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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me Mar 15. 2023

난데없이 꽃배달이 왔다

파리에서 온 꽃다발

울적하고 기운도 없는 날이었다. 정확히 일 년 전, 토토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동생이 가족톡방에 보낸 "오늘은 토토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이네요.. 토토를 떠올립시다~"라는 짧은 메시지에 내 마음은 정확히 일 년 전 오늘로 돌아가버렸다. 일기를 쓰며 절규하듯이 울었다. 한참을 울다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족들은 이미 자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앤디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토토는 세상에 없었고, 그는 내가 토토라는 이름의 토끼를 "키웠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전화를 할 수 있냐는 물음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걸어줬다. 이미 눈물 콧물 범벅에 말도 잘하지 못하던 상태였던 나는 한 시간 넘게 거의 울기만 했다. 앤디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함께 있어줬고, 그의 숨소리는 말없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잠에 드는 듯하다가도 슬픔이 울컥울컥 밀려와 눈물을 밀어냈지만 고요하고 규칙적인 그의 숨소리에 나는 어느샌가 잠에 들었다. 


다음날 7시 반부터 카페에서 일하는 나의 상태는 당연히 말이 아니었다. 눈은 부을 대로 붓고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크고 작은 실수도 많이 해서 사장님께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들었고 위축되기도 했다.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마음과 씨름하며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다른 레스토랑의 누군가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꽃배달이 왔으니 찾아가! 와인 냉장고에 넣어 놓을게." 내게 꽃배달이 왔다고? 그것도 "사랑해 내 사랑"이라고 쓰인? 누가? 왜? 내 거 맞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안이 벙벙했고, 오늘 일하러 가지도 않는 레스토랑에 그런 글귀와 함께 꽃다발이 배달되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말 설마 싶어 앤디에게 물어봤다. 처음에는 모르는 척을 하더니 이내 자기가 보낸 게 맞다고 했다. 그전부터 계획한 거라기에는 너무 타이밍이 절묘해서 언제부터 계획했냐고 물어보니 어젯밤 전화를 하고 난 후 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마음이 한 번 더 울컥했다. 레스토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혼자 울었다 웃었다 했다. 


브론테가 와인 냉장고에서 꺼내준 꽃다발은 생각보다 컸다. 내가 살면서 받아본 꽃다발 중에 제일 컸고 아래 물주머니까지 있어 꽤나 무거웠다. 강가를 배경으로 꽃다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니키가 와서 센스 있게 꽃다발을 안은 내 사진을 찍어줬다. 앤디는 사진을 보더니 "Big bunch라고 해서 바로 그걸 골랐는데 정말 big bunch네."라고 말했다. 


꽃다발을 소중하게 안고 돌아오며 문득 꽃 선물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어쩌다가 며칠이면 시들고 말 꽃을 주고받게 됐을까. 실제로 나는 입학식, 졸업식 등의 행사에서 의례처럼 주고받는 꽃다발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식 때도 부모님께 꽃다발 대신 꽃다발 값 3만 원을 이사장님이 운영하시던 백혈병소아암 재단에 기부해 달라고 부탁드렸었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꽃 선물 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동생의 초등학교 졸업식 때 직접 드라이플라워 꽃다발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과 잘 어울리는 꽃이 떠오르면 깜짝 선물을 하기도 했다. 소중한 사람과 어울리는 꽃을 고민하는 게 좋았고 꽃을 선물하는 이유를 말하며 마음을 건네는 것도 좋았다. 한국에서 서로 헤어지기 직전에 앤디가 내게 꽃다발이라도 주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났다. 그 꽃다발은 가장 알맞은 때에 내게로 왔다. 퍼스에서 1만 4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파리에서 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그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채로. 


의미가 큰 꽃다발인 만큼 어떻게 서든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었는데 고민 끝에 잘 말려서 드라이플라워 소이 캔들을 만들기로 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그에게 집들이 선물로 줄 생각이다. 이야기가 있는 꽃, 부드러운 향기와 함께 내 마음을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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