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쌓으라는 가르침

암자로 오르며

by 그리여

엄마는 아무리 힘이 들고 바빠도 한 달에 두어 번은 장을 파하고, 늦은 밤 꼭 암자에 지성을 드리러 갔다. 좁은 산길을 밤에 거닐면 무서울 만도 하지만 나는 엄마가 계셔서 무섭지 않았다. 꼬부랑꼬부랑 어두운 산길을 달빛 벗 삼아 올라간다. 엄마 뒤를 졸졸 따라 올라가면서 옆을 보면 칠흑 같이 어두운 낭떠러지 쭉 펼쳐졌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엄마가 업은 막내의 발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암자가 왜 이리 높은데 있는지 아나 올라가면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덕을 쌓으라고 그런거대이”

“덕이 뭔대”

“사람에게 베푸는 인정이대이”

“덕은 어떻게 쌓는대”

“손해 보듯이 살면 된다”

“그런 게 어딨어” 뭔 말인지 그때는 어려서 몰랐다.

“살아보면 안다”

엄마의 그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남았다.


엄마가 밤을 새워 지성을 드리는 동안 나는 방에서 막내를 등에 업고 꼬박꼬박 졸았다. 그 방 안에서 졸고 있으면 멀리서 풍경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 소리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었고, 잠을 자러 오지 않는 엄마를 밤새워 졸며 기다렸다. 그렇게 오로지 자식을 위하여 잠을 버리셨다.

그날의 암자에 마련된 보살님들 방은 얼마나 크게 느껴지던지. 아무도 없는 그 방에서 앉아서 졸다가 앞으로 꼬구라져 아기가 밀려서 떨어질 뻔했다. 아기가 아기를 업고 밤을 하얗게 새웠다.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종교에 너무 깊이 빠지면 안 된대이. 그저 흔들리는 마음 넘어지지 않게 살짝 기대어 의지할 정도로만 믿으면 된대이”

라고 하시면서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종교에 너무 빠지면 안 된다고 경계를 하게 하시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게 시간을 알뜰하게 쓰셨다. 절에 가기 전에 엄마는 한 번을 가더라도 정성을 다하였다. 고기와 비린 음식은 며칠 전부터 입에도 대지 않았고, 쌀을 사서 제일 먼저 절에 갈 때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에 담아 두셨다. 절에 도착하면 입구에 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두는 곳이 있었는데, 항상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거기에서 손을 씻고 간단하게 세수를 하신다.

부처님을 뵙기 전에 정갈하게 속세의 때를 씻어야 한다고 했다. 어쩌다 한 번씩 절에 가더라도 엄마는 하나하나 절차를 빠뜨리지 않고 하셨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가끔 오시던 곱디고운 비구니 스님을 엄마는 참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다. 내가 몸이 약해서 엄마가 힘들어하니까 어디선가 녹용을 구해줘서 먹었더랬다. 가족처럼 정을 주시던 단아한 스님이 엄마의 고단한 삶에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가 다니던 암자가 아래에 있던 큰절에서도 보급을 끊고 관리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그곳에 계시던 스님이 떠나고 아무도 오지 않는 순간에도 일이 끝나고 무시로 가서 고단한 몸을 쉬지도 않고, 엄마는 그 암자를 오르시고 도둑맞은 촛대를 다시 사서 놓으셨다.

힘이 들었을 텐데도 오는 사람이 있으면 밥을 해 주었고, 동지가 되면 팥죽을 끓여서 잊지 않고 오시던 보살님들이 있으면 대접하였다.


그렇게 엄마가 지킨 암자는 문화재가 되었다. 후에 오신 스님이 엄마의 공을 높이 사서 그 절에다 엄마를 고이 모셨다. 덕을 쌓으라는 엄마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그랬듯이 나도 아이들에게 나의 덕이 돌아가리라 생각하면서 살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뿐이다.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사는 것 외에는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많았다.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고 괴로운 순간이 왔을 때 엄마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견뎠다. 절대 뒤통수 맞을 일이 없는 관계라 믿었기에 누구에게도 말은 못 하고 가슴에 묻어두고 있지만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아마도 내가 관뚜껑을 닫는 순간이 오더라도 말 못 하고 닫겠지.

그럴 때면 한 번씩 마음으로 엄마에게 물으면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 내려놓고 용서해라" 다 내려놓았기에 마음은 편하지만 그래도 끝맺을 수 없는 인연의 굴레에 어찌할 줄을 모르겠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엄마라면? 하고 생각하곤 한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야 될까. 용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쌍방의 다른 의견이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기에 어쩌나 고민만 할 뿐이다.


시간은 또 이렇게 흘러가고 난 오늘도 엄마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어찌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다. 엄마의 말대로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어떠한 미련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나의 성격상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하여 마음이 그저 불편할 뿐이다. 손해 보라는 듯이 살라고 해서 욕심내지 않았고, 손해도 봤기에 여한은 없지만 신뢰가 깨어지며 베인 상흔은 여전하다.


마음이 복잡하고 어수선할 때 난 늘 그렇듯이 여전히 그 말을 기억하게 되겠지

'손해 보듯이 살아라'


시간은 흐르나 마음과 실천으로 알려주신 가르침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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