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한디. 경험이 바꿔놓은 관념

딸이 아플까 봐

by 그리여

나는 4대 독자와 결혼하였다. 그 누구도 아들을 낳으라고 채근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늘 그게 걱정이었던가보다. 아들을 낳지 못하여 혹시라도 시댁에서 눈총을 받을까 봐 그랬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시골에서 시집살이하던 친구의 딸은 아들을 낳지 못하여 엄청 구박을 받고, 몇 번의 유산 끝에 기어이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잘해 주드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도 없으면서 그저 아들 아들 하셨단다.

그 연세의 어른들은 그런 분이 대부분이니 얼마나 걱정이 되셨겠는가


내가 딸을 낳을 때마다 엄마의 근심이 늘어갔고 괜찮다고 해도 믿지를 않으셨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셋째가 생겼다. 생각지도 않게 우리에게 와 준 귀한 아이였다. 오후 5시 조금 넘어서 태어난 막내는 울지도 않고 있어서 내가 쳐다보니 아련한 눈빛으로 희한하게도 나를 보고 있었다. 어찌 알고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을까. 셋째를 가지고 두 아이들 키우면서 시댁일에 바빠던 나는 늘 힘이 들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겨우 아이를 품고 있었었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가 기운이 없어서 울지 못하는가 싶어 미안했다.

아이와 나를 보던 간호사가 엉덩이를 톡톡 치니 그제야 힘없게 울었다. 그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셋째 딸을 낳았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이 갔다.


어둠이 짙어지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엄마와 아빠가 오셔서 깜짝 놀랐다. 셋째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딸이 걱정되어 한달음에 달려오신 거다. 그 먼 길을 불편한 트럭에 몸을 싣고 오로지 딸이 아파할까 봐 오신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아이고 우야노”

“엄마 괜찮아 아무도 뭐라 안 해”

“그래도 우야노”

엄마는 말도 못 하고 그렇게 울다가 집으로 가셨다. 엄마를 보내고 나는 그제야 울음이 터졌다. 엄마가 우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괜찮다는데 내가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그 먼 거리를 한밤중에 달려오셨나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딸을 낳아서 우는 게 아니었다. 딸이 아플까 봐 걱정하는 엄마가 걱정스러워 서럽게 울었더랬다.


친정엄마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태어난 셋째 딸은 자라면서 예쁘다고 모르는 사람도 관심과 사랑을 주었고, 우리 딸을 보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지인이 아이를 낳았다. 막내는 내편에게는 장난기 넘치는 말로 술친구가 되어 주고, 애정으로 가족들을 챙기며 우리 가족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을 주었고,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제 몫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못 보고 가신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나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내가 살아보니까 아들이 그렇게 필요한 건 아니더라. 그냥 그런 줄 알고 살았던 거지. 딸이 좋다. 잘했다”

엄마는 그렇게 걱정거리였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아들 없는 나를 잘했다고 해 주셨다. 엄마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들으니, 왠지 안심이 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였다.


“엄마 빨리 일어나 애들이 할머니에게 해 주고 싶은 게 많대”

"그래야 하는데 우야노 힘이 없대이"

"엄마 약속 지켜야지 나 힘들지 않게 계속 반찬 해준다며"

"미안하대이"

서울이란 곳은 남편 혼자 벌어서 아이 키우며 살기에는 빠듯했다. 둘이 벌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는 힘든 서울살이에 엄마는 늘 먹거리를 가득 채워주셨다. 살면서 가장 많은 지출이 아마도 먹는 것이리라. 엄마가 채워주신 곳간으로 힘든 시절을 견디었고, 맞벌이를 하러 나가기까지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급하게 가셨을까. 그저 일거리를 들려주면 버티지 않을까 했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엄마는 그렇게 오랫동안 한숨과 걱정으로 주무시지 못했던 날들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깊은 잠에 빠져드셨다.


나는 참 별거 아닌 일로 엄마를 걱정만 시켰구나

걱정의 80%는 쓸데없는 걱정이라더니 딱 맞는 말이다.

요즘 세상에 아들 딸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그저 건강하게 잘 낳아서 잘 키우면 좋은 것을

그나마도 낳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순간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주는 기쁨이 더 많았다.

셋째 딸을 낳고 나는 아이 키우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연년생을 키울 때는 힘이 들어서 키우는 재미보다도 책임감이 앞서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으로 돌보기에만 급급했다.

나 역시 엄마는 처음이었던지라 도움 없이 키우는 게 쉽지만은 않았더랬다.

“엄마는 힘들었겠지만 우리는 셋이라서 좋아”라고 말하면서 자매들끼리 서로 챙기며 정을 쌓으며 돈독하게 잘 지내는 걸 보면 뿌듯하다.


3이라는 숫자. 얼마나 아름답고 안정적인가. 그 우아한 조합을 막내가 채워주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서 계셨던 짧은 순간에 평생을 아들의 옷자락을 잡아주던 그 손을 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련을 떨쳐내신 진심을 들었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시간은 허락하지 않았다. 의식 없이 누워 계시던 그 순간에 나만 가면 눈물을 흘리시던 엄마에게 나는 말하였다.

왠지 들을 것만 같았다.

“엄마 그만 미안해해 난 괜찮았어 엄마는 나를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했지만, 난 엄마가 우리를 버리지 않고 힘든 상황에도 끝까지 키워주셔서 고마웠어”

엄마는 들었을까

어떠한 표정도 없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누워있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아렸더랬다.

엄마는 쪼그라 들은 풍선처럼 공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듯이 보였고, 허깨비처럼 가벼웠다.


그렇게 엄마를 잡고 보내지 못한 우리의 욕심이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지만, 여전히 따뜻한 손이라서 놓을 수가 없었던 지난날이 자꾸만 떠 오른다.

말은 못 해도 고통을 느끼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그때의 선택을 되새기게 된다.


얼마 전에 본 티브이 드라마에 엄마가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딸은 자신이 부족하여 좋은 치료를 못해줘서 그런가 하여 더욱더 치료에 집착한다. 효과도 없는 치료가 이어지고 엄마는 마침내 진심을 털어놓는다. "엄마가 너무 아파서 그래. 너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참는 거다" 라며 안타까움을 담고 혹여라도 딸이 상처받을까 조심스레 진심을 말하는 걸 보고 '혹시 우리 엄마도?' 하는 마음이 들었고, 우리가 엄마를 더 보고 싶은 욕심에 잡고 있었던 거 같아서 죄스러운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오랫동안 마음에 걸리던 게 저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고통을 가중시키고 괜한 욕심으로 엄마를 힘들게 하였구나! 하는 죄스러운 마음. 그것이 나를 울지 못하게 하였고, 이렇게 오랫동안 이별을 할 수 없었던 이유였구나


당신은 마른 장작이 되어도 자식이 울까 봐 걱정하는 게 엄마인가 보다



#엄마와딸 #셋째딸

#진심 #엄마미안해

#감성에세이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25화내 딸만 두고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