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자란 자식이 효도한다

온돌은 사랑으로 데워져..

by 그리여

부모님의 고생을 보고 같이 부딪기며 자란 자식은 흔들림 없이 조용히 부모님에게 애정을 갖고 봉양한다.

우리 집은 작고 볼품없었지만 부모님의 따뜻함으로 채워졌다. 물론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어려운 상황이나 좋은 때나 느끼고 보고 하면서 때로는 모른 척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운함이, 때로는 부족함에 안타까움이 있어도 그렇게 가족으로써 뭉글뭉글 뭉쳐서 살았다. 고단하고 힘든 순간에도 엄마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셨기에, 그런 부모님의 고생을 본 나로서는 엄마가 안쓰럽고 존경스러웠다.


우리 집 안방은 아담했다. 그럼에도 겨울에는 외풍이 세서 칼날 같은 바람이 볼을 에이게 했다. 방 한구석에 놓아둔 걸레는 비틀어서 짠 모양 그대로 얼어붙어 있어서 아침이면 물을 데워서 담가둬야 겨우 풀 수가 있었다. 나란히 눕기조차 어려운 작은 방이었기에 한 명은 발밑에서 가로로 자야 했다.

"누가 가리때로 잘래"

"니가 자라"

서로 아웅다웅 안 자겠다고 한다.

"내가 자께"


나는 그 자리가 나쁘지 않았다. 아랫목이랑 가까워서 춥지도 않았고 자다가 악몽으로 울어도 엄마랑 좀 떨어져 있어서 놀라게 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자리를 마련하고 두껍고 무거운 이불을 덮으면 가슴에 눌린 목화솜이불의 묵직한 포근함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랫목은 빨리 데워지고 빨리 식는 게 단점이다. 그래서 이불을 덮어두지 않으면 안 되니 겨우내 이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가뜩이나 좁은 방이 더 작게 보이기도 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코가 빨갛게 얼어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아궁이에 불을 부지런히 지펴서 따뜻하게 새벽을 덥혀주는 부모님이 계셔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춥게 잠을 잘 수가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아랫목은 항상 까맸다. 불을 너무 때서 노란 장판이 꺼멓게 눌다가 급기야는 타서 녹아서 새까맣게 변하였다. 그 사이로 바닥의 시멘트가 조금 보여도 따뜻했기에 모든 게 정겨웠다. 그걸 덮어서 가리듯이 항상 이불을 깔아 두고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잡아 두었다.


집밥에 지극정성이었던 엄마는 아버지 드실 밥을 항상 식지 않게 묻어 두었고, 금방 한 반찬으로 상을 차리셨다.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따뜻한 밥과 김치만 있어도 맛있는 식사가 되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따뜻한 밥 한 끼를 가족들에게 주는 노고를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발로 차지 않게 조심하고 밥그릇을 피해서 살포시 발을 넣어서 몸을 녹이곤 했다. 이불속에서는 우리의 발이 엉겨서 힘겨루기를 하기도 한다. 깔깔거리고 웃으며 서로 간지럽혀도 마냥 신이 나던 시절이었다. 간지럼을 타지 않던 나는 그런 장난에도 아무 반응이 없어서 재미없다고 동생과 오빠만 신나게 장난을 쳤다.


언젠가 아버지가 약주를 하시고 취해서 깊게 잠이 드셔서 엉덩이를 데인 적이 있다. 그 후로 엄마는 아버지가 잠드시면 윗목으로 밀어서 데지 않게 하셨다. 엉덩이를 데서 고생하는 것보다 조금 추운 듯이 자는 게 낫다고 그리 하신 거다.

불을 때다 보면 불이 잘 안 들고 연기만 나는 날이 있다. 굴뚝으로 미쳐 빠지지 못한 연기가 매캐하게 집안을 가득 채우면 아버지는 아랫목을 뜯으시고 구들장을 다시 놓으셨다. 옆에서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아무리 불이 활활 잘 타올라도 그을음은 항상 생겼고, 그로 인하여 부엌 천장은 항상 그을음이 까맣게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그것조차도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런 재주를 가지고 계셨다. 집안의 전기도 잘 고치시기에 정비사를 부를 필요가 없었다.

아랫목처럼 따스한 사랑은, 타고 까맣게 된 자리처럼 현실은 고되고 힘든 순간이 공존했지만, 어려움을 이기는 엄마의 강인함이 있었기에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는 보호를 받고 살았다.

그랬기에 우리 가족의 결속은 끈끈하고 뜨겁고 까맣게 지워지지 않는 사랑으로 아로새겨졌다.


며칠 전에 엄마 산소에 갔다가 그 옛날 어린아이였던 우리만큼이나 작고 보잘것없었던 그 집 앞을 가보았다. 지금은 누군가가 살고 있었고 약간 고치기는 했어도 그 자리 그대로 집이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어쩌면 저렇게 작았을까 새삼 다시 보니 뭔가 찡하다. 멀리서 봐도 집안의 어두움이 보인다. 햇살이 들지 않던 그 집은 아직도 어둡다. 양쪽 집은 그 집의 2, 3배나 크고 그 사이에 아직도 부속품처럼 끼어 있다. 그래도 우리의 추억이 저 안에서 자라나서 그런가 그 집만 우뚝 크게 부각되어 보인다. 가게문이 열리고 왠지 엄마가 "뭐 하노 안 들어오고"라고 하실 것만 같아 괜히 울적해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의 삶을 보고 받고 자랐기에 나도 가족들에게 먹이는 것은 늘 최선을 다했다.

보고 자란 게 그런 거라 밥솥에 밥이 떨어지면 무슨 큰일이 나는 듯 매일 집밥을 한다. 엄마는 당신은 그렇게 힘들게 살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매일 반찬을 해다 주고 어린 나를 고생시켰다는 미안함으로 무언가를 계속 주려고만 하셨다.

아랫목의 사랑을 알기에 나 또한 아이들에게 엄마의 내리사랑을 전해 주고 있다.


엄마에게 항상 보여주고 싶었다.

그토록 아끼고 예뻐하던 손주들이 반듯하게 자라서, 사회에서도 자기 몫을 충분히 잘하는 훌륭한 인성을 가진 아이로 자라났다고...

그 아이들이 할머니를 잊지 않고 순간순간 추억하며 그리워하고 있다고...

그러면 엄마는 함박 웃으며 그랬을 거야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들 수고했대이. 어예 그리 잘하노. 회사 다니기 힘들제 이거 마이 머그래이"

하면서 햇쑥을 뜯어서 만든 쑥절편에 고소한 콩가루를 잔뜩 묻혀서 입안 가득 넣어주시겠지


가족들이 서로 맺어져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유일한 행복이다
- 마리 퀴리 -


고생이 뭔지도 모르던 아이시절. 힘든 건 알았지만 그게 대수롭지 않게 해 준 건 엄마의 포근한 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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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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