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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전거 해방일지

by 김인철


2022년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한동안 ‘해방’이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었다. 해방이라는 말은 엄숙하고 무겁다. 그런데 그 무겁고 엄숙한 해방의 의미가 <나의 해방일지>라는 좋은 드라마 한 편으로 친근한 의미로 다가왔다. 해방! 그렇다면 요즘 나를 해방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 명품, 가족, 친구, 사랑... 사람마다 해방의 기준은 다르다. 요즘 나를 해방시키는 건 자전거다.


걷기는 운동은 되지만, 재미가 없다. 반면에 자전거는 운동도 되면서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엔 접이식 미니벨로를 탔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사르륵사르륵 들리는 바큇살 소리가 좋다. 지상에서 몸이 살짝 떠 있는 듯, 온몸을 자전거 안장에 얹어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무척이나 상쾌하다. 기어를 최대한 올리고 페달을 힘껏 밟으면 전방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들이 내 품으로 와락 달려온다. 울퉁불퉁한 노면의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질 때 나는 여전히 살아서 지구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신나게 평지를 달리다 집으로 뻗은 오르막길 앞에 서면 숨이 턱턱 막혔다. 호흡을 가다듬고서 몸을 들어 무게 중심을 앞으로 둔다. 팔과 허벅지 근육에 최대한 힘을 준 채 페달을 힘껏 굴린다. 그럼에도 체력과 중력의 벽을 쉽게 넘지 못했다. 그 순간 나를 해방시켜주던 자전거는 다시 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전기 자전거로 바꿨다. 전기자전거는 정말 신세계였다. 일반 자전거는 나를 신체의 한계만큼 해방했지만, 전기자전거는 물리적 거리와 공간을 한층 더 멀리, 크게 넓혀주었다.


20240513_170307.jpg 나를 해방시켜준 전기자전거_에이유테크 M20


전기자전거는 오토바이처럼 손잡이를 돌리면 앞으로 나간다. 자전거 페달을 굴리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경험은, 닫힌 공간에서 가속페달을 밟는 자동차와는 또 다른 세상을 열어 주었다. 더욱이 전에는 엄두도 못 내던 오르막길을 전기모터의 힘으로 끝까지 오르면 나도 모르게 웃음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짜릿한 희열마저 느꼈다.


자전거는 단순한 속도감을 넘어서는 체험을 준다. 희뿌연 먼지, 매캐한 연기,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이 일상을 뒤덮은 도시 속에서 자전거는 속도와 함께 묘한 평온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주변에 가까이 있지만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 공원, 놀이터, 아파트,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다 보면 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인다.


전기 자전거는 교통비도 아껴준다. 하루 왕복 교통비를 하루 3천 원씩만 잡아도 육 개월이면 구매비용을 넘긴다. 고급 자동차처럼 뽐낼 승차감이나 하차감은 없지만 은근히 사람들의 시선도 끈다. 건널목이나 오르막길에서 힘겹게 자전거 페달을 돌리지도 않는데 저절로 굴러가는 전기 자전거를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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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탈 때 가장 좋은 점은, 생각이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간다.’는 단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전거와 나는 한 몸이 된 채, 앞서가는 라이더들을 따르거나 추월하며, 곧고 굽은 길을 신나게 질주한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때 주의 사항도 있다. 안전이다. 자전거 도로나 일반 도로를 통행할 때 지켜야 할 교통 수칙을 잘 숙지하고 안전 장비도 준비해야 한다. 특히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헬멧은 반드시 써야 한다. 사거리나 좁은 골목에선 언제 어린아이나 오토바이, 자동차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골목에서 나오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와 부딪칠 뻔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요즘은 자전거 동호회가 많다.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할 생각도 했지만 혼자 하는 라이딩을 즐기기로 했다. 넓게 보면 ‘나의 해방일지’ 클럽처럼, 거리에서 만나는 이들이 자전거 클럽의 회원들 아닐까? 굳이 그들과 말을 섞지 않아도 잠시 스치는 시선만으로도 자전거의 두 바퀴가 주는 긴장과 짜릿함을 이해하고, 특히 오르막길을 오를 때 허벅지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과 희열을 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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