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의, 상대주의, 그리고 회의주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세계의 겉만 아니라 본질, 본질을 이해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의식이 있는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 세계의 본질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크게 세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절대주의, 상대주의, 그리고 회의주의. 이는 곧 진리에 대한 관점, 다시 말해 신의 존재와 세계의 근원에 대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절대주의는 진리나 가치가 인간 바깥, 초월적 세계에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관점입니다. 쉽게 말해, 진리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죠.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개념으로 모든 사물의 진짜 모습, 본질을 설명했습니다. 흔히 ‘이데아’라는 말을 들어봤지만, 실제로는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개념을 잘 모릅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 자체에는 절대 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그 본질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는 의자는 모양과 색깔이 다 다르지만, ‘의자’라는 본질은 완벽한 형태로 따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앉는 의자는 그 본질의 복제본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본질을 완전히 알 수 없지만, 경험과 관찰을 통해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절대주의 철학의 흐름은 고대 플라톤에서 시작해 아리스토텔레스, 칸트로 이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 세계와 본질을 연결하며, 형상과 질료의 관계 속에서 질서를 탐구했습니다. 칸트는 인간 인식 이전의 선험적 구조를 통해 진리의 가능 조건을 설명하며 절대적 질서의 틀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상대주의는 진리와 가치가 인간의 관점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이는 형이하학적이며, 유물론과 연결됩니다. 상대주의 철학자들은 고대 프로타고라스에서 시작해, 중세 스피노자, 근대 마르크스로 이어집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며 인간 중심적 상대성을 강조했습니다.
스피노자는 범신론적 관점에서 신과 자연, 인간을 연결하며, 진리와 가치의 상대적·맥락적 조건을 탐구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과 가치를 물질적 조건과 관계 속에서 설명하며,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상대적 진리를 이해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사유를 이어받아, 니체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경계를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절대적 진리의 종말을 선포했지만, 단순한 상대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니체는 가치가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인간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영원회귀사상은 세상이 무한히 반복된다 해도 그 삶을 “다시” 긍정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는 단순한 회의나 체념이 아니라,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존재를 긍정하는 태도입니다. 니체에게 진리는 ‘발견되는 것’도, 단순히 ‘상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진리는 인간이 창조하는 것이며 니체의 철학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경계를 넘어, 실존적 긍정의 철학, 혹은 창조적 상대주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관점인 회의주의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두 입장을 한걸음 물러서서 바라봅니다. “진리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은 단지 ‘믿음’의 영역이 아닐까.” 몽테뉴는 확신 대신 질문을 택하며, 앎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서 인간의 겸허함을 보였습니다. 회의주의자는 결코 아무것도 믿지 않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지 않은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는 꽤 오랜시간 동안 이 세 가지 관점중 어디에 속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저는 절대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상대주의자도 아닙니다. 진리를 향한 제 관점은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의 경계선 어딘가에 걸쳐 있으면서도, 뚜렷하게 정의되지는 않는 모호한 영역에 있습니다. 저는 전통적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스피노자나 니체처럼 신적 존재를 전제로 한 철학적 사유는, 제게 우주와 인간 경험을 이해하는 상징적 도구로 작용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신앙은 없지만, 종교와 신앙을, 이 세계를 바라보고 삶을 성찰하는 창으로 삼습니다. 삶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감각과 직관, 관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질문하고 의심하는 동시에 저만의 경험과 성찰 속에서 진리를 찾는중입니다.
우주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저는 우주의 무한함을 인식하고, 그 앞에서 경외감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우주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가정도 인간의 인식 안에서만 갇혀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저를 통해 인식된 하나의 우주도 함께 사라지는 것 아닐까요.
브런치 작가님들은 이 세계를 어느 관점으로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진리, 즉 신의 존재와 가능성의 영역에 대한 세계관은 절대주의인가요, 상대주의인가요, 아니면 회의주의의 의심일까요? 혹은, 저처럼 신앙보다는 경험과 성찰을 중심으로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의 경계에서 이 불가해한 세계를 이해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