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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은 할인해 주지만 '가난'에 이자를 붙이는 나라

은행은 왜 '기준금리'가 내려도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았을까?

by 김인철

1997년 IMF 시대는 모두에게 고통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 한지 몇 년 되지 않은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20퍼센트 가까이 되는 고금리로 여유 자금을 많이 보유한 이들은 막대한 이자 소득을 벌었다. 당시 내게 여유자금이 천만 원만 있었다고 하면 연간 백만 원이 넘는 이자 소득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미디어는 유명 연예인이나 귀여운 캐릭터를 내세워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달콤한 말로 유혹한다. 몇 년 전 은행에 정기 예금을 들면서 직원의 추천으로 나의 투자 성향을 확인해 보니 '안전지향형'으로 나왔다. 그 성향대로 나는 살면서 복권은 가끔 샀지만 주식이나 비트코인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높은 중고 자동차 할부 이자, 은행으로 갈아타다.


7년 전 중고 자동차를 구입했다. 현금이 있었지만 목돈 지출이 부담스러워 중고 자동차 매매 상사 소개로 자동차 할부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중고 자동차 업계의 생리를 몰랐던 나는 자동차 할부로 대출받은 것을 후회했다. 할부 금리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은행 금리가 6퍼센트 대였다. 자동차 할부는 15퍼센트가 넘었다. 대출 이자를 은행으로 바꾸려고 하니 중도 상환 수수료도 내야 했다. 그럼에도 은행으로 바꾸는 게 이득이었다. 금융 시장의 생리를 몰랐던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코로나19로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대출금리를 더 높인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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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 최배근(이하 최교수)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2월 한국은행은 코로나19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사업과 생계에 어려움을 겪자 기준금리를 낮추었다. 시중 은행들의 금리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4대 시중 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대출 금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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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1.25%일 때 신한은행 5~6등급의 대출금리는 3.75퍼센트였다. 하지만 2021년 12월 기준금리가 1.0%일 때 신한은행은 6.97%로 오히려 대출금리를 2배가량 올랐다. 다른 은행도 대출금리가 높았다. 펜대믹으로 전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 부분 공공성의 역할을 해야 할 은행은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벌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최배근 교수는 이를 은행을 감독해야 할 금융당국(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재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회전식 인사의 문제점


이유가 뭘까? 최교수는 금융당국의 회전식 인사 문제라고 한다. 기재부,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예금보험공사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금융권에서 평생 일했던 공무원들이 퇴직을 한 후 다른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해당 기관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민간 분야에서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 분야를 살리기보다는 이해관계로 인해 부조리와 적폐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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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교수는 시중 은행의 대출 금리가 높아지고 비판 여론이 형성되면 금융당국은(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은행들을 소집하고 대출금리 산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요식행위에 그치고 유야무야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전현직 금융 관계자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한다.


2019년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는 금융 카르텔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사들인 후 비싼 값에 매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금융과 재계, 검찰 인사들이 어떤 개입을 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 사건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에 국가 투자자 소송(ISDS)을 걸었다. 현재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으며 패소 시 한국 정부는 론스타에 5조 원을 배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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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은 깎아주지만 '가난'에는 이자를 붙이는 나라


가난한 사람에겐 많은 것을 깎아준다. 전기요금, 버스요금, 가스요금 모든 걸 할인해 준다. 하지만 딱 하나 오히려 비싼 게 있다. 이자다. 재산이 많거나 신용이 좋은 사람들은 대출 이자가 저렴하다. 하지만 담보가 없거나 신용이 적은 사람은 값비싼 이자를 내야 한다.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상하다. 왜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은 깎아주면서 가난에는 이자를 붙일까? 이상한 나라다. 지난 2020년 내가 전태일 사거 50주기에 참여한 역대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창작집에는 가난한 주인공의 독백이 나온다.


이상한 나라야. 가난에는 이자가 붙는 게. 버스비, 지하철, 고속도로 통행료, 전기요금, 가스요금, 전화요금. 가난한 사람들에겐 모든 걸 깎아 주는데 오직 돈만 이자가 더 붙는다.

-JTI팬덤 클럽, 네 번의 짧은 노크. P35-


신뢰라는 자본을 바탕으로 기본 금융을.


2004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송파 세 모녀의 안타까운 사건을 기억한다. 세 모녀의 안타까운 선택은 감당할 수 없는 이자와 희망이 없는 삶 때문이었다. 그 후 정부는 취약계층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은 계속 들려온다. 근본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답을 찾기 위해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가난한 사람에게 전기요금은 깎아주면서 이자는 더 비싼 거지?


그 대안 중 하나가 유력한 여당의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낸 기본 금융이다. 사업이나 집을 얻기 위해 대출을 받지만, 생계를 위해 소액 대출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기본 금융은 전 국민에게 1,000만 원 이하의 돈을 장기 저리(3%)로 대출해준다. 마이너스 통장 형태로 수시로 입출금을 할 수 있다. 담보나 신용은 없어도 된다. 도덕적 해이가 염려되지만 그라민은행의 무담보 소액 대출 상환율은 98.85퍼센트 이상이었다. 우리도 사회 곳곳에 신뢰라는 자본을 심어야 한다.


-은행은 왜 '기준금리'가 내려도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정부, 금융 당국, 그리고 은행은 이 당연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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