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귀정사 템플스테이 셋째 날

by 김인철


템플스테이 삼일차다. 오전엔 하릴없이 요사채에서 혼자만의 시간과 여유를 즐겼다. 점심공양을 한 후 배롱나무가 보이는 벤치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다는 젊은 청년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 중인데 휴학 중이란다. 세계여행을 꿈꾸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다. 관심 있으면 묵었던 숙소 연락처를 알려준단다. 한 달 숙소비가 이십만 원이다. 그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점점 팔랑귀가 되어간다.


1590619038466.jpg 만행산 천황봉

오후엔 만행산을 올랐다. 정상인 천황봉까지는 1.6킬로다. 등산은 2014년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산행 후 처음이다. 산행 채비를 마치고 나오니 방금 전의 그 청년이 정상까지 완주를 하라며 조용히 파이팅을 해준다. 다시 하루 만보 걷기를 시작한 후부터 왼쪽 무릎이 아리고 시큰하다.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멍들고 까졌다. 그래서 오를 수 있는 곳 까지만 오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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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산은 초입부터 가파르다. 채 백 미터도 오르지 않았는데 숨이 턱에 찬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다. 산벌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등산로 앞을 막는다. 산 중턱에 이르니 전주 이 씨 지묘가 보인다. 그 후로도 묘를 네 개 더 지나쳤다. 망자의 무덤이 등산객의 산행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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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오를수록 가파르다. 평지는 거의 없다. 사지가 너덜너덜하다. 그러나 몸이 고될수록 저간의 삿된 생각들이 사라진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시간이다. 영차, 영차. 휴, 다리에 힘이 풀린다.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만 포기할까? 어디쯤 온 거지? 한 시간 남짓 오르는 동안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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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세 번 정도 발길을 돌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중턱에서 목을 축이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눈 앞에서 천혜의 광경이 펼쳐진다. 무릎이 아렸지만 견딜만했다. 잡목과 수풀에 가려진 천황봉은 곧 손에 닿을 듯하면서도 멀어지고 아득하기를 반복했다. 비우고 버리자고 왔는데 욕심이 났다. 천황봉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오늘 산행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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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경사지마다 박힌 굵은 밧줄을 의지한 채 중력을 거슬렀다. 에헤라디야. 이영차. 마침내 끝이 보인다. 너덜거리던 사지에 불끈 힘이 솟는다. 겨우 1.6킬로를 오르면서 알프스의 만년설을 오르기라도 한 듯한 격정에 휩싸인다. 아무렴 어떠냐. 내겐 저 푸르른 설경이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와 칸첸중가 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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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길은 수월했다. 열일 한 허벅지가 당기지만 중력에 미끄러지며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내려간다. 삼십 분 만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어머니에게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울린다.


"시방, 너그 집에 왔는데 이불이랑 가지런히 해놓고 갔더라. 다신 안 올 것처럼. 그거 보니까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서 울었어. "


지인 두 분이 금요일에 내려오기로 해서 하루 더 묵을 거라고 했다. 당신께서는 잘 머물다 올라오라고 했다. 저녁 공양을 한 후 보리와 놀고 있는데 또 전화가 울린다. 전에 있었던 시설의 센터장님이다. 내 근황을 들었다며 잘 쉬다 오라고 한다. 올라가면 맛있는 밥을 사주시라 했다. 소고기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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