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피식 웃는다
지금의 의원은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을 고칠 줄 모르니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말단(맨 끄트머리)만 좇는 격이다
- 동의보감 내경 편 -
복잡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몸의 고통으로 이어져 괴로움이 가중된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병에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말을 흔히 하는 세상이 되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지만 안 받을 수도 없고,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떼어놓을 수 없으니 늘 안고 같이 가며 살아야 한다. 해가 머리 위에 있으면 그림자가 짧아지듯이, 이런저런 스트레스 요인을 조금씩 풀어가면서 살다 보면 늘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고 그럭저럭 괜찮은 날이 오기도 한다.
취미생활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각자만의 방식으로 풀어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끈질기게 달라붙는 껌 같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몸을 공격하기도 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피할 수 없는 뼈아픈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스트레칭을 했을 뿐인데 허리가 뻑하더니 펴지지 않아서 겨우 옆구리 잡고 있는데 하필 그때 재채기가 나올 건 뭐람. 치명적인 충격에 허리 근육들이 요동치더니 '얼음!' 해버렸다.
자연치유는 어렵다 판단하여 한의원으로 직행하여 물리치료를 받고 침을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적당한 조명, 아늑한 따뜻함, 따끔한 아픔 이 모든 것이 거슬리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아팠나 보다 생각하니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닌데 여기저기 많이 불편해 보이네요' 하는 선생님의 말이 마음에 꽂힌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보니 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그나마 여기서는 어린 나이에 속한다는 것이 억지 위로라면 위로랄까
"허리척추 배열이 불규칙하고 간격이 좁아지는 곳이 있어서 평소도 좀 아프시겠네요"
"네"
기름칠 안된 녹슨 경첩이 끽끽 대듯이 스트레칭할 때마다 우두둑 대는 뼈들의 아우성에 귀가 시끄럽다.
에휴! 뭐 이리 녹록한 게 없나 내 몸도 내 맘대로 안되는가 이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가
내 몸사용에 대해서 다시 살펴봐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다.
흐르는 세월에 몸을 의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아픔이 동반하니 괜히 속상하고 열심히 살았음에도 뭔가 부아가 살짝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이 생각 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는데 옆에서 선생님과 어르신들이 나누는 스몰 토크가 귀에 들어온다.
"저번에 치료받고 가실 때 '내가 오랫동안 연락 없으면 죽은 줄 아세요!' 하고 가셔서 걱정했습니다"
"내가 그랬나요 왜 그랬지"
"네 또 뵈니 반가워요"
"몸이 요즘 확 안 좋아지는 거 같아요"
"사람의 몸이 매일 조금씩 아픈 게 아니고 아파지는 주기가 있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그러는 거죠"
"제 친구가 그러라고요 자기는 4년에 한 번씩 되게 아픈 거 같다고요"
"그렇군요"
"나는 매일 아픈 거 같아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나이 들어서 힘이 드는 거겠지요?"
"치료받으시면 나아질 겁니다. 침놓을게요 아프면 아프다고 하세요"
아 그렇구나 나도 아플 시기가 된 건가 그래서 갑자기 여기저기 아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또 다른 분과 나누는 얘기에 피식 혼자 웃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화장해서 그래 보이는 거지요"
"아 그런가요"
"화장 안 하면 주름이 자글자글 다 보여서 더 늙어 보여"
"하하 그러시군요 저번에 오셨을 때보다 몸은 좀 좋아지셨나요"
"그랬으면 안 왔지"
"그렇죠 오늘 잘 치료받고 가세요 차차 좋아지십니다"
"네"
무뚝뚝하게 툭 내뱉는 목소리의 어르신은 아마도 대문자 T 인듯하다.
여기저기서 도란도란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이 환자들에게 조근조근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몸이 아파도 저렇게 자신의 아픈 곳을 친절하게 물어봐주시고 알아주는 선생님이 계셔서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애들이 핸드폰을 바꿔줬는데 쓸 줄을 몰라"
"자녀분들에게 물어보세요"
"바쁘다고 얼굴 보기도 힘들어"
"그렇죠 다들 바쁘니 어쩔 수 없긴 하네요"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시는 어르신들을 보니 이런 맛에 한의원을 찾으시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서 오세요"
"저기로 들어가서 누우면 되지요"
라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물리치료실로 들어가는 어르신은 매일 오시는 것 같다.
나는 자주 오고 싶지 않고 귀찮다.
아직 덜 아픈가 보다
침을 맞고 나니 기름칠된 건가 신통하게 허리는 펴졌는데 쭈글 해진 마음은 펴지지 않는다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는 행보(行補, 걷기)가 낫다.
-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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