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내가 늦둥이를 키워요.

by 김인철

요즘 매일 저녁에 만보 걷기를 시도한다. 평소에도 했지만 두달전 주치의에게 최후의 선고를 받고 식단조절과 걷기운동을 더 꾸준히 한다. 어제도 저녁을 먹고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걷는데 한 남자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나이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속으로 왜 쳐다보지? 싶었지만 개의치 않고 빠른 걸음으로 그의 옆을 지나쳤다.



잠시 후 누가 내 어깨를 휙 잡는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아까부터 나를 힐끔 거리던 남자(고등학생, 청년?)가 흙이 묻은 신발을 내 바지에 마구 문지른다.


어....어...어... 왜?


밤이라서 어둡고 마스크를 써서 그의 표정을 정확히 읽을 순 없었지만 내가 그에게 커다란 실수를 했다는 표정이다. 순간 그를 빠르게 지나치며 옷에 먼지라도 묻게 했나 싶었지만 거리상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그는 신발 바닥에 있던 흙을 내 왼쪽 바지에 잔뜩 묻혀 놓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나를 앞서며 다시 운동장을 돌았다. 나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아픈 사람이구나? 싶어서 넘어 갈 생각이었다.


그 순간 계단에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그 남자를 손짓으로 부른다. 남자는 조금 망설이는것 같더니 운동장을 벗어나 어르신이 있는 계단으로 갔다.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나한테 왜 그랬는지 이유도 알고 싶고 한동안 찜찜할 것 같아서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물었다.


"저기, 아까 내가 그쪽한테 뭐 실수한 거 있어요?"


옆에 있던 어르신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방금 전에 있었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아이고, 미안해요. 우리 아이가 지적 장애가 있어요? 이해 해주세요. 실례를 범했다면 지금 따끔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이런 상황이 자주 있었던듯 어르신이 재차 따끔하게 혼내주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안돼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많이 혼났을 거예요."


갑작스러운 봉변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유를 알고 나니 확인 하길 잘했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시간에 운동장에서 두 사람을 다시 만났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어르신에게 인사를 했다. 어르신은 처음엔 나를 못 알아보시더니 '어제 그 일...' 이라고 하니 알아보셨다. 그리고 각자 운동장을 돌았다. 운동을 마칠무렵 어르신이 가시기전에...


"사회복지사라면 어디에서 일을 해요?"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했고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올 초에 '장애인활동지원사 자격증'을 땄다는 말씀도 드렸다.


"학생과는 어떤 관계...."


할아버지와 손자일거라는 짐작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들이에요. 내가 늦둥이를 낳았는데. 장애가 있어요. 인생이 참 뜻대로 되지 않아요. 많은 것들이..."


짧은 대화였지만 지적장애를 키우는 아버지의 고뇌와 고심이 담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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