 그런 거였군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망자를 위로 하겠다고 문상을 온 사람들이 망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다니 정말 어이가 없군요. 저곳도 마찬가지로 술이 좀 들어가더니 웃고 떠들고 언성이 높아지기도 해요. 다른 점이라면 점에 오십 원 원짜리 고스톱 대신 한 판에 몇 십만 원이 오고가는 포커 판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박 사장이라고 불렸던 자가 김 의원이라고 불리는 남자에게 돈을 몽땅 잃고 있어요. 그 많은 돈을 잃고도 허허실실 웃어대다니 속이 넓은 건가요. 게다가 한술 더 떠서 포커 솜씨가 겜블러 뺨친다고 김 의원이란 작자를 한껏 치켜 올려주고 있어요.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 같아요. 그런 와중에도 문상객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고 있어요. 한산한 이곳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에요. 우연히 같은 날에 생을 마감한 두 망자의 인간적 가치가 화환과 문상객들의 수와 그들이 내미는 봉투로 인해서 두껍게 덧칠 되고 있어요. 한쪽은 빛바랜 흑백 사진으로 또 한쪽은 칠백만 화소의 디지털 사진으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라던데 적어도 시장의 조카는 뼛가루로 산화된 채 강물에 뿌려지거나 무덤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공수래꽉찬수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정확히 하루 반나절이 지났어요. 이젠 폐하께서도 할머니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접하셨을 거라 믿어요. 어제 새벽 네 시쯤 인터넷에 올렸거든요. 조금의 가감도 없는 있는 사실 그대로 말이에요. 댓글이 하나 달리면 그 밑에 다시 댓글을 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시나브로 그러다가 기하급수적으로 조회 수가 늘 것이고 사명감이 투철한 네티즌들이 제 글을 퍼서 나르기 시작하겠죠. 방송사에서 취재도 올 것이고 가십과 동정을 반반 섞어 놓은 표정의 신문 기자들도 뻔질나게 발품을 팔지 않겠어요. 최초의 목격자니까, 어쩌면 인터뷰를 신청할지도 몰라요. 아,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되는군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메이크업도 받아야겠죠. 아무래도 인터뷰는 입담이 좋은 덕구형에게 맡겨야 할까 봐요. 폐하, 바쁘지 않으시면 잠깐이라도 다녀가시면 안 될까요. 빈소 한 켠에 폐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놓았거든요. 폐하께서는 못 가시는 곳이 없잖아요. 직접 오기가 힘드시면 다른 사람이라도 보내주세요. 오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요.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고 또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세상사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비둘기 집 보다 넓고 웅장한 아라베스크 문양 타일이 박힌 화장실에서 똥을 누시다가 돌연히 생각을 바꿀 수도 있어요. 오시려거든 부디 전용헬기를 타고 오세요. 애호박이 주렁주렁 열린 옥상에 내리셔야 하거든요. 아니면 낙타를 타고 오시던가요. 헬기든 낙타든 무엇이 중요하겠어요. 폐하께서 오신다는데. 행여나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화려한 화한이 많다고 저쪽으로 가시지는 마세요. 그 쪽 동네야 폐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오히려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못 오시더라도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발인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명구형의 형이 와줬으면 좋겠어요. 바쁜 일정 때문에 시간 내기가 힘들면 그의 형수님이라도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힘들면 할머니가 화장터에서 한줌 재로 사라지기 전까지는 와줬으면 좋겠어요. 뒤늦게 비보를 접한 까닭에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지 못하더라도 수령금과 함께 홀로 살아야 할 동생을 데려가 줬으면 좋겠어요. 다음날 아침에 통장 아주머니와 깨소금 달달 볶는 신혼부부가 다녀가고 오후엔 화교 출신 중국집 주인과 신경질적인 배달원이 다녀갔어요. 저녁엔 편의점의 구두쇠 영감탱이가 똥개를 안고 왔어요. 제 엉덩이를 물었던 똥개마저도 장례식장 입구에서 망자를 위한 노래를 구슬피 읊어대는데 정작 울부짖어야 할 명구형의 가족들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어요. 이런 사람 같은 일이 있을까요. 다음날 새벽 다섯 시에 발인을 끝내고 할머니를 작은 운구차에 실은 채 가까운 화장터로 향했어요. 처음엔 하얀 뼛가루가 담긴 유골함을 납골당에 모실까도 생각했지만 누구하나 찾아줄 이도 없고 해서 할머니가 평소에 즐겨 오르시던 산에다 뿌리기로 했어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남한산성 수어장대에서 뼛가루를 뿌리던 날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내렸어요. 덕구형은 다시 백화점을 전전했고 주인아주머니도 다시 가게 문을 여셨어요. 주인아저씨는 여전히 잘못된 청구서를 들고 다니셨고 명구형은 열흘 전에 시소유의 재활원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그동안 밀린 번역을 하느라고 벌써 사흘째 날밤을 새고 있는 중이에요. 부끄럽게도 마감 일자를 일주일이나 넘겨 버렸거든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모니터 앞에 앉았는데 또 누군가가 문을 쾅쾅쾅 두들기는 군요. 주인 아주머니셨어요. 일전에 맡겨 놓은 보험 증서를 찾으러 왔다고 하시던군요. 그리고 그 옆엔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도 함께 서 있었어요. 사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명구형의 친형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전 그를 보자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 했어요. 지난번 텔레비전에서 본 폐하와 너무나 닮아 있었거든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