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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첫번째 로또?

내 인생 첫번째 로또는....1998년 프랑스 월드컵

by 김인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내게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이 특별함은 프랑스가 우승했기 때문도, 차범근 감독이 네덜란드전에서 0대 5로 대패한 뒤 월드컵 기간중 경질된 사건 때문도 아니었다. 물론 두 사건은 당시의 축구팬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직원 스무 명 남짓한 벤처기업 개발팀에서 PCB 설계 업무를 맡고 있었다. 생산팀에서 설계팀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부담과 설레임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캐드스타’라는 설계 프로그램으로 PCB(BURN IN BOARD) 설계를 배우며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때로는 철야도 해야만 했었다. 내가 설계하는 BURN IN BOARD는 삼성 반도체 검사 장비에 들어가는 보드로, 1장당 가격이 천만 원이 넘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숭은 개최국인 프랑스가 차지했다.


우리 회사와 몇몇 협력 업체에서 샘플을 삼성에 제출하면, 삼성은 테스트 후 가장 좋은 결과를 낸 샘플에 주문을 넣었다. 그걸 업계 용어로 '콜'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설계 경력이 부족해 사수의 도움을 받았지만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고 한 번도 콜을 받지 못했다. 결국 설계팀으로 옮긴지 1년도 안 되어 퇴사를 했다. 문과 성향인 나는 설계 업무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다. 어느 날 개발실 팀원중 한 명이 사내에서 프랑스 월드컵 우승국을 맞추는 내기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임직원 모두가 만 원씩 걸었다. 혹시 동점자가 나올지 모르니 결승전 스코어와 결승골 시간까지 맞추도록 했다. 나도 만 원을 걸고서 우승은 프랑스, 스코어는 3:0, 결승골 시간은 후반 20분으로 예상했다.


월드컵 본선, 16강, 8강을 거치며 사내 분위기는 월드컵 우승국에 대한 관심이 달아올랐다. 자신이 예상한 나라가 탈락할 때마다 아쉬움과 탄식이 들렸다. 마침내 결승전에 프랑스가 진출하자 나는 업무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도 기뻤다. 직원들도 이 내기에서 누가 우승할 건지 관심이 높았다. 내기에 걸린 20만 원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IMG_20181213_094229 - 복사본.jpg 처음으로 로또 4등에 담청되어 오만원을 수령했다.


전반전에 지네딘 지단의 연속골이 터지며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두 사람 모두 3:0을 예상했다. 후반 48분 에마뉘엘 프티가 한 골을 더 넣으며 스코어는 3:0이 되었다. 마지막 결승골 시간이다. 누가 더 근접하게 맞추었을까. 후반 20분을 예상한 나였다. 나는 월드컵 우승국가를 맞히는 내기에서 우승했고, 상금의 절반은 전 직원에게 피자를 쏘았다. 더욱이 그날은 내게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평직원에서 주임으로 승진한 날이기도 했다. 비록 내 직장 생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직책이었지만.


프랑스 월드컵은 내 인생의 첫 번째 로또 당첨이었다. 그 뒤로도 행운권 추첨을 하면 매번은 아니지만 종종 행운권이 뽑히곤 했다. 나는 운이 상당히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복권(로또)을 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로또 최고 성적은 4등 한 번이지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국을 맞혔듯 언젠가는 로또도 1등에 뽑힐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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