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꽉 찬
곡식을 거둬들인 텅 빈 들판
떨어진 이삭 누가 주워주길 기다리나
연붉은 노을빛이 물들어 들판에 깔린다
적막하고 비어있는 아름다움에 괜히 울컥해진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서로 등지고 있고
서로를 보지 못해도 느낀다
내어주고 키워주고 지켜주고 비어주고
그렇게 그 자리에서 잉태한 생명이
또다시 생명을 키운다
텅 비우고 나니 편안하게 쉴 수 있구나
비어서 허전한
아니
고요해서 슬픈
그런
쉼을 쉼 없이 하고 있구나
쉼이 끝났다
다시 내어주고
다시 지켜주는
그런 되풀이가 시작된다
초록의 생명이 들판에서 하늘하늘거린다
싱그러움이 파릇파릇 다시 피어난다
닦아도 또 끼고 닦아도 또 끼는 물때처럼
감정의 찌꺼기는 하릴없이 끼고 닦이고
시간은 그렇게 채우고 비울 수 있는
허허벌판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엄.마...
떠나간 내 영웅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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