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철 Mar 02. 2022

1993년, 그해 봄날의 면회

멘토라는 말이 없던 시절 '멘토'가 되어 주신 선생님

"420호 김인철 학우 면회 왔으니 지금 바로 학교 정문으로 나오세요."


무료한 주말 아침이었다. 기숙사 벽의 검정색 스피커에서 띵동 소리가 울리더니 내 이름이 불려졌다. 면회라고? 그럴리가 없는데. 기숙사 생활 2년 만에 처음이었다. 스피커에서는 한번 더 내 이름을 불렀다. 이층 침대에서 만화책을 보던 친구들은 탄성이 좋은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튀어 오르더니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누구? 누구래?"

"왐마, 살다보이 인철이한테도 면회가 오고 신기하데이." 

"철이, 니 여자 친구 아이가?"

"별일 이데이... 호실장, 니 여자 친구 생깄나?" 


일학년때부터 내 별명은 두 개 였는데 하나는 호실장이었고 다른 하나는...420호실 친구들은 대부분 고향이 경상도였고 나만 전라도에서 유학(?)을 왔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정말 몰랐다. 부안에 계신 어머니가 연락 없이 오셨을리도 없고, 군대에 간 형이 면회를 왔을 리도 없다. 나는 어리둥절한채 세수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했다. 누구지? 놀라기도 했고 조금 설레기도 했다. 


학교 정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면서도 나를 찾아온 사람을 짐작할 수 없었다. 정문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고 발걸음이 설렜다. 경비실 창 안쪽에는 여자가 서 있었다. 


1993년 어느 가을 날

그녀는 체구가 작았고 단발머리였다. 굽이 낮은 구두와 청바지, 하늘거리는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양 손엔 보자기와 커다란 검은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인철아 안녕!"

"어, 선생님. 여기는 어떻게..."

"어쩐 일은...지난번에 봤을 때 면회 온다고 했잖아."

"아~, 그땐 그냥 하신 말인 줄 알았어요."

 

우리를 면회 온 사람은 K교회 고등부 담임인 차 선생님이었다. K교회는 학교에서 멀지 않았다. 일학년때부터 K교회를 다녔다. 선생님은 올해 봄부터 고등부 담임을 맡았고 나는 선생님의 제자였다. 


"오늘 날씨 좋다. 바람도 적당히 불고. 그치?"

"네."

"토요일인데,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조금 지나니  A와 B, 그리고 C가 왔다. 그들도 나처럼 생각지 못한 선생님의 면회에 많이 놀란 듯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깜짝 면회에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어디 앉을까?"

"저기, 잔디밭에 앉아요."


교정의 푸른 잔디밭에 빙 둘러앉았다. 따스한 봄 햇살이 교정을 비추었다. 계단 아래 운동장엔 체격이 건장한 축구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넓은 트랙을 돌고 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교정의 잔디는 촉촉하고 싱그러웠다. 바람은 적당히 살랑거렸다. 하늘엔 바람의 방향을 따라 작은 구름 몇 점이 미끄러졌다. 


"너희들이 무얼 좋아할지 몰라서 치킨 사 왔는데, 좋아하지?" 


선생님이 치킨과 과일을 돗자리에 풀어놓았다. 달콤하고 고소한 치킨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학교식당에서 닭대가리째 나오는 닭볶음탕과는 비교될게 아니었다. 콜라는 시원했고 향긋한 딸기와 사과도 맛있었다. 단편 영화의 한장면 같았다. 


"참, 너희 요즘 시험 기간이지, 중간고사는 잘 쳤어?"

"그럭저럭 봤어요."

"학교생활은 재밌어? 기숙사 생활은 어때?"

"그냥 그래요. 반복되는 생활이니..."

"선생님도 회사에서 기숙사 생활하는데 좀 답답해." 


선생님은 교회와 예배당을 벗어나자 평소 우리들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철아, 너 여자 친구는 있어?"

"헤헤, 아직, 없어요."


당시 덩치만 컸지 소심한 데다 무뚝뚝하고 얼굴엔 열꽃이 가득했던 나는 여자 친구는 없었다. 하지만 교회에서 눈길이 가는 여자 후배는 있었다. 내년에 실습을 나가기 전에 고백해야지 마음만 먹었다.


고등학교는 선후배가 엄격했다. 기숙사 생활은 쉽지 않았다. 외출이나 외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나 절은 외출증을 받기가 쉬웠다. 교회는 신실한 믿음 보다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선생님이 고등부 담임이 된 후론 신앙심이 조금 생기긴 했다.  


선생님은 K교회를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시내의 다른 교회를 다니셨다. 회사는 '금성 일렉트로닉(LG)'을 다니셨다. 고등부 교사를 제안 받고 첫날, 우리를 만났을 때 무척 떨렸다고 했다. 


"너희들을 만났을 때 너무 떨렸어. 이 맑고 순수한 영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거든."


멸하지 않는 영혼의 양식


선생님은 편지를 자주 보냈다. 공책이나 편지지에 꼭꼭 눌러 쓴 편지는 칭찬과 격려가 담겨 있었다. 삶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계절과 날씨, 주변 풍경 이야기, 회사 이야기, 싫어하는 상사 뒷담화,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들어 있었다. 선생님의 편지는 묘한 설렘을 주었다. 선생님에게 답장을 쓸 땐 시험공부를 할 때 보다 더 머리를 싸매야 했다. 하지만 온 세계가 불안한 청소년의 정서에 촉촉함을 적셔 주는 창작의 시간이 즐거웠다. 내 글쓰기의 시작은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소풍 갈까?"

"와, 좋아요. 어디로요?"

"금오산."


하루는 학생부 모임을 마친 선생님이 설렘 가득한, 해맑은 표정으로 가을 소풍을 가자고 했다. 좋았다. 볕이 따사로운 가을날, 우리는 금오산으로 소풍을 갔다. 오래전 기억이라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의 모든 순간이 좋았다. 


일년이 빠르게 흘렀다. 수련회, 성경학교, 소소한 행사와 기억들, 그 사이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축제를 하고,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마침내 삼 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선배가 되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기 전에 실습 회사가 정해졌다.


"인철이, 현장 실습 나간다며...어디야?"

"성남이에요."

"저런, 멀리 가네..보고 싶을 거야."

"편지 할게."



성남으로 취업을 나오고 나서도 한동안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회사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건강은 좋은지, 여자 친구는 사귀었는지, 여전히 칭찬과 긍정의 언어로 나를 위로했다. 멘토라는 말이 없던 시절, 선생님은 힘든 직장 생활을 하던 내가 기댈수 있는 훌륭한 멘토였다. 


"잘 지내지? 맞선 보기로 했어. 좋은 남자야."


선을 보고 결혼을 하셨다. 선생님이 보내 주신 사진속 사내는 키가 크고 포근한 인상이었다. 선생님과 잘 어울렸다. 이듬해 아이 사진을 보내주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도 옮기고 주소도 바뀌었다. 자연스레 편지는 끊기고 소식도 끊겼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났다. 우연히 서랍을 정리하다 빛바랜 편지를 꺼내 읽는데 내 인생에서 '사랑한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해주셨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삭막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다. 항상 '너는 잘 될 거야!'라는 말로 힘을 실어주던 선생님의 미소가 떠오른다. 멘토라는 말이 없던 시절, 인생의 멘토셨던 선생님,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