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넌 이 사람과 결혼해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by 그리여

S는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이어서 그런지, 다소곳이 결혼을 하고 조신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S의 아버지는 가정에 소홀하여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어머니가 자식들을 돌보며 경제적인 책임까지 도맡아 고생하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니 아부지는 역마살이 끼었어. 없다 생각하고 살아라"S의 엄마는 늘 그렇게 말씀하시고 강건하고 씩씩하게 가정을 지키셨다.
그러던 어느 날 떠돌기만 하던 아버지가 집에 눌러앉으셨.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당연히 가정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한적이 없었다.

그런 분이 갑자기 집안일에 열심이셨고 돈을 버시겠다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셨다.

그러다가 그만 뺑소니 사고로 위급한 상황이 되셨다.

아버지로서 가족들과 같이 보내나 싶었는데 그 시간이 길지 않았다.

원래 하시던 대로 하시면서 살았다면 더 오래 사셨을까.

인생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가족들은 그저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부랴부랴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했는데, 겨우 자식들 얼굴을 알아볼 정도셨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S에게

"넌 나를 닮아 역마살이 있다 지금 결혼하지 않으면 넌 아마도 평생을 혼자 살 것이다. 그러니 내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거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유언을 남기시고 눈을 감으셨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무작정 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하다니


신랑감으로 점찍은 사람은 첫인상이 뭐랄까 웃음이 별로 없고,

무표정이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별로 정이 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무엇에 홀려서 그런 유언을 하신 걸까

사경을 헤매다가 판단이 흐려지신 걸까

S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성실하지도 않았고, 따뜻함을 느껴보지도 않았지만, 사고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할 수가 없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S는 부모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성향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유언을 무시할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후 결혼을 하였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그렇게 한 가정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이 그리 재밌었겠는가

그의 얼굴은 마치 흐린 하늘과 같아 보였다.

S는 체념하듯 덤덤하게 털어놓는다.

"그 인간은 직장도 변변치 않고 생활비도 주지 않는다. 처음 한동안은 생활비를 주면서 잘하는 듯하였으나, 그것이 알고 보니 거짓이었어 "

어이없게도 S는 속아서 결혼한 것이다

남편은 처음부터 직장이 없는 백수였고, 생활비는 시댁에서 한동안 보내준 것이었다.

탄로 나기 전까지 연기하다가 막상 들키니까 뻔뻔해졌다지.

그때부터 S는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자유가 없는 삶을 이어갔다.

어쩌겠는가.

팔자려니 하고 체념을 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아이들이 있으니 그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만 했다.



악연도 인연인지 S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간다

한 번도 가장다운 역할을 하지 않은 남편은 여전히 빈둥빈둥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자기만을 위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도 온갖 관섭은 다하고 S의 자유를 속박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S는 생각할 틈조차도 없이 힘겨운 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남편을 버리지 않았다.

누가 남편을 욕할라치면

'알고 보면 그 사람도 불쌍해' 하고 편을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으로선 빵점이라도 아이들의 아버지니 존중해 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그러면 주변에서 그런다

'니가 더 불쌍해'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인가 보다 하고

더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삶의 무게란 그런 것이었다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바란다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인연인 줄 알았는데, 악연인 거 같고

악연인 듯하였으나, 정이 무엇인지

살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택했든 택하지 않았든 아이들이 있어 살아지는 것이었다.

미운 정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나

주름이 하나씩 늘어가고 흰머리가 듬성듬성 늘어가도

아버지가 정해준 그 인연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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