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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May 09. 2022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는 것들은 다 기이해

JTBC 나의 해방일지 9,10화 리뷰

길 한복판에 버려진 모자, 골목에 버려진 가죽 장갑, 제자리에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물건을 볼 때면 그 물건의 시간 속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나를 돌아본다. 나는 지금 제자리에 서있는 건가.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자리, 어느 곳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하던, 그래서 늘 불안하고 편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버스 창틀에서도 인조 손톱 본 적 있는데 진짜 이상했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것들은 다 기이해. 땅 위에 누워 있는 새, 나무 위에 매달린 사람. 밭에 있는 개도 이상하고." -나의 해방일지 9화-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그래서 인프제(INFJ)인 나를 잘 아는, 혹은 잘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은, 사회성이 떨어지는 거라고 했다. 어떤 이는 까칠하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짜 모습의 절반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까칠하다는 말들을 쿨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조언과 충고라는 핑계로 나를 지적하는 언어는, 상대에 따라서 멘토가 되거나 꼰대질이 된다. 그 가늠의 여부는 친구, 친척, 가족이라는 관계로 서로를 알아온 시간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에 달려있었다. 그래서 가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미정, 창희, 기정, 자경. 태훈을 보며 부분과 전체를 떠올렸다. 부분이 전체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외로움에선 부분이면서 전체다. 인물의 말투도, 성격도, 욕망도, 능력도, 천차만별이지만 그들이 자신의 공간에서 사는 외로움은 같은 온도와 색깔이다.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드러내지 않던 염미정이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직선은 수평에 우선한다. 버스 기둥, 유리창, 거실 소파, 버스 기둥은 그들이 아직은 하나가 아닌, 각자라는 수직의 은유다. 그들은 서로를 추앙하지만 여전히 서로를 잘 모른다. 버스 유리창의 바깥에서 안으로, 기둥의 바깥에서 안으로, 소파의 바깥에서 안으로. 수직이 수평으로 이동하면 둘이 하나가 될 것이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그럼 뒤통수 친 놈한테 형이라 그럴까? 내가 지금 싱크대도 만들어야 되고 좀 바빠. 내가 결정나면 올게. 싱크대가 좋다. 이 세계 접을란다. 아니면 아무래도 이 세계다. 내가 씹어 먹어야 겠다. 둘중에 하난데 내가 결정 갖고 올테니까 기다려."  -나의 해방일지 10화-


구 씨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났다. 그는 어두운 세계의 보스였다. 산포에 오기 전 사랑하던 연인을 잃었고, 그 상실감을 매일밤 알코올로 채워 넣는다. 염미정은 그의 예정된 고백에도 표정 하나 변화 없이 당당하고 꿋꿋하다. 그녀는 구 씨의 진실을 알고서도 여전히 그에게 추앙받기를 원한다. 알콩달콩이 아닌 어둡게 내외하는 연애도 충분히 설레인다. 


'애 딸린 홀아비' 태훈을 향한 염기정의 적극적인(추앙)은 그의 태도 때문이다. 로또를 선물하던 회사 이사의 예언대로 그녀는 올해 안에 새로운 첫사랑(?)을 할 것 같다. 창희는 동료의 말처럼 정말로 욕망이 없는 것일까, 없는 척하는 것일까? 얄미운 정대리의 '김치찌게' 발언에 폭발하던 창희를 보며 이전 직장에서'착하다'라는 발언에 급발진했던 내가 떠올랐다. 창희의 '김치찌게'나 나의 '착함'은 내내 쌓였던 감정의 스위치다. 승진에서 미끄러진 창희는, 그가 열렬히 증오하는, 욕망에 솔직한, 옆자리 정대리의 욕망에 함께 올라탈 것 같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 일지는 숨이 차지 않는다. 달리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미정과 구 씨가 주고받는 대화는 반박자 느리다. '나의 아저씨'도 그랬다. 인물들의 대사를 흐르는 잠깐의 정적이 답답하기보다는, 내 의식의 흐름이 만들어낸 독백이 그 고요한 정적 사이로 끼어든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느려지고 차분해진다. 심장이 느리게 뛰는 동물은 장수한다는데 이 드라마는 내 생명을 하루씩 연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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