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by 김인철


앞 머리카락이 슬슬 눈을 찌른다. 머리카락이 금방 자라는 편이라 두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야 한다. 고개를 좌우로 돌릴 때마다 머리카락이 양 볼을 짤 싹 짤 싹 때린다. 잘라야 하는데 나가기가 귀찮다. 자주 가는 미용실은 집에서 멀다.

방송대 동문이 운영하는 미용실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는지 문이 잠겨있다. 한시 사십 분. 유리문 쪽지에는 두시 십 분에 올 예정이란다. 삼십 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다음에 올까?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만화캠프. 건너편 3층에 만화방이 하나 보인다. 저 만화방은 아직도 있네. 가본 지 삼 년 정도 됐을까! 마침 신호가 바뀐다. 두 발은 의식보다 두세 박자 빠르게 움직인다. 어둠침침한 계단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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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어둡다. 십자형과 일자형 형광등. 원통형 쎄라믹 난로, 19세 미만 성인물, 학원물, 무협지, 그리고 야설록 전집. 장르마다 이름 꽤나 날렸을법한 만화가의 이름이 레트로 감성 충만한 책장에 가지런히 박혀있고 소파와 책상 위에 쌓여있다.



드래곤볼, 북두의 신권, 슬램덩크 그리고 소연이에게 우직했던 붉은 머리카락의 강백호. 학창 시절에 내 머리카락도 빨강이었으면 그처럼 한 여학생에게 우직했을까? 에이! 그럴 리 없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남중 남고였으니까. 쭈뼛쭈뼛 책장 사이를 서성이다 야쿠자 이야기 두 권을 뽑았다. 실밥이 터지고 색이 바랜 소파에 앉자마자 누군가 라면을 주문했는지 구수한 라면 냄새가 실내로 퍼지며 삼십 분 전 식사를 마친 뱃속의 훼를 친다.

돈, 섹스, 폭력, 배신, 국경을 떠나서 조폭 이야기는 만화나 영화나 소설이나 늘 클리셰와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의 연속이다. 채 한 권도 다 읽기 전에 결말이 보인다. 만화방에 들어온 지 삼십 분이 지났다. 기본 이용료 이천 원. 바뀐 것은 권수에서 시간뿐이다. 미용실은 열려있다. 남자 손님도 두 명이 보인다. 그냥 지나친다. 불편해도 새치가 눈처럼 덮은 머리카락은 좀 더 기르기로 했다.


2018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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