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기행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by 김인철

*이 글은 11월 25일 출간된 '별의별 삶의 온도'에 수록되었습니다.


카메라에 담아 두었던 추억을 좀 더 먼 과거로 보냈다. 남해의 작은 섬 하나가 떠올랐다. 소록도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배경이 된 섬이다. 소설을 읽으며 한센병 환자들이 일제 강점기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소록도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편견, 고통과 질곡의 역사를 알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순례자들이 성지를 찾아 떠나듯이 나도 한 번은 소록도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전 11시 수원역에서 순천행 기차를 탔다. 기차는 나를 순천역에 내려주고 홀연히 떠났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선 채 서서히 사라지는 기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는 것은 정류장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고 있는 소록도 또한 잠깐의 인연일 것이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초행길이라 물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역무원에게 물었다.


“소록도를 가려고 하는데요?”

“소록도요?” 

“네.”

“저 약국을 돌아가면 녹동행 간이 버스정류장이 있어요. 한 시간쯤 걸릴 거요. 여섯 시 넘으면 뱃길이 끊길 텐데, 근처 여관에서 하룻밤 머물고 내일이나 갈 수 있겠네요.”


중년의 역무원은 소록도 가는 길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녹동행 표를 끊고 십여 분을 기다리자 고흥·녹동행 버스가 정류장 앞에 섰다. 날은 완전히 저물어, 듬성듬성 비치는 마을의 불빛을 제외하곤 온 세상이 까맣다. 보성, 벌교, 고흥을 지나 여덟 시가 조금 넘어 녹동에 도착했다. 정류장에 서 있는 택시 한 대를 잡으며 물었다.


“소록도 선착장요?”

“지금요? 배 끊겼어요.”


버스정류장 근처의 허름한 여인숙에 여장을 풀었다. 밤이 늦은 탓인지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겨우 찾아낸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펑퍼짐한 몸매의 식당 여주인과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사내가 얼큰히 술에 취한 채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사천 원짜리 된장찌개를 시켰더니 각종 푸성귀와 반찬이 풍성하게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가 커다란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데, 세 사람이 배불리 먹어도 남을 지경이다.


“와, 정말 푸짐하네요.”

“그라요? 도시서 왔는가 본데 많이 드시소.”


소록도 선착장, 2차선으로 난 길을 따라 주우욱 올라감


다음날 아침,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일곱 시였다. 8시쯤 녹동항으로 갔다. 부두에는 소록도행 배가 승객과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녹동항에서 바라본 섬은 정말 가까웠다. 600여 미터, 채 십 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잠시 후 소록도에 도착했다. 선착장 한켠에 안내판이 있었다.


한센인들이 사는 마을은 부두에서 깊숙한 곳에 있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걸으니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성당과 교회가 보인다. 한센인 한 분이 ‘사발(미니 오토바이)’을 탄 채 내 옆을 비켜갔다. 해변을 따라 이십여 분을 걸었을까, 국립소록도병원과 한센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보였다.


소록도 성당, 잠시 들어가 예배를 드리고 나왔다


병사지대인 이곳은 ‘일반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고, 한센인들이 사는 신생리·남생리·동생리 등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병원을 마주 보고 있는 감금실과 수탄장을 둘러보았다.


감금실 전경, 내부에는 한센인들의 정관절제 수술용 단종대가 놓여 있음.


감금실 입구 안내문에는 한센인들이 감금, 감식, 금식, 체벌 등을 당했던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마치 교도소에 들어선 듯 삭막하다. 복도를 지나 오른쪽 맨 끝 방 중앙에는 단종대가 놓여있다, 한센인들은 결혼이나 한센병 완치 판정을 받고 출감하기 전 여기에 누워 정관절제수술을 받아야 했다. 벽에는 일제강점기 4대 수호 원장 시절, 명령을 거역한 벌로 감금실에 갇혔다 풀려난 뒤 단종 수술을 받았다는 한 한센병 환자의 절절한 시 <단종대>가 걸려 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감금실을 나와 위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일제강점기 한센인들의 애환을 담은 자료를 전시한 건물 두 동이 보인다. 제2전시관에는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시와 소설이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곳에서, 나를 이곳까지 이끈 이청준의 소설도 만났다. 전시물에는 한센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가족과의 생이별, 원주민과의 갈등, 그리고 힘겨웠던 오마도 간척사업의 기록이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특히 일본인 수호 원장의 탄압을 견디다 못해 살인을 저질렀던 이춘상 사건은 소록도의 비극적인 역사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중앙공원 입구, 사진 왼쪽에 제1, 제2 전시관이 있음


제2전시관을 나오자, 한센인들이 직접 가꾸었다는 중앙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규모는 작고 아담했지만 조경이 훌륭해, 환자들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었다. 잠시 후 중앙공원을 내려와 환자들의 복지 기금 마련을 위한 ‘선물의 집’에 들어섰다. 안에선 일본인으로 보이는 여성 셋이 서툰 한국말을 섞어 가며 기념품을 고르고 있었다.


한센병은 낫는다.


핸드폰 액세서리를 사서 밖으로 나오니 휴게실이 보였다. 소파에 앉아 믹스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쉬고 있는데, 할머니 두 분이 들어오셨다. 한 분은 하반신이 불편해 보였고, 다른 한 분은 양손에 손가락이 없었다. 그중 한 할머니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데 어려움이 있는지 나를 불렀다.


“총각, 커피 좀 뽑아 줄라요.”


할머니가 건네준 잔돈으로 커피 두 잔을 뽑아 소파로 갖다 드렸다.


“고맙소.”


연세가 어떻게 되냐는 나의 당돌한 물음에, 한 분은 예순 둘, 한 분은...


“나는 내가 몇 살인지도 몰러. 여든 셋인가, 넷인가?”

“이곳에 오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50년도 더 됐어. 삼천포에서 왔지. 그러는 총각은 어디서 왔는가?”

“서울에서 왔습니다.”


나는 할머니 두 분과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화 말미에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냐는 요청에, 여든이 넘으셨다는 할머니는 “아이고, 그럼 안경을 벗어야지.” 하시며 손가락 없는 뭉툭한 팔목으로 돋보기를 벗으셨다.


DSC01321.JPG


“이래야 더 이쁘게 나오거든.”


찰칵, 찰칵. 사진을 다 찍자 할머니는 볼일을 다 보셨다는 듯 일어서셨다.


“총각,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혀.”

“예, 할머니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병사지대 안쪽으로 사라지시는 두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그만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는데 시야에 펼쳐지는 소록도 풍경이 올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슬프고 어두울 것만 같았는데, 백 년 동안의 비극은 사라지고 지금은 잔잔한 수면처럼 평화롭다.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오는 한계일 것이다. 어디를 가든 이방인은 결코 알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한센인들에게 차별이나 편견,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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