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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Apr 25. 2022

제발, 나를 추앙해 줘!

JTBC, 나의 해방 일지-5, 6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진 이유가 아닐까."


-jtbc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 5화-


"무슨 일 있었는지 안 물어. 어디서 어떻게 상처받고 이 동네 와서 술만 마시는지도 안 물어 한글도 모르고 ABC도 모르는 인간이어도 상관없어. 술 마시지 말란 말도 안 해. 그리고 안 잡아. 내가 다 차면 끝."


"멋진데. ㅎ나 추앙했다."

"쫌 더 해보시지. 약한 거 같은데."


-JTBC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 6화-



구 씨가 염미정을 추앙했다. 구 씨는 수수께끼 같은 알코올 중독자다. 매력적인 알코올 중독자. 구 씨에게 추앙을 받은 미정이 웃었다. 그녀를 보며 나도 웃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소주병 열 개를 나란히 세운 거리다. 마냥 좋지는 않은, 사랑하지만 조금은 불편한 관계들. 가족이든 동료든, 친구든, 다음 화에선 조금 더 가까워지자. 소주병 다섯 개 정도의 거리로.



구 씨를 새우잠자게 하던 방안 가득한 소주병을, 백만 년 만에 치우는데, 내 집 거실에 있던 소주병 개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열 하나. 마트에 팔아 봤자 아이스크림 하나도 바꾸지 못한다. 알코올 중독을 위해, 좀 더 열심히 달려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늘 소주 한 병을 깠다. 



감히 추앙은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누구라도 내가 그은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랐다. 이 드라마는 선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김치 싸대기도 없고, 예비 시어머니가 여자의 머리에 물을 끼얹지도 않는다. 집에서, 일터에서, 터벅터벅 걷는 길에서, 각자의 외로움과 공허를 말하고, 그늘이 짙은 공간에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욕망과 쓸쓸함을 그린다. 술에 취한 구 씨의 멍한 눈빛과 침묵, 그를 바라보는 염미정의 독백이 벼랑에서 떨어지고 있던 오늘의 나를 기꺼이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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