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29살이었어
20대의 마지막에 친구와 배낭여행을 떠났지
여행을 하면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같이 가는 친구가 있어 기대감에 설레었어
거제도로 향하는 내내 소녀처럼 즐거워서 조잘거렸지
뭐가 그리 즐거웠던가 웃음이 떠나질 않았어
낙엽이 구르고 있어 데굴데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났던 시절이 있었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소녀적 감성이 되살아났지
숨이 트였어
거제도는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여행길에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어
먹을 걸 별로 안 챙겨 와서 살짝 걱정했는데 여행친구가 생기면서 먹을 것도 해결되었지
미안했어 그런데 그들은 어차피 돌아가는 길이니 들고 가면 짐만 된다고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다 넘겨주고 가셨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정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거였어 좋은 사람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기분이 좋아져서 입가에 미소가 퍼지네
소매물도를 향하는 내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지
내 생애 첫 여행을 좋은 친구와 같이 하게 된 것도 기분을 업 시켰어
숙소를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
근데 참 재밌는 걸 보게 되었어
소매물도에선 숙소를 빌려줄 때 방한칸이 아니라 집을 통째로 빌려주었어
그러곤 주인들은 밖에서 노숙을 하더라
여기저기 그런 주민들이 많았어 여기도 누워있고 저기도 누워있고 마치 온 동네가 사랑방인 것처럼 보였지
처음 보는 광경에 기분이 묘했지
덕분에 친구와 나는 내 집 마냥 편안하고 불편함 없이 지낼 수가 있었어
선착장을 나가보았지
마치 내가 소매물도 주민이 된 거 마냥 편안한 복장으로 말이야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어
모두가 꼼짝도 안 하고 바다를 노려보고 있었지
그러다가 일제히 한 곳으로 눈이 돌아갔어
스무 살 남짓되어 보이는 총각이 대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낚시로 고기를 연거푸 잡아 올리는 거야
사람들은 부러움으로 와아!!! 하고 감탄했어
동네총각이 그날 고기를 다 잡아 올리는듯했지
소매물도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어
기암괴석이 작품이 되어 눈을 사로잡았어
등대섬에서 괜히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거 마냥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어
저 바다 끝이 황홀하게 물들어가고 있어 바람은 살랑살랑 머릿결을 스쳐 지나가지
바다는 은은하게 동그란 태양을 천천히 아름답게 삼키고 있었지
한동안은 숨이 멎은 듯 지켜보았지
그걸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어
잊지 못할 황홀함에 빠져 한동안은 자리를 뜰 수 없었지
그렇게 난 배낭여행을 즐겁게 끝내고 나의 20대를 미련 없이 떠나보낼 결심을 했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을 감으니 나의 아름다웠던 여행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올랐지
엄마 배고파
여행은 아름다웠지만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어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놀라신 엄마는 뭐 하다 이 꼴로 왔노
치킨 먹고 싶어
엄마는 치킨을 사 주셨어
허겁지겁 먹고 나니 그나마 살 거 같았지
배가 부르니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어 나는 놀라서 고함을 질렀어
뭐 해!!!!
엄마 아빠는 내가 먹고 남긴 닭뼈를 빨고 계셨어
같이 먹어야지 뭐 하는 거야
니 많이 묵으라고
난 그 이후로 절대 치킨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내가 아주 못된 년이 된 거 같았거든 내 입에 치킨을 욱여넣느라 엄마 아빠께 같이 먹자고 하지도 않은 사실자체가 용납이 되질 않았어
하지만 난 치킨냄새에 내 의지가 무너지는 한없이 약한 인간이었다는 걸 깨달았어
그 거창한 결심은 일주일밖에 못 갔어
지금도 난 치킨 없이는 못 살 정도로 좋아하지
그래도 가끔은 그날의 부모님을 떠올리면 괜히 죄송스러워서 마음이 저려와
너는 지금도 여행을 꿈꾸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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