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히 전해 들은 이야기
엄마 말이면 어느 것도 거스르지 않았던 내가 엄마를 두 번이나 크게 울게 만들었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심한 날 엄마는 가지 말라고 우셨다. 엄마의 바람은 내가 공무원에 응시하여 시골에서 자리잡거나, 그게 싫으면 대구에서 착실히 직장 생활하다가 부잣집 막내아들 만나서 고생을 더는 하지 않는 집안으로 시집보내는 게 꿈이셨고, 나는 엄마의 그 꿈을 외면하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용감하게 처음으로 고향 집을 떠나 멀고 먼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만든 인맥으로 서울로 올라와 취직하고 자리 잡고 살게 되었으니 엄마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집 같은 집으로 이사 가서 너를 좀 편하게 살게 해 주고 싶었는데, 그 먼 곳으로 왜 가노”하시면서 우셨고 나는 가겠다고 하면서 엉엉 울었다. 둘의 울음소리만이 집안의 곳곳에 퍼졌다.
너무 울어서 숨도 쉬지 못하고 있는데 엄마가 청심환을 입에 넣어주신다.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고 울리고, 죄를 지은 것 같은 마음에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단칸방에서 자취 생활을 하는 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면서도 지하에서는 한 번도 살지 않았다. 엄마가 그렇게는 절대로 안 두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모님의 그늘에서 나는 서울 생활에 적응해 갔다.
엄마의 성화에 결혼을 결심하고 식을 올리던 날 엄마는 또 그렇게 우셨다. 아주머니들이 말하길 이틀 동안 울기만 하셨다고 한다. 층층시하에 시누이 많은 집에 시집간다고 엉엉 우셨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그런 자리를 찾아서 간다고 서럽게도 우셨다. 그 와중에 아버님이 2년만 정 붙이고 분가시켜 준다는 말에 위안을 받았다고 하셨고, 사람들이 시어른이 참 좋다고 하시는 소리에 맘을 놓으셨다고 한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고 어느 날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가 서울 올라간다고 했을 때 안 말린걸 내내 후회했데이. 하지만 니가 잘하니까 괜찮았다. 니가 서울 간 게 다 배서방 만나려고 그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은 너무 좋다 잘했다”라고 하셨다.
인정을 받았다. 내편은 나에게나 우리 집에도 더없이 잘했다. 말수가 없던 사람이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는 걸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런 사위를 엄마는 아들처럼 편하게 대하시고, "살도 안 찐다"라고 하면서 보약도 지어주시고 엄마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엄마를 2번이나 대성통곡하게 했다.
결국은 다 인정을 받았지만 좀 더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엄마가 예뻐하시던 손녀들이 성장한 걸 보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엄마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참 잘 웃으셨는데 보고 싶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시절 또한 꽃처럼 화사한 날들이었다. 손을 잡고 온기를 느끼고 긴 말을 하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있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때로는 나쁜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회한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엄마를 생각하면 같은 여자로서 늘 가엾단 마음이 앞섰다. 언제였던가 엄마가 "난 복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했을 때 달리 부인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이런 마음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살아보니 나한테 잘못한 사람보다, 엄마한테 잘하지 못했던 사람이 더 잊히지 않는다.
사극에서 세자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면 엄마를 해친 자들에게 모질게 복수부터 하는 걸 보면 저렇게까지 한다고? 했는데, 왠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물리적인 탯줄은 끊어졌어도 자라면서 받은 사랑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그런 것일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이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왜 좋은 날은 그렇게 짧게 느껴지는 건지. 시간이 많았음에도 시간이 늘 없었던 그 시절의 엄마는 이제 나의 기억에서 80이 훌쩍 넘었어도 건강한 40대의 얼굴로 웃고 있을 뿐이다.
엄마를 울렸던 나는 오랫동안 울지도 못했다. 지금은 엄마의 바람대로 살고 있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엄마는 내가 무엇을 하든 항상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랬기에 더 잘하려고 애를 썼고, 실패를 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기를 쓰고 살았다. 지금은 엄마가 없지만 그래도 왠지 잘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난 아무래도 지독한 마마걸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가져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지만, 사랑은 담아두지 않았어도 흘러넘치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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