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의 책임, 글 한 줄의 무게

특이함과 독특함 사이.

by 김인철

석달 전, A 공간에 회원으로 가입을 했다. 회원 가입을 한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시설도 넓고 깔끔하고 분위기도 좋다. 종종 가는 공공 도서관과는 또 다른 편의를 제공해 준다. 얼마전 이 공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대표도 맡게 되었다. 이래저래 맡은 역할들이 좀 생겼다. 그러던중 A 공간의 시설장님이 프로젝트에 들어갈 회원 인터뷰 자료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회원들이 올려주신 내용을 정리해 이메일로 보냈다. 잠시 후, 시설장님이 회신을 보냈다.


“검토하고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간단한 회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어 하나가 신경이 쓰였다.


‘검토하고.’

나는 그 공간의 직원이 아니다.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시설장님의 요청에 응해 내가 할수 있는 선에서 성의껏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검토’라는 단어는 지금 내 위치와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였다. 마치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의 보고서나 문서를 평가하듯 느껴졌다. 나도 직장에서 많이 쓰던 단어였기에 검토라는 단어에 더 민감했는지 모른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나의 입장을 메일로 정중하게 전했다.


상대방에게 불편한 마음을 표현한다는 건 쉽지 않지만, 더 중요한건 ‘관계를 설정’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 프로젝트 대표를 맡고 나서부터 늘어나는 역할에 조금씩 부담이 되고 있었다. 나는 이 공간에서 조용히 회원으로 참여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의 선의는 협력 차원에서 끝나야 한다. 다음 날, 시설장님은 내 메일을 확인하고 자신의 단어 선택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사과를 전해왔다. 내가 전한 말의 무게를 함께 인식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오랜 인연의 지인에게 문자를 한통 받았다.


“어제 A와 B를 만났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셋이 다 ‘특이하다’는 말이 나왔어. 셋 중에서 누가 제일 특이한 성격 인가로 토론을 했고, 결국 우리 셋을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자는 결론이 났어요. 근데 샘은 B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투표해 봐요. 우리 셋 중 누가 가장 특이한 사람인지.”


문자를 받고 한 시간쯤 고민했다. 질문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제일 특이한가?’


그 질문이 가볍지 않았다. 왜냐면 이 질문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이 질문을 받고 한참 고민했어요. ‘누가 제일 특이한가?’라는 질문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느낌이에요. 전에도 샘에게 이 말을 했을 텐데... 저는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의 기준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 전제부터 성립되지 않는다고 봐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특이함’과 ‘독특함’을 구분해서 봐요. ‘특이함’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지만, ‘독특함’은 자기만의 색과 유니크함이 담긴 긍정적인 단어예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세 분은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 각자 ‘독특한 색’을 가진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굳이 한 표를 던지자면,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분에게 드릴게요.”


언어는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말이, 어떤 이에겐 꽤 오래 남는 말의 무게가 될수도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수 있고, 상찬이 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관계의 온도를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과 글의 무게를 생각한다. 내 감정에 솔직하면서 상대에게도 무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관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더 정직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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