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멀리 있는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다. 살면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큰 행운이다. 나는 사회생활 초기 몇년을 제외하고는 1인 가구로 살고 있다. 나이는 이제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이지만, 처자식 없이 혼자 사는 몸이라 넓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여섯 평짜리 전세로 살고 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이 공간도 충분히 넓었다. 하지만 살림이 조금씩 늘면서 지금은 다소 좁게 느껴진다. 다음에 이사를 하면 소파와 작은 식탁 정도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얻을 생각이다.
지금까지 이사를 많이 다녔다. 집주인은 물론 세입자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었다. 다만 IMF시절 처음으로 전세를 얻었던 빌라의 주인이 전세 보증금을 빼주지 않아서 애면글면 하다가 집주인의 아파트를 가압류를 한 적은 있다. 당시 전세 보증금을 빼서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한번 틀어지니 나중엔 어학연수를 하겠다는 마음도 시들해졌다. 뭐든 적당한 시기가 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 초년시절, 인생 공부를 제대로 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은 2층 다세대 주택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는 벌써 8년이 되었다. 지금은 집주인 포함 총 다섯 가구가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이사를 왔을 때 사시던 세입자분들은 모두 떠났고, 나는 지금 이 건물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세입자다. 주택이 오래되어 하수도 역류나 누수 등 여러 불편이 있었지만, 다른 세입자들과 잘 지내며 살고 있다.
지금 함께 사는 세입자는 할머니 두 분과 젊은 여성 한 분이다. 집주인 내외를 제외하면 나를 포함해서 모두 1인 가구다. 내가 상대적으로 젊은(?) 세입자에 남자다 보니 어르신이나 여성분이 가끔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갑자기 TV가 나오지 않거나 휴대폰 스미싱 문자 확인 같은 소소한 일들이다. 젊은 사람에게는 쉬운 일일 수 있지만 연세가 있는 분들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이니까.
"아저씨, 계세요. 계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지난해 겨울이었다. 지하층 여성 세입자 분이 내 집 현관문을 마구 두드렸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보일러가 터진 것 같다고 울먹였다. 그때 나는 전날 남았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려가서 확인해 보니 보일러 배관 하나가 얼었다가 터졌는지 배관에서 물이 솟구치며 바닥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방금 마신 술이 확 깼다. 처음엔 나도 당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건물로 들어오는 수도 밸브를 잠그고 글루건으로 세는 배관을 막았다. 다음날 주인이 아는 보일러 설비업자를 불러서 수리를 했다.
몇 달 전엔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밑에 사는 여성 세입자분께 민폐를 끼친 적도 있었다. 화장실 쪽 수도관에 작은 누수가 있었는데 그로 인해 지하층에 곰팡이가 생기고 벽지도 다 젖었다. 다행히 집주인도 세입자분도 크게 문제 삼지 않으시고 넘어가 주었다. 나는 최대한 피해 보상을 해 드리려고 했지만, 그동안 도움을 많이 주었으니 괜찮다고 하셨다.
방송이나 뉴스를 보면 층간 소음뿐만 아니라 누수 문제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갈등과 소송등 흉흉한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화장실 누수로 인해 지하층에 피해를 주었고 내심 큰돈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니 정말 고마웠다.
나와 가장 많이 왕래하는 분은 2층에 사는 어르신이다. 집 주변에 화제 거리가 생기면 가끔 건너가서 어르신과 이야기도 주고 받는다. 지난 추석날 저녁에 저녁을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2층 어르신이 전화를 했다.
"총각, 저녁 먹었어?
"아직 안 먹었어요."
"그려, 나가 잡채랑 나물 좀 혔는디, 아직 안 먹었으면 와서 가지고 가."
어르신은 평소에도 음식을 하시면 가끔 챙겨주신다. 잡채랑, 각종 나물, 호박전을 푸짐하게 싸주셨다. 살면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커다란 행복이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