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번호표가 없다

by 김인철

*이 글은 지난해 11월 25일 출간된 공저 별의별 삶의 온도에 수록되었습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은 떠날 때는 설레고 신이 나지만 떠나기 전까지는 준비하고 신경 쓸 것이 많다. 막상 여행을 하면 일정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다. 여행을 떠날 때는 좋고 집으로 돌아 올 때는 더욱 좋다. 그래서 마지막 글은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웬만해선 줄을 서지 않는다. 유명한 맛집이라도 대기 번호가 길거나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이다. 삶에는 번호표가 없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에는 번호표가 넘쳐난다. 요즘은 예약이나 번호표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어렵다. 도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적한 시골도 마찬가지다. 병원진료를 받으려면 번호표를 뽑아야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은행이나 관공서의 창구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커피 한 잔을 사려고 해도 줄을 서야 하고, 미술관이나 공연장엔 온라인 예약 없이는 입장조차 어렵다. 번호표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지켜야 하는 기본 질서다.


기다림은 예전에도 있었다. 훨씬 먼 과거에도 있었다. “줄을 서세요.”, “순서를 지키세요.”라며 질서를 요구하는 이들은 말한다. 효율을 위해서라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종종 피로감을 느낀다. 요즘은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인공지능이 나의 민원을 응대한다. 몇 단계의 안내 끝에 결국 포기하고 만다.


삼십여 년 전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던 훈련병 시절 나는 154번이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번호를 기억한다. 이름 대신 ‘154번’으로 불릴 때마다, 나라는 인간은 사라지고 고된 훈련에 지친 채 숫자로 환원된 존재만 남았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번호표가 없어도 언제든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숲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었다. 나는 매일 숲으로 향했다.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아무런 약속도, 목적도 없이, 그저 두 발이 이끄는 대로 향했다.


숲은 번호표를 묻지 않는다. 삶에 번호표가 없듯이 숲 또한 번호표가 없다. 숲은 문턱이 없다. 무질서하지만 평온하다. 그 자체로 완성된 자연의 질서다. 나무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잎사귀와 나뭇가지 사이를 흔들고, 내 볼을, 이마를, 어깨를 어루만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숲은 가능한 모든 언어로 내 귓속에 조용히 속삭여준다.


카메라 속 사진이 과거의 나를 불러낸다면, 숲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일으켜 세운다. 무기력함 대신 밝고 따스한 기운이 내 몸과 마음을 채운다. 숲의 속삭임이 내 귓가를 스치며 숨을 깊이 내쉬고, 다시 들이마실 때마다 공기 속 향기와 바람, 흙냄새가 함께 몸속으로 스며든다. 이곳에는 세상이 요구하는 성과도, 번호표도, 설명이나 핑계도 필요 없다.


눈부신 햇살이 잎사귀 사이로 부서지고, 나무껍질의 거친 질감이 손끝에 전해진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꽃잎이 난분분 흩날리고,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날갯짓하는 소리가 고요를 더한다. 나는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한다. 부러움이나 초조함 없이, 오롯이 자연이 내어준 자리 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숲은 나를 숫자가 아닌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숲을 벗어나면 세상은 다시 나를 번호로 부를지라도, 숲 속에서 나는 온전한 나로 서 있다. 고민과 짐은 나뭇가지와 푸른 잎사귀 사이로 흘러가고, 나는 숨을 내쉴 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진다. 매일 저녁, 나는 그렇게 나만의 숲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나, 그 자체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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