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로 남은 기억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 -속담-
난방시설이 아무리 잘되어 있어도 전원을 켜야 비로소 따뜻해진다. 마음도 말이 되어 입 밖으로 꺼내서 표현해야 상대에게 전해진다.
"아~는?"
"밥 먼나?"
"자자"
경상도 가정의 전형적인 과묵한 집안의 풍경을 일부분 나타낸 말이다.
긴말 필요치 않고, 애정표현은 닭살 돋는다 하여 피하고, 아무튼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더랬다. 절약이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랬는가. 돈 안 드는 말을 왜 그리 아끼고 살았던 건지 인어공주도 아닌데...
그럼에도 엄마의 활기찬 목소리가 있었기에 집은 생기에 넘쳤고, 그런 엄마와 닮아 있는 여동생이 있었기에 집은 들썩들썩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엄마가 황망히 떠나신 날..
평소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게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왜 그렇게 그날이 생각나던지
엄마가 어느 날 거실에 누워서 팔을 뻗으시더니 나에게 손짓하며 와서 팔 베고 누워서 쉬라고 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던 엄마의 얼굴은 이미 병색이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애써 외면해보려 했기에 차마 그 연약한 팔에 누울 수가 없었다.
평상시에 하지 않던 일인지라 쑥스럽기도 했다.
동생은 팔을 베고 누워 장난도 치고 잘 하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되었다.
“엄마 팔 아파! 내가 팔다리 주물러 줄게”
하고는 팔다리만 열심히 주물렀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 한동안 그날이 왜 자꾸만 생각이 났을까
엄마가 처음으로 그렇게 한 것인데 그냥 누울걸. 팔 베개에 머리를 누이고 품에 안겨서 쉬어 볼걸. 안 하던 일이었던지라 낯설게 느껴졌던 애정표현이 왜 그렇게 어렵기만 했던 것일까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기에 아쉬움은 내내 나의 마음을 짓눌렀다.
내향적인 장녀의 후회는 10년이 지나도 문득문득 어떠한 순간에 그 기억이 소환되는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엄마에게는 못했던 딸 노릇을 내 딸들은 잘하고 있고, 난 애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엄마와 못했던 일들을 많이 한다.
"다 큰 딸내미 머리를 뭘 그렇게 정성스레 빗겨줘"
"뒤통수가 동그랗게 튀어나와서 밤톨처럼 얼마나 이쁜지 봐봐"
"아~~ 이쁘다 깎아놓은 사과처럼 하하"
나의 반쪽이 수긍의 끄덕임을 하고 미소 짓는다. 행복이 뭐 별 건가. 흔한 일상 속에서도 입꼬리가 올라가면 되는 거지
딸이 고단하게 일하고 온 날은 좀 더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머리를 같이 말리고 빗겨준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한참을 말려야 하는데, 둘이 하면 시간이 반으로 줄어든다.
'알겠지' 하는 지레짐작으로 머뭇대지 말고, 행동도 말도 표현하면 기쁨은 두 배가 된다.
"얼마나 이쁜지~"
머리를 쓰담쓰담하니 흡족한 딸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서로 웃는 모습을 보며 또 따라서 웃는다.
가족 간에도 어떠한 상황이 생겼을 때, 이런 말은 꼭 하는 게 좋은 거 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괜찮니"
부모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자식에게 기꺼이 미안하다 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오롯이 부모의 말 한마디에 스펀지처럼 많은 의미를 흡수한다. 그것이 오랜 시간 아이의 마음을 난로처럼 데피기도 하고, 때로는 얼음처럼 차갑게 가슴에 응어리로 남을 수도 있다.
자식 또한 부모님이 언제나 옆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소홀하기 쉬울 수 있는 감정들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말 안 해도 알겠지 하는 건 노노~~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도 표현하면 그 마음이 백배로 전해진다.
너무 편해서 소홀하기 쉬운 사랑하는 가족이나 혹은 가까운 이에게 건네는 간단한 한마디가 천근만근 무거운 생각을 가볍게 해 주리니
더운 여름에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를 식혀주고, 추운 겨울도 따사롭게 하여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겠지. 이런 시간들이 추억으로 남아야 후에 이별이 와도 기억할 것이 많고, 그리워할 것이 많아서 덜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이 인간이고, 온정(따뜻한 사랑이나 인정)이 인간을 살린다.
'엄마 사랑해' 뒤늦게 뒷북을 치지만 듣는 엄마는 없다.
때로는 말로 하지 않아도 느끼는 것도 있지만, 말로 하면 더 좋은 게 가족 간의 애정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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