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사 그리고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토요일이다. 늦잠을 잤다. 이 가을이 가기 전의 늦은 아침이다. 기지개를 펴며 커튼을 열었다. 눈이 부시다. 창틀에 비친 햇살과 사방의 새소리가 가을의 ‘화창함 주의보’를 알린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기상 예보관도 결코 전하지 못하는 주의보다. 대설주의보나 폭염주의보와는 다르다.
사방에서 들리는 새와 꽃들의 화창함 주의보 때문인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런 날은 조건 없이 떠나야 한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배낭을 하나 메고 집을 나섰다. 어디를 가지? 길상사? 그래 길상사. 지인이 자주 방문한다던 길상사가 떠올랐다. 지하철 3호선을 탔다. 길상사는 성북동에 있다. 본래 ‘대원각’이라는 고급 요정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정·관·재계 인사들이 드나들던 사교장이었다.
길상사는 세 사람의 소중한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기생 김영한(자야), 시인 백석, 그리고 무소유의 법정스님이다. 김영한은 대원각의 기생이자 마담이었다. 그녀는 시인 백석을 사랑했지만, 백석 집안의 반대로 끝내 헤어져야 했다. 그녀는 평생 백석을 그리워했다. 말년에는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법정 스님은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길상사’라 이름 지었다.
길상사는 1만 평이 넘지만 사찰만 보면 아담하다. 대법당(설법전), 극락전, 지장전, 요사채가 있다. 길상사 입구를 지나면 돌계단 옆에 이정표가 보인다. 사연이 있는 공간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극락전 오른편에 있는 돌탑으로 향했다. 방문객 두 사람이 탑돌이를 한다. 나도 그들을 따라서 돌탑을 몇 차례 천천히 돌았다. 경내를 천천히 걷다 보니 자연스레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오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자야와 백석, 백석과 자야. 고결한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을 두 사람. 하지만 경내 어디에서도 두 사람의 애틋하고 절절했던 사랑 이야기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지 못하는 것일까? 법정 스님과 자야의 인연은 쉽게 보이는데. 월북 시인의 이름은 여전히 공적인 공간에서 비껴 있는 걸까?
이곳에 온 지 한 시간이 지났다. 길상사의 오후가 천천히 흐른다. 이곳에서도 새와 나무들이 화창함 주의보를 알린다. 경내의 해사한 풍경과 멀리서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가 최근 부잡스럽던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극락전을 지나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선방’이라 불리는 수행자들을 위한 참선 공간이 나온다. 가까이 다가가니 ‘참선 중’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걸음은 물론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진다. 저 안에서 참선을 하는 수행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참선을 수행하고 있을까.
당분간 넘치는 건 시간뿐이다. 길상사는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지만 일부러 느릿느릿 걷는다. 내게 길상사를 알려준 그녀는 나의 ‘나타샤’는 아니었지만, 길상사와 잘 어울렸다. 나에겐 평생 연인을 그리워 한 나타샤도, 푹푹 나리는 눈길을 걷는 흰 당나귀도 없지만, 누군가를 떠올리며 길을 걷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함께 있지 않아도 인연은 닿아 있고 서로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사찰 안의 굽이진 길을 지나 내가 왔던 길로 발걸음을 돌린다. 시절은 흐르고, 사방에서 여전히 햇살이 푹푹 나린다. 길상사의 오후를 천천히 즐기며, 이 가을의 ‘화창함 주의보’를 무사히 지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