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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24. 2024

어머니의 택배 상자가 사라졌다.

어머니 지인이 보낸  고구마(feat 들기름, 참깨) 실종 사건의 전말

어머니의 택배가 사라졌다. 며칠 전 어머니의 지인이 고구마(feat 들기름, 참깨) 한 박스를 택배로 보내셨다. 작년 이맘때에도 농산물을 한 꾸러미 보내셨다. 어머니의 지인은 어머니가 어릴 적 한 동네에 살던 분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몇 년 전에 아는 분을 통해 다시 연락이 되셨다. 당시 어머니의 지인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외할머니가 항상 지인에게 먹을 것도 챙겨주시고 잘해주셨다고 한다. 지금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어릴 적 힘들던 자신에게 베풀어 주시던 일을 지금도 잊지 않고 계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는 지인이 발송한 택배를 받지 못하셨다. 배송 기사에게 택배 배송 완료 문자도 받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하셨다. 나는 하루만 더 기다려 보라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어머니의 지인이 보낸 택배는 도착하지 않았다. 택배회사에서도 담당 배송기사가 이상 없이 잘 배송했다고 했다. 


하지만 택배는 어디에도 없었다. 배송기사의 연락처를 알 수가 없었다. 배송 기사에게 확인 전화가 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택배 상자를 받지 못한 채 이틀이 더 지났다. 택배회사에서도 담당 기사가 배송을 완료했다는 사실만 확인해 줄 뿐 자기들도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담당 기사가 다른 집에 배송을 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야, 방금 어떤 남자가 전화를 했는데, 아무래도 우리 집에 올 택배가 그 집으로 배송이 됐나 보다. 그 양반이 어디 어디라고 자기 주소를 알려 줬는데, 내가 귀가 어두워서 그 양반 말을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까. 네가 통화를 좀 해봐."




어머니가 알려주신 번호로 전화를 하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전화를 받으셨다. 보관하고 계신 택배 물품 주인 아들이라고 말씀드리니 어르신께서 주소를 알려주셨다. 네이버 지도로 주소를 검색했다. 어머니 집에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안 열어 봤어. 박스 안에 내용물이 뭔지도 몰라, 잘 들고 가슈."

"네, 어르신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잃어버린 택배를 찾았다. 두 손으로 고구마가 담긴 박스를 드니 꽤나 묵직했다. 박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 박스를 열었다. 흙이 묻은 크고 작은 고구마와 눅진한 들기름 한병, 고소한 참깨 한 병이 신문지 뭉치에 쌓여 있었다. 어머니는 바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마침내 택배상자를 찾았다고 알려주셨다.  




"언니, 택배 찾았어요,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그려, 찾았다니 다행이네, 그게 얼마 안되뵈도 값으로 치면 한 15만 원어치는 될 텐데, 잃어버렸으면 어째쓰까 혔는디. 인자 안심이네."

"그 염병할 놈의 택배 기사가 배송을 엉터리로 해놓고 연락도 없고 월매나 부아가 치밀던지." 


어머니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화가 안풀리시는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택배기사에게 한바탕 욕을 퍼부으셨다. 나 또한 배송 기사의 대처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 말대로 택배를 엉뚱한 곳에 배송하고, 사후 조치는커녕 전화조차 없는 배송 기사의 대처가 상당히 아쉬웠다. 잃어버린 택배상자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어머니는 하지 않아도 될 마음고생을 하셨고, 또한 좋은 마음으로 택배를 보내신 어머니의 지인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박스 상단에 붙은 택배 송장을 보니 조금 이상했다. 송장에 적힌 어머니의 집 주소가 틀렸다. 송장에 적힌 주소는 방금 내가 택배 상자를 찾아온 집 주소였다. 아무래도 택배를 보내신 어머니의 지인이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듯했다. 주소 첫자리가 822번지였는데 222번지였다.


그렇게 지난 며칠간 지인이 보낸 어머니의 택배 실종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해피엔딩이다. 배송기사님이야 택배 송장에 적힌 주소로 배송을 했으니 기사님 잘못은 아니다. 그래도 평소처럼 어머니에게 택배 배송을 완료했다는 문자를 보내셨으면 잘못 배송된 택배상자를 찾는 게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이다. 그 점은 조금 아쉽다. 오늘 저녁엔 어머니가 나누어 주신 달콤한 고구마를 쪄서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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