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그루의 나무그늘 같은 삶
*우물쭈물하다보니 여전히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1인가구로 살고 있습니다. 이 브런치는 1인가구의 삶을 통해, 저처럼 혼자사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누리는 자유와, 어쩔수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에 대한 위로와 공감의 에세이입니다. 물론 1인가구가 아니어도 충분히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총 20화로 연재 할 예정입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중 몇편은 예전에 브런치에 발행했던 글을 줄이거나 일부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고 있다. 나도 이십대 초반을 제외하면 혼자 살고 있다. 외로울 때도 있지만 혼자가 편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하고 혼자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누구나 인생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은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드라마가 있다. 2018년 3월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다. 이 드라마는 힘겨운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중년의 아저씨와 어릴 때부터 상처받고 거칠게 살아온 이십 대 여성이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삶을 치유하는 이야기다. 주연인 박동훈(고 이선균 분)이나 이지안(아이유 분)은 물론 조연마저도 각자의 삶에 스며든 쓸쓸함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삼안 E&C의 권력싸움, 박동훈 삼 형제,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후계동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박동훈은 삼안 E&C의 건축구조기술사다. 그는 홀어머니(고두심 분) 밑에서 자란 삼 형제 중 둘째다. 맏형 기훈(박호산 분)은 퇴직 후 중년의 위기를 겪고, 막내 상훈(송새벽 분)은 영화감독의 꿈을 접은 채 방황한다. 동훈은 회사에서 능력은 있지만 승진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교 후배인 도준영(김영민 분)이 회사의 사장이다. 심지어 그는 동훈의 아내(이지아 분)와 불륜관계다.
이지안은 학생 시절 자신과 할머니를 괴롭히던 사채업자를 죽였다. 살인은 정당방위였고 죗값은 치렀지만 사회는 늘 지안에게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지안은 부모의 빚마저 떠안은 채 아르바이트와 불법을 행하며 빚을 갚는다. 동훈은 그런 지안을 계약직으로 뽑는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안은 자신을 가차 없이 내버려둔 세상에 냉소적이며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외면한다. 하지만 동훈은 그런 지안의 상처를 이해하며 잘 대해준다. 그런 지안은 동훈에게 밥을 사달라고 한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 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나의 아저씨> 4화)
동훈의 퇴근길은 항상 쓸쓸하다. 축 처진 어깨로 밤길을 터벅터벅 걷는 그의 모습이 이 드라마가 풍기는 어둡고 선득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동훈과 지안뿐만 아니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들은 애잔하고 서글프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무릉도원과 유토피아를 갈망한다.
“이 동네도 망가진 것 같고, 사람들도 망가진 거 같은데... 전혀 불행해 보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 줘.” (<나의 아저씨> 7화)
내게는 동훈 삼 형제와 친구들이 살던 후계동이 유토피아였다. 주말이면 함께 공을 차고, 아지트인 정희(오나라 분)네 호프집에서 맥주도 마시는 유토피아. 달리기를 잘해서 계약직이 된 지안은 그 유토피아의 수혜자였다.
<나의 아저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안 할머니의 장례식이다. 동훈은 지안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꼭 연락을 하라고 한다. 지안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동훈에게 연락을 한다. 쓸쓸한 장례식장이 안타까웠던 기훈은 청소일로 모은 돈으로 화환을 사서 장례식장 복도에 나란히 세운다. 후계동 주민들도 장례식장을 지켜 준다.
우리도 삼 형제였다. 십년 전 막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처음이었다. 장례비용도 걱정이었다. 막내의 마지막 길을 잘 보내주고 싶었다. 장례 준비를 마치고 지인들에게 부고를 알렸다. 첫날 막내 빈소는 쓸쓸했다. 동료들이 조문을 왔다. 친척과 친구들도 왔다. 그럼에도 빈소는 쓸쓸했다.
그런데 둘째 날 오후부터 낯선 얼굴들이 보였다. 지역에서 안면만 있던 분들이었다. 처음 보는 분들도 있었다. 법인 대표가 내가 활동하던 단체에도 동생의 부고를 돌렸다. 쓸쓸하던 빈소가 조문객들로 북적였다. 몇몇 분들은 발인하는 날 운구부터 화장장까지 함께 해주셨다. 큰 슬픔을 겪으니 작은 위로 한마디도 힘이 되었다. 정말 고마웠다.
사람들이 시와 소설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하나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고 평안함에 이르고 싶기 때문이다.
“너, 나 살리려고 이 동네 왔었나 보다. 다 죽어가는 나 살려 놓은 게 너야.”
“난 아저씨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봤는데.”
“이제 진짜 행복하자.” (<나의 아저씨> 16화)
동훈은 지안의 도움으로 상무로 승진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함께 일하던 직원과 사업을 시작한다. 지안은 삼안 E&C 회장의 소개로 지방에 있는 한 회사에 취직을 한다.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다.
“지안, 평안함에 이르렀나?”
“네.”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지안은 동훈에게 “밥 살게요.”라고 한다. 항상 그랬던 “밥 사주세요.”가 아닌 “밥 살게요.”는 마침내 지안의 불행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동훈은 지안을 향해 뒤돌아보며 선한 미소를 짓는다. 지안도 동훈을 향해 뒤돌아보며 평안함에 이른 표정을 짓는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