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역사기행을 준비하다.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7월이다. 여름 방학이 코앞이다. 중등부로 온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 년 혹은 한 달을 한 단위로 묶어서 과거로 보냈다.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사건들이 아련히 떠올랐다가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사연의 깊이와 무게가 만만찮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일 년 동안 잘 지냈다고. 아니 잘 버텼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대견하다고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앞에 놓인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가끔은 돌아 가고 싶지만 우회로는 없다. 언제까지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수 없다. 지역아동센터 평가제, 여름캠프, 재개발로 인한 이사 등 센터 현안들이 산적하다. 그중에 아이들과 함께 할 여름 캠프 때문에 고민이다. 아이들과의 캠프는 설렘과 긴장이 동전의 양면 같다. 2박 3일간 '바이킹'을 타는 기분이다.


여름 방학은 캠프가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이다. 지난해엔 중등부로 온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탓에 제대로 된 방학 캠프를 준비하지 못했다. 아이들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 올해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캠프 계획이 떠오르지 않는다. 회의 시간 선생님들에게 캠프 이야기를 꺼내면 살며시 미소만 짓거나 두 눈만 동그라니 뜬 채 답이 없다. 결국은 경험이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앞에서 끌 테니 뒤에서 열심히 밀어주시기를 바랄밖에.


사진출처-pixabay

캠프를 다녀오기 전까지 신경 쓸게 많다. 사전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가장 큰 어려움은 예산이다. 운영비로는 엄두도 못 내고 기업이나 개인에게 후원을 받아야 한다. 작년에도 예산이 없어서 초등부 캠프에 끼어서 조촐하게 다녀왔다. 올해는 'H 네트워크'에서 캠프 예산이 일부 지원되지만 조건이 있다. 캠프 주제로 '역사'를 안고 가야 한다. 역사.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역사/캠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살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학교 역사 선생님께 좋은 프로그램이 없을까 물었지만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이들하고 제주도 한번 가보지 그래? 4.3 프로그램 괜찮던데."


책임교사 운영 회의 시간에 어린이집 선생님인 김** 샘이 제주도 이야기를 꺼냈다. 제주도. 몇 년 전 인천에서 배(오하마나호)를타고 한번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다. 망망대해 선상에서의 경험과 야자나무 등 짧은 이국적인 제주에서의 하루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날부터 머릿속은 온통 캠프와 제주도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갈 수 있을까? 그래 못 갈 것도 없지. 지르고 보자. 일단 마음속으로 정하고 나니 선박, 항공, 숙박 등등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답사도 다녀와야 하는데.


금요일마다 오시는 오케스트라 선생님이 캠프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더니 잘 아는 여행사를 소개해주시겠단다. 지난주 월요일 오케스트라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여행사 담당을 만났다. 팀장은 푸른 학교를 잘 안다고 했다. 가져온 예산과 일정을 보니 역시 예산이 만만찮았다. 선박과 항공료가 경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뺄 것 다 뺀다고 해도 기본 경비는 4백 만 원 이상이 들었다.

"선생님 우리 이번 캠프 진짜 제주도로 가요?"

"대박!"

"나 비행기 한 번도 안 타봤는데."

"나도."

"나도."

아이들은 '제주도'라는 한마디에 교실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빠 수학여행을 보내야 해서 자기는 캠프 비를 못 낸다는 한 여학생은 삼십 분이 넘도록 전화통을 붙잡고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엄마가 오빠 일본 보내야 된다고 저는 가지 말래요."


오랜만에 얼굴 보인 아이는 왜 명단에 자기 이름은 넣지 않았냐며 거센 항의를 한다. 명단을 넣을 당시 연락이 닿지 않던 남학생도 꼭 가고 싶어 했다. 문제는 빠듯한 예산이었다. 일인당 예상 캠프 비용이 최소한 이십만 원이었다. 사람들은 그 정도면 싸게 가는 거란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백만 원 이상이 더 들었다. 아이들에게 참가비를 일부 받는다고 해도 턱없이 모자란다. 그렇게 부족한 예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인터넷에선 초등학교 교장들의 수학여행비 횡령 사건이 터졌다. 학생 일인당 교장에게 만 원 정도 뒷돈이 돌아갔단다. 숙박 업소와 버스 기사에게서도 뒷돈을 받았단다. 이런 미친.


제주도로 잡은 캠프 때문에 예상치 못했던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 효과라고 해야 하나? 이번 여름 캠프 참가 기준에 출석률을 적용한다고 하니 늘 지각하던 아이들 종종 빠지던 아이들이 열심히 출석을 한다. 못 오면 안타까운 목소리로 늦어야 하는 이유를 열심히 둘러댄다. 몇 달 전 공부방을 그만둔 아이에게서도 다시 다니고 싶다며 전화가 왔다. 작년엔 안 가겠다는 아이들 설득하느라 힘들었는데 올해는 가겠다는 아이들을 말려야 할 상황이다. 녀석들 진작 좀 그럴 것이지. 그렇지만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 한 못 가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예산이 확보된다고 해도 비행 일정상 티 켓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산을 줄이고 줄이다 보니 현지에서의 먹을거리가 부실할 것 같았다. 목요일 생일파티를 마치고 나누미 선생님에게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알아보시겠다고 했다. 이런 일엔 늘 발 벗고 나서 주신다. 일단은 안심이다. 금요일, 오케스트라 선생님이 캠프 예산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처음 예산보다 거의 두 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아 주시겠다며 예산을 줄일 방법을 좀 더 고민해보잔다.


몇 번의 조율을 거쳐서 지난주 수요일 여행사와 최종 계약서를 작성했다. 제주 4,3 역사 기행. 마침내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확보된 예산은 여전히 모자란다. 캠프는, 특히 아이들과 함께 가는 캠프는 낭만을 옆구리에 끼고 룰루랄라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다. 버스 타고 두 시 간여 거리를 다녀오는 캠프와는 규모와 거리가 다르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긴장감에 잠을 못 이룰 때도 있다.


선박과 항공. 숙소. 현지에서의 먹을거리. 혹시라도 있을 안전사고. 무엇보다도 날씨가 변수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마지막 날 아침 첫 비행기로 떠나야 하는 것도 맘에 걸린다. 이왕 가는 건데 좀 여유 있게 다녀오면 좋을 텐데. 일단은 저질렀다. 결정하기까지가 힘들지 결정된 사항은 뚝심 있게 밀어붙인다. 에프 치킴의 재발견이다. 이제껏 그래 왔다. 풀리지 않는 것들은 남은 시간 하나씩 풀어 가면 된다. 돌이켜 보면 항상 방법은 있었으니까.


2010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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