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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들 맛있을까

추억이 있어 맛있다

by 그리여

아버지는 입맛이 여느 어르신들과 다르게 편식하시는 게 많으시다

아무거나 드시지도 않고 뭘 해줘도 늘 입맛 속에 비교 대상이 있어서 이길 수가 없다

돌아가신 엄마다

아버지는 입이 짧았다

밥도 드시면 꼭 한 숟가락 남기셨다

엄마는 아무리 바빠도 바로 하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아삭하고 맛깔스러운 생김치, 커다란 멸치 두어 개 넣고 파와 두부만 넣고 자작하게 끓이신 된장찌개로 밥상을 차리셨다.

그게 식사의 전부였다

뜨거운 밥에 아삭한 생김치와 짭조름한 된장이면 한 그릇은 뚝딱이다



오이지를 담가서 아삭아삭 맛있게 잘 되면

내편은 그런다

"아버님 좀 갖다 드릴까"

"장아찌 종류 안 드셔"

"너무 맛있는데"

"아부지는 내가 알지 안 드신다니까"

내편과 가끔 음식 먹다 맛있는 게 있으면 '갖다 드자고' 하고 나는 '안 드신다'고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곤 한다

혹시나 하고 갖다 드리면 다음에 가서 보면 역시나 냉장고에서 드신 흔적도 없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아버님이 장아찌 종류 신김치.. 이런 음식들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잘 먹게 된 밑반찬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전혀 드실 생각이 없다

약간은 초딩 입맛이라고나 할까

익지 않은 바로 한 생김치 외에는 익은 김치는 손도 안 대고 어떤 음식을 드려도 엄마가 해 준 것만은 못하다고 하신다

"아부지는 엄마가 잘못 길들였다니까 하하"

동생과 나는 늘 그렇게 말한다


음식 할 때마다 아버지 입맛에 맞추려고 최대한 신경 쓴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랑 똑같은 손맛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도 엄마 딸이라 손맛이 나쁘지 않은데도 엄마 고유의 음식맛은 나오지 않는다

음식을 만들 때는 여러 가지 변수가 많다

똑같은 음식을 해도 시골에서 하면 더 맛있는 건 무슨 조화일까



요즘은 아버지 모시고 여기저기서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

4시간을 달려서 시골 가면 지쳐서 바로 음식을 해 먹기 힘들어서다

"아부지 칼국수는 싫으시지?"

"니 엄마가 해 준거보다 맛있는 게 없다"

"그렇긴 하죠 그래도 요즘 맛있게 하는 집도 있어요"

"맛없다"

"아부지! 칼국수가 맛없는 게 아니라 엄마가 그리워서 그러지?"

"... " 대답이 없으시다

엄마는 밀가루 반죽을 해서 면을 바로 밀어서 슥슥슥 썰어서, 끓는 물에 면을 넣고 밭에서 나오는 여린 얼갈이를 뜯어서 무심이 툭 던져 넣으시고, 국간장에 파와 고추를 듬뿍 넣어서 만든 양념장을 섞어서 먹게 해 주셨다

뚝딱 잘도 만드셨다

면을 썰 때 마지막에 넓적하게 썰어 주시는 것을 먼저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이댔다

서로 먹으려고 아웅다웅하다가 냉큼 집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어린 기억에 너무 맛있어서 나도 잊을 수가 없는 그리운 맛이다

아무리 진한 육수에 야채를 곁들여 넣어도 그 맛을 못 느낀다


그리움이 버무려진 추억을 얹어 먹어야 하는데, 어찌 흉내 낼 수 있겠는



아버지 뵈러 갈 때마다 동생과 나는 늘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냉장고를 채운다

멀어서 바로바로 한 음식을 매번 해서 드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대한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해서 간다

그렇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자작하게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 숯향 입혀 구운 고기, 햇쑥으로 뽑아오신 떡에 콩고물을 듬뿍 묻힌 맛난 쑥절편, 잊을 수 없는 맛은 너무도 많다

애들도 할머니가 해주신 짭조름한 된장과 아삭하고 시원한 김치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랑 먹고 싶다고 한다. 어릴 때 먹은 할머니의 음식을 기억하며 그립다고 한다

"엄마 꺼는 엄마만의 맛있는 맛이 있고, 할머니껀 할머니만의 맛이 있어요"라고 한다

집밥을 많이 먹여서 그런가 애들의 혀끝을 너무 살려놔서 세세하게 맛의 차이를 비교한다


나도 엄마가 해 준 음식이 먹고 싶다


맛있게 먹는다는 건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소박해도 결국은 사랑을 먹는 것인가 보다


신선한 야채를 깨끗이 씻어서 손질하고,

지지고 볶고 무치고

그 속에 사랑이라는 양념을 톡톡 넣어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

오늘도 '사랑'이라는 MSG를 잊지 않고 넣는다

무조건 맛있다

"와 이거 미쳤다"

애들이 엄지 척한다

"이거지 이 맛에 반주 한잔 빠지면 안 되지"

내편이 반주를 곁들이는 핑계가 내 탓이란다

"맛있게 해 놓고 못 먹게 하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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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추억을 하나씩 올려놓은 식탁은 오늘도 다리가 부러질 일 없는 소박하고 정겨움으로 가득하다


하나를 먹어도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
오늘 한 끼도 가족과 최고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엄마의 음식맛에 길들여진 내가 있고,

나의 가족이 있어서 항상 맛있게 요리할 궁리를 하고 있다



길들인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급한 성정만큼이나 엄마는 빨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셨고,

아버지는 혼자 남으셨다

투닥투닥해도 옆에 있는 게 좋은 걸 알기에

가끔 아버지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에

반찬 투정을 하신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마음속에 남아있으니 그럴 수밖에..


지금은 우리가 아버지의 입맛을 길들이고 있다

사랑을 담아서 엄마의 추억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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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손맛

#추억

#그리움

#먹는다는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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