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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나들이

박노해와 윤동주를 만나다.

by 김인철

설 다음날이다. 바람은 시리고 차다. 새해가 된 후 한동안 방안퉁수로 지냈다. 당분간 그 단순한 삶은 이어질것 같다. 아니 난 언제나 방안퉁수다. 지인과 함께 서촌 나들이를 했다. 박노해 사진전과 윤동주 하숙집 터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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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사진작가, 혁명가. 박노해 사진전이 열리는 서촌, 라 카페 갤러리. 전시공간은 아담하다. 아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 시인의 세계 유랑길, 난 고작 두 곳 뿐인데, 시인은 참 많이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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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이 살았던 나는, ...서른 이후 사랑 없이 살았던 나는 오십 이후의 삶이 두렵다. 서른전에도 밍밍할뿐 불꽃 같은 사랑은 없었다. 전생에 나라, 아니 우물 하나를 팔아 먹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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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을 거닐던 중 노포에서 간판으로 보이는 훈민정음을 보았다. 아름다워, 한글을 쓰게 해주신 세종대왕에게 21세기의 현대인을 대신하여 감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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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 하숙집 터에도 다녀 왔다. 예전에 학생들과 갔던 윤동주 시인의 용정학교가 떠오른다. 새로웠지만 편하지만은 않았던 연변의 밤하늘과 용정의 별은 시인의 서정적인 시선과 닮지 않았다. 난 연변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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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하숙집 터를 찾았다. "지금 이 터의 주인은 사람들의 방문을 좋아할까"....라고 지인이 묻는다. 사내 둘이 뒤를 따른다. 내가 주인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요....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곳은 왜 터만 남겼을까? 숱한 사연들이 있겠지. 나는 단지 시인이 오갔을 거리에 물음표 하나를 새겨 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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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사노맹, 사형수, 사진 작가. 박노해 시인의 이력은 다양하다. 그의 발걸음은 늘 세상의 어두운 면을 향한다. 그가 머물던 자리는 흑백으로 남겨진다. 시인은 외롭지만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혁명가이자 관찰자인 그는 소외된 이들을 위한 코스모폴리탄이다.


찬바람이 부는 날 서촌을 산책했다. 춥지만 춥지 않았다. 북촌과는 다른 분위기다. 그때는 여름이었다. 계절과 바람이 달라서 일 것이다. 아니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내 발걸음은 겨울의 바닥이다. 바람은 오후가 될수록 시리고 차졌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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