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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 음식이 맛있지

학습된 노동의 흔적

by 그리여

갑자기 일어나기가 힘이 들게 몸이 무겁고 끙! 소리가 절로 난다.

발은 천근만근 나아가기에 버겁다.

감기도 아니고 몸살도 아닌 약도 듣지 않는 통증에 기운이 빠진다.


소름 끼친다

명절 딱 열흘 전 어김없이 통증이 몸을 지배한다

신기하다 명절을 의식하지 않아도 기가 막히게 몸은 기억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나이테처럼 차곡차곡 기록된 노동의 흔적인가


명절이면 빨간 글씨 내내 손님을 치렀더랬다.

어차피 할 거면 즐겁게 하자 하고 할 도리를 했다.

내가 선택한 인생의 한 부분이니까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응했다.

그래도 모두가 즐겁게 보내는 걸 보면 나름 보람도 있었다.

피할 수 없으니 즐기기로 한 거다.

그렇게 쌓인 노동의 흔적을 몸은 하나하나 새기고 있었나 보다. '노동 이 녀석!' 뒤끝이 무섭군


명절증후군! 뭐 이런 병이 있나 싶게 딱 증상이 나타난다.

아기 때 등에 업혀서 본의 아니게 엄마의 노동을 체험한 막내도 명절증후군을 같이 앓는다.

탯줄이 아직 안 끊겼나 보다.

"엄마 왠지 온몸이 아프더라!" 한다

이런 일심동체는 반댈세! 자주자강(自主自强)하길......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일이 많이 줄었다.

가시면서 며느리의 고단함을 줄여주고 가셨다.


그래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앓는다.

만두를 빚고, 건나물을 삶아서 볶고, 나박김치도 하고, 묵도 쑤고, 형형색색 예쁜 잡채도 빠지면 섭섭하지.

이래저래 줄인 일거리다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라 심심치 않게 할 만하다.


내편이 외며느리인 나를 솔선수범하여 많이 도와주니까 일이 훨씬 수월하다.

열동서 안 부럽다.


명절음식도 지역마다 다르다. 남부지방인 친정에서는 떡국을 먹어도 만두를 넣지 않고 떡국만 끓였는데, 시댁은 중부지방이라 그런가 만두를 꼭 빚어서 넣었다.

만두를 빚으면서 명절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두부는 짜서 볶아서 수분을 날린다. 볶을 때 소금으로 밑간을 하고 마늘을 조금 넣어서 볶으면 포실포실해진다.

당면은 물에 간장, 식용유를 조금 넣고 조리듯이 삶아서 식힌 다음에 잘게 썰어둔다.


만두를 하려고 김장할 때 양념을 조금만 발라둔 김치를 익혀서 미리 준비해 두었고, 쫑쫑 잘게 썰어서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한다. 김치 써는 게 제일 힘이 든다. 내편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으리라.

팔이 아파서 이제는 이런 걸 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속상하다.

고기 넣은 만두를 싫어해서 표고버섯과 머쉬마루 버섯을 볶아서 넣고, 그 외 양념들을 추가한다.

준비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맛이 있으니까 결국은 수제로 만든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면서 만두를 빚고 찐다

맛본다고 먹다 보면 하염없이 먹게 된다.

수제니까 많이 먹어도 탈이 없고 질리지도 않는다.

나눠줄 것까지 만드니까 하루의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연휴가 기니까 여유가 있어서 좋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루하루 열심히 직장 다니면서 사는 건데 평소는 많이 못 만들어 먹더라도 명절만이라도 몸에 좋은 수제를 양껏 해서 먹자!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이 먹는 건데 조금의 수고가 몸을 건강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면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엄마 명절 냄새가 난다!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몸이 고단하다. 모르면 아예 안 할 텐데

그래도 만들어서 먹으면 포기할 수 없는 맛이 있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기어이 만들고야 만다.

왜 사서 먹는 건 이런 맛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

배달음식이 흔한 세상이지만 이 맛은 배달이 안된다.

질리지도 않고 속도 편한 수제 명절음식들이 상위에 놓이고 가족들은 만족감에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사는 게 뭐 별 건가 맛난 거 먹고 하하 호호! 즐기면 되는 거지

그래서 명절이 싫지 않은데 몸은 학습된 기억에 몸살을 앓는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도 포기 못하는 거지

왜냐하면 이미 알고 있는 맛이 있으니까

그래서 난 할 수 있는 한 수제음식을 계속해서 만들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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