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지속되면 모든 것이 좋은 걸까?'
2016도에 쓴 스타트랙 : 비욘드 감상후기입니다.
토요일 저녁 모란 롯데시네마에서 <스타트랙 : 비욘드>를 심야로 봤다. 개봉첫날 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보지 못했다. 최대한 간편한 복장과 가벼운 마음으로 두 시간을 다른 시공간의 세상 속으로 푹 빠져보리라는 기대감을 잔뜩 안고서 티켓을 끊었다. 프라임 시간대라 그런지 티켓값이 만천 원이다. 개봉일이 꽤 지난 영화라 객석은 많이 비어있다. 상영관도 단 한 곳뿐이고 횟수도 하루에 한 번이다.
SF영화에서 <스타워즈>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스타트랙> 시리즈는 마니아를 지칭하는 '트레키'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챙겨보는 영화 중 하나다. 스타워즈와 스타트랙 중 어느 게 더 좋아?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처럼 선택하기가 힘들다. 그나저나 스타워즈 8편 언제 개봉하냐? 2017년이란다. 우 씨,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스타트랙> 시리즈는 꽤나 역사가 깊은 SF영화다. 이전에 TV시리즈(스타트랙 오리지널) 도 있었고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특히 태양계를 탐사하고 심우주로 벗어난 나사의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의 전혀 예상치 못한 귀환을 다룬 영화 <스타트랙 보이저>는 흑성탈출 1편의 마지막 장면(부서진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반전과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안타깝게도 영화가 개봉되기 전 두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항상 유쾌하고 엔터프라이즈호를 누비며 목소리가 독특했던 안톤엘친(체코프), 그리고 다른 평행우주에서 온 스팍대사(레너드 니모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27세의 짧은 생애를 마친 안톤엘친의 영화 속에서의 귀엽고 유쾌 상쾌한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엔딩크레디트와 영화의 한 장명을 할애하여 유명을 달리한 두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 또한 스타트랙답다. 진심으로 멋지심!
SF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가볍거나 시간 때우기용 영화로 보는 건 단견이다. 우주라는 무한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페이스 오페라'는 심리적 공간과 거리를 지구밖까지 확장시켜 준다. 그중 스타트랙 시리즈는 단순한 SF영화를 넘어선다. 정치, 종교,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세계관은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물론 스타트랙은 드라마가 그다지 복잡하진 않다.
영화 <셜록> 시리즈로 유명한 '데이비드 컴버배치'가 악당역으로 분한 <스타트랙 : 다크니스>는 스토리와 화려한 그래픽, 웅장한 영상미를 볼 때 극장에서 보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소설 <링월드>의 거대한 링을 연상시키는 행성연합의 최첨단 기지인 <요크타운>의 압도적인 비주얼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무너뜨린 화려한 그래픽과 카메라 워크가 환상적이다. 다수의 SF소설과 영화에서 등장하는 구조물이라면 언젠가는 현실화되지 않을까.
그리고 말하자면 이 세편의 스타트랙 시리즈는 리메이크가 아닌 리부트다. 리메이크는 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리부트는 원작을 따르지 않고 캐릭터나 스토리를 새롭게 구성한다. 따라서 전편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훨씬 다양한 스토리와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J.J. 에이브람스가 아닌 <분노의 질주>를 연출한 저스틴 린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초반 전개되는 빠른 스피드는 한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감독의 장기인 후반부의 오토바이 체이싱 또한 인상적이다.
이번 영화 <스타트랙 : 비욘드>의 주제는 크게 개인과 집단 사이의 '소통'을 중심에 둔다. 개인과 팀의 소통. 삶의 모든 지점에서 소통은 항상 타인과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던가? 영화 초반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 커크(크리스파인)는 중장으로의 진급을 기대하며 함장을 스팍(재쿼리퀸토)에게 넘기려 한다. 하지만 스팍 또한 멸망해 버린(스타트랙 : 더 비기닝 편) 벌칸행성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엔터프라이즈호를 떠나려 한다. 그렇지만 개인의 사정을 우선하려는 두 사람 앞에 구조 요청이 온다. 결국 개인의 사정보다는 팀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커크와 스팍은 엔터프라이즈호의 대원과 함께 구조요청이 들어온 성운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정체 모를 우주선이 나타나고 엔터프라이즈호와 행성연합은 또다시 위기에 처한다.
스타트랙 시리즈 중 처음으로 완전히 파괴된 엔터프라이즈호. 엔터프라이즈 호의 대원들은 함장의 명령으로 비상 탈출 포드를 이용해 크롤의 본거지가 있는 행성으로 탈출한다. 하지만 대원들 대부분은 크롤에게 붙잡혀 인질이 된다. 대원들을 구하기 위한 스팍과 본즈(칼 어번)의 브로맨스, 스코티(사이먼페그와) 새로운 캐릭터인 제이라의(소피아 부텔라) 캐미도 좋았다.
궁금한 점 하나.
스타트랙 뒤에 붙는 <비욘드>라는 제목이 뭘 의미할까 궁금했다. '비욘드'는 너머. 보이지 않지만 추구해야 하는 것. 그런 의미다. 함부로 닿을 수 없는 이상, 진실. 소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필요한 것, 보다 필요한 것. 그리고 그 이상의 엄청난 노력들.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는 당연시되던 것들, 문제 되던 것들이 어떻게 이해되고 화해되며 또 받아들여질까? <스타트랙:비욘드>는 우리가 그려야 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인종, 다문화, 성적취향. 술루(존조)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 스팍의 커밍아웃까지도. 그런 점에서 스타트랙은 상당히 진보적이다. 그럼 스타워즈는? 제국주의 공화정. 내가 니 애비다.
영화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명제를 참과 거짓으로 실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늘 해피엔딩이자 진리일 수밖에 없는 '권선징악'의 형식이 될 테지만 관객들의 분노와 허탈을 자아내더라도 늘 선이 이기지 않는다는 반전을 기대해 보기도 했다. 마이너가 아닌 블록버스터, 특히 미국식 상업영화에서 그런 영화가 있었나? 있다면 알려 주시기 바란다.
'평화가 지속되면 모든 것이 좋은 걸까?'
가공할 병기로 엔터프라이즈호를 박살 낸 크롤의 대장은 커크에게 묻는다. 사냥을 마친 사냥개는 사냥꾼에게 잡아 먹히는 법. 그러나 자신은 잡아먹히지 않겠다고. 오히려 사냥꾼을 잡겠다고 커크를 향해 으르렁댄다. 그러나 전편 다크니스의 악역을 맡았던 컴버배치의 미친 연기력과 카리스마에 비하면 이번 비욘드 편의 악당 크롤(이드리스 엘바)은 스토리의 개연성과 카리스마가 상당히 떨어진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쁜 놈은 벌 받고 선한 자는 정의를 회복한다는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다. 뻔한 결말이지만 스타트랙이기에 납득이 되는 결말이다.
<끝>
P.S
엔터프라이즈호 같은 거대한 우주선을 어떻게 건조할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그 미스터리가 풀렸다.
유명을 달리한 두 배우를 추모하는 방식, 스타트랙의 전통과 유산을 고수하는 방식은 완전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