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은 얼마나 많은 기회 비용을 낭비했을까?
오전에 어머니와 함께 동사무소를 찾았다. 명칭이 바뀐 지 오래지만 행정복지센터라는 이름은 여전히 마르고 갈라진 나의 입술과 축축한 귀에 익숙하지 않다. 오늘 아침의 방문은 여섯 달 전에 한 선택의 나비 효과다. 그런데 하필 왜 이 시점일까? 걱정 가득한 어머니의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동사무소 풍경은 늘 한결같다. 민원 접수를 하는 동안 딱 그만큼의 응대를 하는 발급 담당자에게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다. 동사무소에서 십분 남짓 머무는 동안 그의 표정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그를 보며 어제 오후 단골이라고 자동차 브레이크등 두 개를 무료로 갈아주던 카센터 사장님의 미소가 떠올랐다.
'선택은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을 비용으로 한다.'지만, 그 비용의 무게나 총량은 막상 값을 치루어야 하는 상황이 되기 전 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어진 조건이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나는 이런 상황들이 영 불편하고 마뜩잖다.
돌아보면 그 선택의 결과는, 특히 가족과 관련된 일에서 대개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가족은 그런 것이니까. 그 방식이 최선이었고 하필 그 최선이 나였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결과가 나쁘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가늠하기가 어렵다.
식전이라 단골 분식집에서 순대와 김밥을 사 가지고 오는데 현관문 앞에 흰 고양이가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왜 너는 거기 있는 거니? 이 시점에. 나도 집앞 맞은편에 잠시 웅크렸다. 자세히 보니 자주 보는 고양이다. 집 앞에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를, 흘러내린 물고기의 내장처럼 아무렇게나 헤집어 놓던 녀석이다.
새벽마다 배고픔인지, 외로움인지, 아니면 교미를 위한 울음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는 고양이도 저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 순대 한 덩어리를 녀석 앞에 던져줄까 싶었지만, 그동안의 행적이 괘씸했고 밀봉된 용기를 뜯기가 귀찮았다.
물 없이 먹는 순대는 텁텁했다. 김밥을 먹던 중 옆구리가 터졌다. 옆구리 터진 김밥을 물없이 삼켰다. 몸 밖으로 내장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선택은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을 비용으로 한다. 오후에 또 다른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정확히 하자면 선택을 당하는 거지만, 나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능동적이고 싶다. 그 선택은 며칠, 몇 달 후 어떤 나비효과로 작용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