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데이트

by 김인철


일요일 아침이다. 미몽에서 깨어나는 중인데 전화기가 울린다. 어머니다. 지금 현관 앞에 서 계시단다. 연락도 없이 현관 앞에 서계셨다. 안으로 들어오시지는 않고 현관 앞에서 서성이신다. 경황없이 집을 나오면서 마스크를 안 쓰고 왔다면서 하나만 달라고 하시는데, 속상한 일이 있으신 듯 목소리는 떨리고 표정이 어둡다. 또 속상한 일이 생기셨구나.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사정을 들어보니 역시나 짐작대로다. 어머니를 심란하게 만드는 상황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당신의 회한섞인 레퍼토리다. 텔레비전 볼륨을 죽인 채 오전 내내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었다. 무뚝뚝한 둘째 아들이지만 그래도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가끔 찾아오셔서 속내를 털어놓으신다. 때로는 나도 감당하기 힘들어서, 가끔 털어놓는 그 속상함을 받아줄 아량이 못되어, 당신의 넑두리를 듣다가 짜증도 내지만, 겉마음과 속마음이 다를 때가 많다.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점심이나 먹어요."


"그러까. 근데 세수도 안 하고 옷도 이 모양인데."


"집에 잠깐 들러서 옷만 갈아입고 나오세요."


오래간만에 어머니 모시고 점심도 먹고 바람도 쐬며 데이트를 했다. 이가 안 좋으신 탓에 적당한 식당을 검색했다. 성남시청 근처의 두부 요리 전문점으로 갔다. 전에 점심을 먹으러 왔다가 점찍어 둔 식당이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있었다. 나는 얼큰한 순두부를, 어머니는 들깨 들어간 순두부를 시키셨는데 고소하다며 좋아하신다. 추가로 시킨 모두부와 김치볶음도 별미다.


점심을 배불리 맛나게 먹고 근처 카페에서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성남시청 광장으로 향했다. 트렁크에서 돗자리와 테이블, 접이식 의자를 꺼냈다. 캠핑용으로 샀던 돗자리, 롤테이블과 접이식 의자를 오늘 제대로 활용했다.


좋은 자리는 먼저 온 이들이 선점했다. 분수대 근처 그늘이 있는 곳에 돗자리를 폈다. 날이 화창하고 선선해서 그런지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넓은 광장 한편 분수대에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아이들은 아장아장, 폴짝폴짝 광장을 뛰어다니고, 엄마, 아빠, 할머니들은 흐뭇한 미소로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본다.


"아이고 저 아기 예쁘네."


어머니는 분수대 앞에서 물방울 놀이를 해주는 젊은 아빠와 아이를 한참 쳐다보시더니 주름진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번진다.


잠시 후 잔잔하던 물속에서 분수가 하늘로 높이 솟으며 사방에 시원한 물방울을 뿌린다. 물줄기가 흥겨운 리듬에 맞추어서 위로 아래로 파동을 이루며 춤을 춘다. 아이들이 시원하게 솟는 분수 앞으로 몰려들고 엄마 아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아이를 모델로 찰칵, 찰칵 사진을 찍는다.


"시청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줄은 몰랐네."


"한 여름에도 많이 와요. 시청으로 소풍 오는 곳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러게, 사람들도 보고 시원한 분수도 보니까 좋다."


어머니는 드넓은 광장에서 활기차게 뛰어노는 사람들과 아이들. 그리고 시원하게 솟는 물줄기를 보시더니 속상하고 심란한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셨다고 한다.


"압력밥솥이 오래돼서 밥을 해 놓으면 금방 눌어. 하나 새로 장만해야겠다."


뜬금없이 밥솥이 오래돼서 새로 하나 사야겠다고 하신다. 십 년 가까이 쓰셨다고 한다. 집 근처 마트에서 하나 봐 둔 게 있다고 하셨다. 내친김에 야탑 뉴코아 아울렛[킴스클럽]도 갔다. 가격만 알아보자고. 근데 밥솥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아이쇼핑만 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고 하신다.


주차 요금을 면제받아야 해서 고구마 두 봉지, 두부파스타를 샀다, 어머니는 이번 추석 차례상에 놓은 배 두 개를 고르셨다. 이마트는 만원 이상 구매하면 주차요금 이 두 시간 무료인데, 뉴코아는 한 시간이다. 예정에 없던 어머니와의 데이트지만 바람도 쐬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니 요즘 남 모르게 심란하던 내 기분도 조금은 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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