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백수생활 1년 반 만에 공공근로를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알게 된 것

by 김인철

*오랜만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썼습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처음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요즘 담배와 가장 친숙한 삶을 살고 있다. 지난 9월부터 공공근로를 한 지 두 달이 조금 안 되었다. 매일 대로변이나 골목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담배꽁초만 줍는 것은 아니다. 낙엽, 사탕봉지, 음료수 병, 껌종이 등 다양하다. 담배꽁초와 낙엽이 주를 이룬다. 일 년 반 전 직장을 그만두고 일 년이 넘도록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이제는 나이도 많고 채용 사이트를 통해 이력서를 수없이 넣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당장은 벌어놓은 돈이 있기에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의지도 필사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방 안에 웅크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그때 공공근로가 떠올랐다. 고심 끝에 내가 살고 있는 행정복지센터에서 모집하는 3분기 공공근로 모집에 신청했다. 다행히 공공근로에 선정되었다. 백수로 지낸 지 1년 6개월 만에 다시 아침형 인간으로 살기 시작했다. 공공근로는 어떤 일을 할까 궁금했다.


▲공공근로동네를 다니면서 대로변과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다. ⓒ 김인철


공공근로는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시청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저소득층, 실업자, 중장년층, 그리고 한부모 가정 등이 우선 선정된다. 나 역시 내가 살고 있는 행정복지센터의 공공근로 모집 공고문을 보고 신청서를 냈고 한 달 뒤 '선정 통보'를 받았다.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공공근로 시급은 1만 30원이다. 하루 5시간 기준으로 5만 원 남짓이다. 식대 5천 원이 별도로 나오고,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한 달 약 120만 원을 받는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일정한 수입이 생긴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달라진다.


근무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을 포함해 하루 5시간이다. 주 5일 근무에 4대 보험이 적용된다. 혹서기나 혹한기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근무시간이 조정되기도 한다. 공공근로 일 자체는 단순노동이지만, 참여자들은 시에서 제공하는 안전교육과 근무지 지침을 꼼꼼히 지켜야 한다. 대부분 중장년층이기에 무릎이나 허리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서로 도와가며 일을 이어간다.


공공근로는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5시간 근무다. '9 to 5'라는 평균의 삶과는 다른 한시적 일자리지만 무척 소중한 일자리다. 함께 공공근로에 참여하는 형님들과 여사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호칭을 형님과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여사님은 형님과 나를 삼촌으로 부른다. 각자 다른 삶의 영역에서 살던 7명이 환경을 위해 매일 지역을 돌며 거리를 청소한다. 정해진 구역을 오전에 두 번 오후에 한 번씩 돌며 길가와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줍는다.


검정봉지와 쇠짚게


공공근로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 도구는 네 가지다. 허리에 매는 작은 가방, 코팅장갑, 검정봉지 그리고 쇠짚게다. 작은 가방엔 일을 하면서 마실 생수병 하나를 넣는다. 오전 8시 50분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작업 준비를 마치면 형님과 여사님들과 함께 오전에 두 번, 오후에 한 번씩 정해진 구역을 돌며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며칠 쓰레기 줍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동 동선과 어디에 쓰레기가 많이 쌓이는지 알게 된다.


IE003525453_STD.jpg ▲공공근로, 지난 9월부터 공공근로를 하고 있다. 하루 5시간 배정된 지역의 길가와 골목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다. ⓒ 김인철


쓰레기가 많이 있는 곳은 주로 병원이나 술집, 음식점 앞이다. 쓰레기도 담뱃갑, 담배꽁초, 낙엽, 과자봉지, 휴지 다. 그중 낙엽과 담배꽁초가 90퍼센트다. 담배꽁초는 하루에 300개에서 500개 사이를 줍는다. 오전과 오후에 줍는 담배꽁초는 모양이나 형태가 다르다. 오전엔 지난 밤 사이 사람들의 발길에 치인 채 납작 눌리고 말라비틀어졌지만 오후의 담배꽁초는 싱싱하다. 어떤 담배꽁초는 불씨가 살아 있어서 검정봉지에 구멍을 내기도 한다.


일과 운동


공공근로를 하면서 무엇보다 좋은 점은 운동이 된다. 맡은 구역을 돌다 보면 하루 평균 1만5000보를 걷는다. 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운동이 된다. 게다가 지난 한 달간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골목을 다니며 쓰레기를 춥다보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과 세상이 보인다.


매일 무심히 오가던 동네의 일상을 새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돌다 보니 어느덧 식당 직원이나 사장님과도 인사도 건넨다. 내적 친밀감이 생긴 편의점이나 식당 직원, 미용실 원장님이 수고한다며 인사를 건넨다. 수고하신다며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서 주시기도한다.


IE003539071_STD.jpg ▲하늘빛 태양, 공공근로를 하다가 올려다 본 하늘. ⓒ 김인철



이른 아침의 신선한 공기가 불안한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해 준다. 출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의 표정과 분주한 발걸음도 새롭다. 버스 정류장의 풍경, 오전의 분주함, 오후의 골목을 누비며 보이는 다채로운 풍경들이 상점과 식당마다 다르게 펼쳐진다.


사소한 것들은 없다


골목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하나씩 집어 들 때마다 생각한다. 예전의 내게 그것은 단지 냄새나는 쓰레기였지만, 지금의 나에겐 다르다. 사회와 단절되고 움츠렸던 내가 세상과 다시 이어지는 하나의 매개체다. 길가의 작은 돌멩이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 거리와 골목에서 사람들의 눈에는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지만,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낸다.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차, 낙엽을 쓸어 담는 환경미화원, 그리고 나처럼 검정봉투와 짚게를 들고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 참여자들. 모두의 손이 모여 내가 사는 지역이 조금씩 깨끗해진다.


얼마 전 추석이 지났다. 꽤 긴 연휴였다. 대로변과 골목마다 긴 연휴의 흔적이 남았다. 그동안 쌓인 낙엽과 담배꽁초들이 길 위에 즐비하다. 오늘도 나는 형님들과 여사님들과 함께, 한 손엔 쇠짚게를, 다른 손엔 검정봉투를 들고서 낙옆과 담배꽁초를 줍는다. 수백번 허리를 굽히며 담배꽁초를 줍다 올려다 본 푸른 하늘과 태양빛이 눈부시다.

keyword
이전 15화좋은 이웃을 만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