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엄만 여간해서는 시골 오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다.
애 키우랴 직장 다니랴 시부모님 뜻 따르랴 항상 바쁜 걸 아셨기에 굳이 내려오라고 하지 않으셨다.
"엄마 이번 주는 내려갈게" 하면 반가우시면서 "안 바쁘나 괜히 무리해서 오지마래이 힘들다"라고 하시곤 했다. 그것이 엄마가 딸의 고단함을 줄여주는 일이라 생각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길이 지금처럼 좋지 않아서 서울에서 가는 길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도 가깝지는 않지만 예전에 비하면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층 가까워졌다.
그랬던 엄마가 어쩐 일인지 먼저 전화를 하셨다.
원래 전화를 하면 당신 할 말만 하시고 ‘요금 나온다’ 하고 뚝 끊으시는 분이다.
“니 이번 주 좀 내려올 수 있나. 니 동생 생일인데 밥 한번 같이 먹자”
생전 그런 적이 없었기에 무슨 일이신가 했다.
“엄마 이번 주는 시댁에 내려가서 밭에 들깨를 심어야 해. 주말에만 하는 일이라 지금 아니면 안 돼서... 다음 주 내려갈게 미안해”
“그렇나 알았따 신경 쓰지 마라 힘들어서 우예노 걱정 마라 담에 보면 되지”
“응 엄마 다음 주에 꼭 내려갈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시댁에 우선적으로 잘하라는 엄마의 교육 때문에 모든 일에서 항상 시댁 일이 먼저였더랬다. 그리고 친정 간다고 하면 "그 먼데를 어찌 가려고..." 하면서 눈치를 주시니, 나 또한 미적대며 눈치만 보다가 말도 꺼내지 않았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 될 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그냥 내려갔었어야 했던 그날...
엄마는 무언가를 예감했던가. 그로부터 며칠 있다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결국 마지막이 되었을, 가족이 한자리에 다 모여서 할 수 있었던 식사를 하지 못하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또 생각났던 아쉬움이 그날이었다. 왜 자꾸 못했던 것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왜 그렇게 안 되는 게 많았을까. 지금은 바쁜 일이 없으면 자주 가는데, 그때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그럴 상황이 되지 않았기에 그랬겠지만 그래도 자꾸만 회한이 생긴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엄마가 힘이 들어 지친 모습으로 누워 계실 때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아무리 병원을 가자고 해도 도저히 말을 듣지 않으셨다.
막내는 엄마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그저 약만 받아다가 드렸다.
왜 몰랐을까
엄마가 조금씩 삶을 놓고 있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힘들고 지친 육신을 누이고 싶어 하셨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남들처럼 삶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은 항상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엄마와 식사도 하지 못하였고, 이별의 말도 하지 못하였다. 난 미련 곰탱이처럼 엄마를 놓지 못하고 늘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땅에 묻어둔 항아리에 대고 소리치듯이 시원해지고 싶어서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야 글로 쓴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마음을 체한 것 같은 상태로 두고 살기에는 너무나 힘이 들었기에.
이별을 하기 위하여... 잊지 않고 그저 맘에 담아 두기 위하여...
하지만 담담해지지 않는다.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여 괴로운 마음이 들어 또 눈물을 흘리고 만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도저히 끝내지 못할 것 같은 이별이다.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해서 그런가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다가오는 듯해도 흐린 날의 그림자처럼 있지만 보이지 않았을 뿐, 언제나 나의 발밑에 따라오고 있었다
#시간 #욕심 #삶
#이별 #엄마와딸
#공감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