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없는 삶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by 김인철

사진출처-pixabay


밤 열두 시 오 분 전이다. 중등부로 온 후로는 퇴근 시간이 항상 밤 열 시 열 한시다. 오늘은 오전부터 일정이 두 개나 잡혀 있었다. 웬만하면 빠지겠는데 두 건 다 긴박하고 중요한 사안이라서 빠질 수가 없었다. 요 근래 친구들과 편하게 맥주 한잔 마셔본 적이 없다. 오늘도 술 한 잔 하자는 후배의 전화를 눈물을 머금고 거절했다. 오래간만에 아름다운 후배들과 한잔 할 수 있었는데 일 년째 이러고 있다. 오후엔 운영비 정산에 들어가야 할 영수증이 없어서 농협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두 시간이 흘렀다. 여름캠프 준비 건으로 여행사 담당자를 만나고 나니 또 한 시간이 지났다. 이번 여름캠프는 제주도를 갈 예정이다. 4.3 역사 기행이다. 빠듯한 예산에 맞추다 보니 제주에서의 일정이 빠듯하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이들은 제주도, 선박, 비행기, 라는 말에 환호성을 내지른다.


저녁엔 수업이 끝나고 7월 생일파티가 있다. 나누미 선생님들이 준비하시지만 이것 역시 만만찮다. S샘에게 문자가 왔다. 나누미 선생님 중 한 분이 7월 생일이란다. 아이들에게 롤링페이퍼를 쓰게 했다. 시험도 끝나고 해서 수업 대신 영화를 보여줬다. 재미가 없는지 시큰둥하다. 영화 보는 사이 운영비 정산서에 들어갈 영수증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녀석들 떠드는 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같이 영화나 보자. 책상 위엔 구청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수북하다. 내일까지 구청에 제출해야 한다. 미리 해놓을걸. 이번 주 뭘 한 거지. 한가하게 놀지는 않은 것 같은데. 수북이 쌓인 신문은 일주일째 한 번도 들춰 보지 못했다. 중등부는 오후 수업이다 보니 출근 시간이 열두 시인데 일정을 맞춰야 해서 주 3일 정도는 오전에 출근해야 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수치랑 씨름하다 보면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된다. 진이 빠진 상태에서 웃는 얼굴로 맞아주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질 못한다.


혼자 남아서 남은 일들을 하는데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운영비 정산을 미루다 보면 감당이 힘들다. 오늘 새벽 한 시는 넘겨야 할 것 같다. 일정표를 보니 내일도 오전에 심리운동 교사 교육이 있다. 책임 있는 자리라는 게 그렇지만 서류 작업 안 끝난 거 알면서 퇴근 하시는 샘도 오늘은 좀 야속하다. 평교사 시절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피곤함은 확실하다. 평교사나 책임교사나 급여는 비슷하다. 공적인 일에 사비를 지출해야 할 때도 은근히 많다. 금액이 쌓이다 보면 몇 만 원씩은 한다. 쫌 스럽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아까운 것은 아까운 거니까. 평소엔 이런 생각 안 하는데 오늘처럼 빡빡한 일정에 시달리다 잡무마저 혼자서 해야 하는 상황이 좀 억울하다. 그냥 그렇다고.


2010년 7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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