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에
연휴가 길다고 시작할 땐 '뭐 하고 보내지'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던 내편이 '아 벌써 끝나는 건가' 한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듯하다.
연휴가 길었던 덕분에 생긴 시간이 속절없이 가는 게 아쉬워 서울근교 산행에 나섰다.
항상 사람이 붐비는 산이라 한적한 코스를 선택해서 등반을 시작했다.
눈이 하얗게 쌓여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며칠 동안 쌓인 피로도 풀 겸 가볍게 올랐는데 몸이 지쳐있던 상태라 걸음이 더뎠다.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평소 같으면 가볍게 오를 코스인데, 세월아~ 네월아~ 올랐다.
연휴가 긴 덕분에 여유 있게 산에 올 시간이 생긴 거니까 기 빨려도 좋았다.
주변에 작은 발자국들이 도장처럼 꾹꾹 길게 쭈욱 찍혀 있어서 토낀가 하다가 바로 깨달았다.
고양이들의 흔적이었다.
토끼는 있어도 없는 듯 숨어 있을 것 같다.
1킬로도 못 가서 멈춰 서서 간식을 먹으며 당을 보충했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까마귀가 목쉰 소리로 까악 까악 가가가~~ 재촉하듯이 울어댄다.
못 간다아~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양이 세 마리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아무래도 냄새를 맡고 몰려온 듯했다.
서울 근교 산에는 유난히 고양이가 많다. 토실토실 살이 올라서 여기저기서 어슬렁거린다.
사람들이 쉴만한 곳엔 어김없이 웅크리고 앉아서, 노랑 초록 연두 눈동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잠시 쉬고 다시 올라가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아까 본 세 마리 고양이가 슬금슬금 따라온다.
"얘들아 왜 따라와" 하는데, 고양이들이 멈춰 서서 지켜본다.
이상하게 머리가 쭈삣 소름이 돋았다.
먹을걸 안 준다고 시위하는 건가 바짝 따라붙는다.
하산하는 사람이 지나가는데 비켜주고는 그 사람은 안 따라가고 우리만 따라왔다.
내편은 내가 관심을 주니까 따라오는 거라고 보지 말라고 한다.
조금 더 올라가다 돌아보니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자기들 구역이 끝났나 보다.
앞에 커다란 고양이 두 마리가 통신사 와이파이 기계 위에 앉아있다가 폴짝 뛰어서 내려왔다. 거기가 따뜻하니까 자리 잡아 있는 영리한 녀석들이다.
타이거가 내편 다리에 기댄다.
그러더니 또 슬그머니 따라온다.
오늘 무슨 일이지 줄 것도 없는데 참나!
오늘은 가는 곳마다 고양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
본의 아니게 그 녀석들과 산행을 했다.
올라가다가 미니 눈사람을 만들었었는데 하산하다 보니 누군가 처참히 뭉개놓았다.
성격 파탄자인가? 아니면 귀여운 건 꼴 보기 싫어서 그랬나? 뭉개진 작은 눈사람에 속상했다.
아쉬움은 잠시였고 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즐겁게 하산했다.
어디선가 지켜보는 눈이 있다.
고양이들의 눈길을 느끼며, 하얗고 폭신한 눈 길을 뽀드득거리며 터벌터벌 걸었다.
고양이는 하산하는 등산객은 따라가지 않는 듯하다.
숨은 고양이 찾기
날이 춥지 않아서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가끔 나무 위에서 녹은 눈의 물방울이 머리 위에 툭 떨어진다.
북적북적 왁자지껄 하던 순간이 쌀뜨물 가라앉듯이 지나가고 있었고, 긴 연휴가 아깝게 흘러갔다.
이제 좀 쉬어야지! 하는데 끝난 것 같다.
맛난 거 먹으며 즐기던 순간을 뒤로하고, 쑤신 몸에 하얀 알약을 털어 넣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이 한 근으로 줄어들길 바라고 있다.
마음과 달리 고단한 몸은 약과 함께 했고,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진 설 연휴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서울 근교에 언제든 갈 수 있는 훌륭한 명산이 많은 것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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