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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May 23. 2022

현실과 드라마의 슬픈 컬래버레이션

JTBC 나의 해방 일지 13, 14화

나의 해방 일지 13,14회는 미정의 엄마가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쓸쓸했다. 대사 없이 배경처럼 집안일만 하던 곽혜숙(이경성 분) 씨. 기정의 남자 친구를 본 그녀의 환한 미소와, 시장에서 들은, 개를 잃어버린 미정의 상처를 안 엄마의 슬픈 표정이 바로 이어질 슬픔의 복선인 줄 몰랐다. 



미정을 버리고 산포를 떠나  다시 클럽<호스트 바>의 사장이 된 구 씨가 호스트의 아기를 바라보던 표정이 귀여우면서도 아이러니했다. 그래 한 살짜리 아이랑 눈을 마주치며 술잔을 건배하는 건 좀 아니지. 한 살짜리 구 씨를 업어주고 싶다던 미정의 말이 떠올랐다. 



창희는 8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기정이 아침 출근길에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구 씨가 떠나고 그 자리를 창희가 대신했다. 롤스로이스가 사라진 창희의 천국은 어디일까? 


"그래서 앞으로 뭐할 건데?"

"당분간은 아무것도 안 하려고....

"당분간 얼마나?"

"아버지...구 씨한테 하던 거 반만 저한테... 제가 뭐 그렇게 썩 잘 나진 않았지만 저 그렇게 밖에 욕먹고 다니진 않아요.... 그동안 좀 수고했다. 쉬어라, 그래 주시면 안 돼요?" 


회사를 그만둔 창희의 솔직한 고백은 이 년 전의 내 모습을 닮았다. 그 대상이 창희는 아버지였고 나는 나 자신에게였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말해줬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잠시 쉬라고. 현실은 남루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지금도 고맙다. 앞으로도 주욱 고마울 거다.



고구마밭에서 펼쳐진 제호와 교만한 교수의 신경전, 낡은 포터와 고급 세단의 시골길 추격전이 볼만했다. 지름길로 달린 포터가 승리를 목전에 두고 논고랑에 꽈당했다. 남자는 아이아 어른이나 아홉 살 같은 철부지다.



미정과 구 씨, 둘 사이의 이별이 잠깐이길 바랐지만 2년 동안 미정의 가족에게 참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미정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기정은 태훈에게 청혼을 했고, 미정은 자신도 모르게 최 팀장의 불륜녀가 되어있었다.


살아서 천국을 보겠다는 미정의 다짐은 어디 간 건지. 최 팀장, 불륜녀, 왜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 건지. 아니... 불륜녀랑 한바탕 하긴 했지. 그런데 치료비?, 합의금?  때문에 대출은 또 왜 받는 건데. 구 씨야 빨리 와서 최 팀장 좀 때려줘 제발. 갑질하는 최 팀장 볼 때마다 내 속이 부글부글 거린다. 



토요일 아침에 이른 전화를 받았다. 액정에 옛 제자의 이름이 뜬다. 아끼던 제자다. 새벽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수화기 너머 제자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아프다는 소식도 들었고 예정된 이별이다. 그래도 슬프다. 그런데 미정 엄마의 죽음은 예상치 못했다. 처음으로 이 드라마의 작가가 원망스러웠다.


이 드라마는 밥 먹는 장면이 참 많다. 미정 엄마는 매일 밥을 한다. 빨래도 걷고 밭일도 하고 남편의 일도 돕는다. 다리가 불편하다. 든 자리는 모르고 난 자리는 안다는데, 세 남매 엄마의 빈자리는 공백이 컸다. 밥솥에 까맣게 탄 밥, 엄마의 해방은 살아서 이룰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구 씨가 미정에게 연락을 했다. 2년 만에. 미정은 그 전화를 또 쿨하게 받아준다. 나 같으면 욕 한 바가지 했을 것 같은데. 보고 싶다. 안돼. 왜? 살쪘어. 한 시간 만에 뺀 살치곤 완전 대박이다. 스타일도 달라졌어. 


"근데 이름이 뭐예요?"

"구자경."



드라마 시작하고 14회 만에 구 씨가 미정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 너네 사랑은 왜 그따워인 거니? 그건 찐 사랑이 아니야. 일요일 오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큰 이모 돌아가셨다. 당신의 목소리가 슬프다. 슬픈 게 맞다. 하지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당신의 목소리는 항상 슬프다. 내가 기쁘게 전화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 알았다. 갈거니? 가야죠. 현실에서, 드라마에서, 지난 이틀 사이에 세 명의 부고를 받았다. 


  *사족 : 이모보다는 고모? 태훈 딸의 고모는 볼수록 츤데레인데, 미정 삼 남매의 고모는 철천지 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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